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작 없는데 독과점?… 트리플 천만 앞둔 ‘범죄도시’는 억울하다

이정우 기자 2024. 5. 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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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 있는 ‘흥행 독주’
개봉 첫째 주 좌석 점유율 85%
다른영화들 같은 개봉일 피하고
극장은 대중적인 ‘범도’ 줄상영탓
‘서울의봄’‘파묘’ 흥행 반긴 언론
유독 ‘범도’에만 독과점 부각해
영화계 “다 죽을판” 성토 이어져
대중 “재미만 있으면 돼” 온도차
‘범죄도시’가 13일 한국 영화 시리즈론 최초로 1∼4편 합산해 4000만 관객을 달성했다. 사진은 ‘범죄도시 4’ 포스터가 줄지어 걸려 있는 극장의 풍경. 연합뉴스

영화 ‘범죄도시 4’가 개봉 17일째인 지난 10일 9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 시리즈물 최초로 3연속 1000만 관객 달성이 유력하고, 1편에서 4편까지 합산하면 4000만 관객이 ‘범죄도시’ 시리즈를 봤다. 하지만 화려한 흥행 행진 이면엔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자리한다. 극장에서 ‘범죄도시 4’만 상영했기 때문에 이처럼 흥행할 수 있었단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범죄도시 4’의 흥행 독주는 누가 만드는 걸까.

연합뉴스

◇“해도 너무한 독과점”

소위 기대작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독과점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범죄도시 4’에 유독 독과점 비판이 거센 이유는 실제 수치상 다른 1000만 영화들에 비해 좌석 점유율이 확연히 높기 때문이다. ‘범죄도시 4’는 개봉 첫째 주 좌석 점유율이 85%가 넘었다. 극장에서 10번 중 8번 넘게 ‘범죄도시 4’를 걸었단 얘기다. 개봉 둘째 주에도 좌석 점유율 75%가 넘었다. 영화는 개봉 13일째에 이미 누적 관객 800만을 돌파했다. 셋째 주에 접어들며 좌석 점유율은 57%로 떨어졌지만, 다른 영화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들은 ‘범죄도시 4’가 차지하고 남은 상영관을 셋방 살듯 나눠 가져야 했다. 관객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측면이 분명 있었단 의미다.

지난해 히트작 ‘서울의 봄’의 경우 개봉 첫 주 좌석 점유율은 60%대였고, 올해 첫 1000만 영화였던 ‘파묘’는 50%대였다. ‘범죄도시 2’와 ‘범죄도시 3’ 모두 개봉 첫 주 70%대를 기록하며 이번 영화보단 낮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화 관계자들도 문제를 제기했다.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린 ‘한국 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한 토론회’에선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한두 편만 살아남고, 다 죽는 판”이라는 성토가 이어졌다.

‘범죄도시 4’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알아서 피해놓고…”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통화에서 “관객 점유율 80%는 의도했더라도 혼자선 만들 수 없는 수치”라며 “경쟁작이 없고, 관객들도 그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계속 와야 한다”고 말했다. 손바닥도 맞부딪쳐야 소리가 나듯 다른 영화사들과 극장, 관객의 선택 없이는 독과점이 불가능하단 얘기다.

우선 ‘범죄도시 4’의 비정상적인 좌석 점유율은 동시기에 개봉한 한국 영화 경쟁작이 없었던 이유가 컸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 배급사들이 일찌감치 개봉일을 확정했던 ‘범죄도시 4’를 ‘알아서 피했기’ 때문이다. 알아서 피해놓고, 극장이 ‘범죄도시 4’만 상영한다는 비판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식 모순이란 지적이다. 그나마 외화 ‘스턴트맨’과 ‘챌린저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여행자의 필요’ 등이 ‘범죄도시 4’와 같은 날 개봉했다. 개봉일 전후로 확장해도 경쟁작은 4월 10일 개봉했던 ‘쿵푸팬더 4’ 정도에 불과했다.

‘범죄도시 4’를 상영한 주체인 극장은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가장 대중성 높은 영화인 ‘범죄도시 4’를 상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극장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긴 힘들다. 10분 단위 시간 쪼개기 상영으로 물 샐 틈 없이 ‘범죄도시 4’를 걸면서, 다른 영화들은 이른 오전이나 늦은 밤 등 비선호시간에 상영하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CGV 아트하우스관을 비롯해 주요 멀티플렉스마다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너무 ‘좁은 문’으로 기능하고 있다.

◇언론은 비판적, 대중은 우호적

‘범죄도시 4’에 대해 독과점 논란 등 부정적인 면모를 조명하는 수많은 언론은 지난해 ‘서울의 봄’의 흥행에 대해선 ‘극장의 봄’이라며 환영했다. 3·1절 연휴에 반전 흥행몰이를 했던 ‘파묘’에 대해선 응원성 기사로 반겼다. 영화 수준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영화의 성과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대중은 ‘범죄도시 4’에 대해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완화된 잣대를 적용하며 극장으로 달려갔다. “‘무지성’(생각이나 판단을 거치지 않는 것을 의미)으로 볼 만하다”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황 담당은 “개봉 초반 영화가 좋다는 얘기는 적었지만, 3편보단 낫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게 한번 더 믿어보자는 심리로 이어진 것 같다”며 “좋지 않았던 시사회 반응이 오히려 영화의 기대감을 낮추며 호재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범죄도시 4’의 점유율이 지금보다 낮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영화들의 성적은 비슷했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요즘은 극장에 가서 영화를 고르지 않고, 특정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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