‘킹달러’에 짓눌린 세계 경제…아시아는 ‘외환위기’ 악몽을 꾼다

정의길 기자 2024. 5. 1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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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 #달러강세
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미국 달러 강세가 세계 경제에 그늘을 깊게 드리우고 있다. 달러는 세계의 공장인 아시아 주요 국가의 통화인 한국 원, 일본 엔, 중국 위안에 대해 특히 강세를 보여, 세계 경제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물가 오름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이다. 미국은 물가 때문에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고, 이 때문에 달러가 강세이지만 물가 오름세는 여전하다. (…) 최근 상황은 1997년 7월 타이 밧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 전야를 연상케 한다. 당시 아시아 외환위기는 1995년 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1년 전에 견줘 두배인 6%로 올리는 통화수축 정책이 계기였다. 아시아 각국 경제가 침체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미국의 고금리로 달러 가치가 급격히 치솟자, 아시아 각국은 외환위기에 봉착했다.

(한겨레, 5월8일)

Q. 와, ‘제2의 외환위기’란 표현까지 나오니까 오싹하다. 한국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 신청했던 1997년 겨울, 얼마나 추웠어. 달러 강세가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야?

A. 달러가 다른 통화보다 가치가 높아진 것은 2021년 초부터 시작된 현상이야. 하지만 최근 한국 원화가 달러당 1400원까지 폭락하고(4월16일), 일본 엔화가 달러당 160엔까지 떨어지면서(4월29일) 난리가 난 거지. 한국과 일본 양국 통화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결과 원화는 현재 1370원대, 엔화는 155엔대 언저리인데 약세는 여전해. 경제규모로 보자면 일본은 세계 4위, 한국은 13위인데 두 나라 통화가 극심한 약세를 보이니 국제경제에도 충격이지.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넘긴 16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한 환전소에 달러 가격이 표시돼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Q. 달러는 왜 이렇게 센 건데?

A. 미국 기준금리(5.25~5.5%)가 20년 만에 최고를 유지하는 데다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이기 때문이야. 코로나 때 미국 정부가 돈 왕창 풀었잖아. 그때 발생한 인플레이션이 생각보다 빨리 안 잡히고 있어. 당분간 금리를 낮추기가 힘들어졌어. 반면 일본은 줄곧 엔저를 용인해왔어. 현재 일본과 미국 금리 차이가 무려 5.25~5.4%포인트까지 난다고. 생각해봐. 돈이 있다면, 일본과 미국 은행 중 어디에 맡기겠어? 당연히 미국 은행이지. 미국으로 돈이 흘러들어 가니 당연히 달러가 세지는 거지.

Q. 엔화는 왜 그리 맥을 못 추는 거야?

A. 호황을 누리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들어 거품이 터지며 장기간 불황이 계속되잖아. ‘잃어버린 10년’ 들어봤지? 이를 타개하려고 일본은 1997년 제로금리를 도입했고 급기야 2016년엔 마이너스 금리까지 갔어. 지난 3월 일본 중앙은행이 드디어 금리를 -0.1%에서 0~0.1%로 올리면서 17년 만에 제로금리 기조를 바꿨어. 앞으로 추가금리 인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고. 하지만 4월26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금리를 당분간 올리지 않고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냈어. 미-일 금리 차가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자 엔화가 확 떨어진 거야.

1997년 12월3일 정부 캡션 : 3일 밤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오른쪽)가 \'대기성 차관 협약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한 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에게 전달하며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Q. 한국과 일본 통화가 제일 문제인가? 다른 나라들은 어떤데?

A. 사실 지금 더 심각한 건 동남아 국가들이야. 동남아에서 가장 경제규모가 큰 인도네시아는 4월23일 기준금리로 쓰이는 7일물 역환매채권(RRP) 금리를 연 6.00%에서 6.25%로 25bp(1bp=0.01%포인트) 전격 인상했어. 달러 강세로 인한 자국 통화 약세 및 자본 유출이 심각하다고 본 거지.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최근 달러당 1만6080루피아를 오르내리고 있어. 아시아 외환위기 때이던 지난 1997년 여름 달러 당 1만5100루피아를 찍었는데, 그때를 능가하는 거지. 말레이시아 통화 가치(달러당 4475링깃)도 아시아금융위기 이래 최저치로 가고 있어. 말레이시아는 통화가치 하락과 물가상승으로 인한 민심 동요를 달래기 위해 공무원 급여를 13%나 인상한대.

이 두 나라를 보니 1997년 7월 타이 밧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가 연상되는 거야. 당시 아시아 외환위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994년 2월부터 1995년 2월까지 기준 금리를 1년 동안 3%에서 6%까지 올리는 긴축이 방아쇠를 당겼어. 아시아 각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는데 미국 고금리로 달러 가치가 급격히 치솟자 아시아에서 달러가 확 빠져나가며 외환위기가 왔어.

이번에도 상황은 비슷해. 미국 연준은 코로나 막바지인 2022년 3월부터 2023년 7월까지 기준금리를 무려 11차례나 인상해 0.25%에서 5.5%까지 치솟게 했어.

Q. 왜 아시아가 달러 강세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아?

A. 달러는 전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다 강세야. 올해 들어 주요국 통화들은 적게는 -1%에서 많게는 -10%까지 가치가 떨어졌어. 최저치를 기준으로 해 보자면 일본 엔화 -10%, 한국 원화 -6.5%, 유로화 -3%, 중국 위안 -2.1%, 브라질 헤알 -5%, 남아공 랜드 -1.9%, 오스트레일리아 달러 -3.9% 가치가 하락했어. 블룸버그가 추적하는 150개 통화 중 3분의 2가 달러에 약세를 보이고 있어.

물론 아프리카나 남미에서도 더 환율이 악화된 곳이 많아. 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영향을 받는다기보다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규모가 국제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야. 아시아 국가들은 신흥경제국인 데다,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교역 비중이 높은 국가들에 환율은 매우 중요하지. 환율이 오르면, 즉 자국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경쟁력은 높아지지만 물가가 많이 올라. 현재 전세계 물가가 오르고 있잖아. 아시아 국가들 역시 인플레이션도 잡아야 하는데 환율이 확 오르니까 치명타를 입은 거야.

Q. 달러가 약해질 기미는 전혀 없어?

A. 현재로선 환율이 내릴 조짐이 없어. 미국 때문이야. 미국 입장에서 달러 강세는 수출경쟁력을 낮추지만 국내 물가는 안정돼. 그런데 지금 미국의 문제는 고금리에 달러 강세인데도 물가가 안 잡힌다는 거야. 물가 때문에 올해 상반기 예상됐던 금리 인하는 다시 하반기나 연말로 미뤄졌어. 고금리에 따른 달러 강세는 여전할 것이고, 그러면 아시아 통화 약세 또한 지속하리라는 의미야.

골드만삭스가 4월말 낸 보고서를 보면 더 오랫동안 달러 강세가 지속하면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해. 주요 통화에 대해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세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해 미국 달러의 평균 가치를 지수화한 것)는 추가 달러 강세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 미국이 급격히 금리를 올리고 있던 2022년 10월10일 110.31로 올라섰다가 현재 105 수준이야. 미국 경기가 견조하고 고금리가 유지되면 달러 가치가 더 오를 수 있다는 거지.

Q,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는 중국은 별 영향이 없었잖아. 이번엔 어때?

A.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 위안화도 절하 압력을 받고 있어. 중국 경제는 최근 부동산 위기와 국내 소비 저조로 디플레이션 조짐까지 보이고 있어. 중국은 2008년부터 달러에 대한 위안 가치를 달러당 7위안 내외로 엄격하게 관리해왔는데, 최근 들어선 달러당 7위안 이상으로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와.

요즘 미국 등 서방은 중국의 ‘과잉생산’을 문제 삼고 있어. 달러 강세 때문에 중국 제품들의 수출경쟁력이 더 강화됐기 때문이야. 중국 위안화가 추가로 절하되면, ‘과잉생산’된 중국 제품들이 수출 경쟁력을 더 갖추고 서방 시장에 더 많이 넘쳐나게 되지. 중국 국내적으로 수입이 위축돼 물가가 오르고, 소비는 더 위축되는 효과가 있어.

중국 지도부는 은행 금리를 낮추는 통화정책 완화를 계획하고 있어. 부동산이 침체하고 국내 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상황이니까 금리 인하를 도모할 수밖에 없는 거지. 파이낸셜타임스는 늦어도 몇달 안에 중국이 금리를 낮출 것으로 예상했어. 그러면 중국에서 자본유출은 악화하고 위안화 약세가 불가피하지.

중국 위안화가 추가 절하되면 아시아 국가들에 폭풍이 몰아칠 거야. 위안화 약세로 중국 수출품이 경쟁력이 강화되면, 수출에 기대 먹고 사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더욱 곤경에 처하게 할 거야. 이들 국가의 통화 가치가 급격히 약화할 것이 분명해.

위안화 절하는 미국 등 서방과의 무역분쟁 악화도 예고하고 있어. 중국이 달러 강세에 맞춰 추가적 위안화 절하로 방향을 잡으면 전례 없는 환율 및 무역전쟁의 문이 열릴 수도 있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식료품 가게에서 한 시민이 과일을 고르고 있다. 물가상승과 고금리로 미국 저소득층의 생활고도 심해지고 있다. EPA 연합뉴스

Q. 달러 강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안 되나?

A. 플라자 합의라고 들어봤지? 1985년 미국·프랑스·독일·영국·일본 장관들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만나 환율 조정에 합의한 거야. 경상수지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이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다른 나라 화폐들의 가치를 올리도록 했어. 특히 일본이 타격을 크게 입었지. 달러당 엔 환율을 250엔에서 120원으로 대폭 조정했어.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확 떨어졌지. 그런데 중국과 미국은 그런 플라자 합의 같은 걸 할 관계가 아니잖아?

이번 사태 근원은 미국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고금리야. 미국 인플레가 잡히고 금리가 내려가야 차근차근 문제가 풀릴 텐데. 하지만, 당분간 그렇게 되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달러 강세의 폭풍이 세계 경제를 다시 또 다른 위기로 몰아넣을까 봐 걱정되네. 이번주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지켜보자.

※정의길 선임기자의 출장으로 ‘글로벌 파파고’는 2주간 쉬고 6월3일 돌아옵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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