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거 좋아해서, 휠체어 안탔으면 서울대 못 갔을걸요?” ‘오늘도 구르는 중’ 김지우 작가

윤혜진 객원기자 2024. 5. 1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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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험을 담아 장애 아동을 위한 동화책을 펴낸 김지우 작가는 “100명의 아이가 있다면 100명의 세상이 있고, 서로의 세상을 통해 내 세상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도 구르는 중’ 김지우 작가
누구나 이름이 있다. 그리고 살다 보면 이름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불린다. 김현미 씨와 김태균 씨가 낳은 소중한 딸이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20학번 학생, 고등학생 때부터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해온 8년 차 유튜버, 동화책 '오늘도 구르는 중’의 저자인 김지우 작가 역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불려왔다. 그런데 유독 한 가지, 익숙해지기까지 한참 걸린 수식어가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2001년생인 김지우 작가는 뇌성마비로 어려서부터 휠체어를 타고 생활했다. 아홉 살 때까지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으면 몸이 '정상’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읽던 책 머리말에서 "뇌성마비를 가진 친구들은 나을 수 없어요"란 문구를 보고 처음으로 자신은 평생 장애인으로 불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성인이 된 후 그가 장애 아동들이 ’나를 위한 책이구나‘ 느낄 수 있는 친절한 책을 쓰게 된 이유다. '오늘도 구르는 중’은 장애를 가진 초등학교 4학년 '나’가 주인공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만나기로 한 김지우 작가는 쏟아지는 비 때문에 3시간이나 걸려 배차된 장애인 전용 콜택시를 타고 동화 속 나처럼 씩씩하게 혼자 왔다.

"먼저 도와주지도, 지레 포기하지도 말아주세요"

김지우 작가는 다양한 의상과 그에 맞는 휠체어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달의 휠체어’ 화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타인의 시선을 당당하게 즐기자는 의미였다고. 사진은 포토그래퍼 장모리 제공.
‘오늘도 구르는 중’에 직접 겪은 에피소드는 어느 정도 들어 있나요.
거의 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어요. 짝피구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이었어요. 제 짝이 휠체어 뒤에 숨기 좋거든요(웃음). 다만 제가 어렸을 때 그랬으면 더 좋았을 행동과 있었으면 하는 친구들을 좀 만들어줬어요. 제가 겪어왔던 울퉁불퉁한 경험들을 덮어버리는 다정함을 담아 어린 저한테 선물한다는 느낌으로요. 저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내 일반 학교를 다녔어요. 학교엔 장애인이 거의 저뿐이었죠. 그러다 보니 화재 대피 훈련에서도 제외된 적이 많죠. 고등학교 3학년 때 제가 유튜브에 문제를 제기한 이후로 한두 번 정도 해본 게 전부예요. 동화 속 '나’처럼 씩씩하게 수련회 장기 자랑 무대에 올라가지도 못했고요. 지금, 그 또래의 휠체어를 탄 친구들이 제 책을 읽고 '나도 할 수 있구나’ 하고 느끼면 좋겠어요.

체험학습 가서 바위를 식탁 삼아 다 같이 둘러앉아 도시락 먹는 장면이 좋았어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면 되는데 현실에선 체험학습, 수련회 등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겪었던 일이자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학창 시절에 엄청 활발한 성격이어서 3년 동안 임원을 다섯 번 했어요. 임원 수련회를 다섯 번 다 갔는데 나중에 부모님께서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학교에서 당연히 제가 안 갈 줄 알고 "지우는 힘들겠죠?" 먼저 얘기하길래 엄마가 "지우가 안 간다고 하지 않았는데 왜 먼저 포기하느냐"고 설득해서 제가 가게 된 거래요. 사실 체험학습, 수련회 등을 가더라도 다른 학생들이 하는 체험을 다 못 하고 수련원에 있거나, 관광버스 안에 있으면서 낙오된 기분을 느끼기도 해요. 그럼에도 제가 안 간다고 하면 앞으로 '장애 학생은 안 가도 되는구나’ 하는 선례를 만드는 게 싫었어요. 고1 때 자갈밭에서 하는 캠핑 빼고는 다 갔어요. 저처럼 악으로, 깡으로 가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겠지만, 더 많은 아이가 참여하려면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 환경이 바뀌어야 하고, 함께 지내는 친구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바뀌면 좋을 것 같아요. 책 속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사랑’이란 인물은 실제로 제가 초등학생일 때 저를 업어주고 챙겨주던 친구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지금은 연락이 끊겼는데 이 기사를 보고 연락을 주면 좋겠네요(웃음). 저는 주변 사람들이 장애 아동을 대할 때 지레짐작으로 미리 무언가를 다 해주려 하는데 그것보단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고 같이 방법을 고민해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같이 머리를 맞대다 보면 어린아이들은 빨리 적응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른이 하지 못하는 일도 해낼 수 있거든요.

아마도 장애인에 대한 무지 때문인 것 같아요.
맞아요. 저 역시도 저와 다른 종류의 장애를 가진 분들을 만날 때 지금 불편한 건 아닐까 걱정하거든요. 그런데 '상대가 불편하지 않도록 내가 다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리감이 느껴지고 절대로 친해질 수 없어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해요.

작가님의 현실 친구들처럼요? '성격 나쁜’ 친구들 덕도 많이 봤다고요.
제가 운이 좋았죠. 중학교 때는 제 모습을 밖에 드러내는 게 싫었어요.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따라붙는 시선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 성격 나쁜 친구들이 "뭘 보느냐"고 먼저 나서주니까 어떨 때는 싸움으로 번질까 봐 오히려 제가 말리기도 했어요.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 게 저한테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하던 시기에서 '저 사람은 왜 나를 신기하게 볼까’ '왜 나 같은 사람을 못 만나봤을까’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더는 주변의 시선이 무섭지 않게 되기 전까진 인생을 '하드 모드’로 살았죠(웃음).

그나마 최근에는 어릴 때부터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교육을 조금씩 받는 것 같아요. 더 필요한 교육이 있다면 뭘까요.
교육이라기보단 같이 섞여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책을 쓰며 가장 많이 고민했던 지점이 특수학교인데요. 맞춤교육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아직 학교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비장애 학생이 많은 곳에 소수의 장애 학생이 섞이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어서 특수학교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해요. 다만 결국에는 다 같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요. 장애인 친구를 놀리고 괴롭히면 안 된다는 걸 어린아이들이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잖아요. 같이 생활하다 보면 '지우는 이런 건 혼자 할 수 있구나. 도와달라고 할 때만 도와줘야겠다’ '부딪히면 넘어지는구나. 조심해야겠다’ 저절로 알게 돼요. 저는 이런 게 교육보다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계속 말하는 거예요. 계속 말해야 찔끔찔끔이라도 바뀌니까요.

대중은 장애인의 감동 서사를 더 원하지만…

얼마 전 여행 겸 교환학생으로 호주에 다녀온 김지우 작가는 그곳을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살기에 정말 좋았다”고 평했다.
김지우 작가는 "세상은 안 바뀔 것 같으면서도 바뀌고 있다"며 웃었다. 문제라면 그 속도가 너무 더디다는 것. 지지부진한 그 과정을 버티려면 나부터 단단해져야 한다. '오늘도 구르는 중’은 장애인에 관한 얘기이자 결국 나를 더 사랑하란 말을 하고 있다. 최근 막 나온 인터뷰집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역시 나를 사랑하는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해 완성됐어야 할 '오늘도 구르는 중’의 제작 일정이 늘어지면서 본의 아니게 두 달 만에 새 책을 또 낸 다작하는 작가가 됐다. 김지우 작가에게 "‘오늘도 구르는 중’의 '나’가 잘 자란다면 이런 멋진 언니들이 될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럴 것 같다"고 답했다.

현재 졸업을 2학기 정도 남겨둔 김지우 작가는 미국 국무부가 전액 지원하는 교환학생으로 선발됐다.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확정되는 대로 미국으로 건너가 6개월 동안 사회학 공부를 하고 돌아올 계획이다.

지금 4학년이면 학교 다니며 해보고 싶었던 일들은 많이 해봤나요.
휴학 기간까지 포함하면 지금 입학한 지 5년째예요. 이것저것 많이 해봤습니다(웃음). 일단 '서배공(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이란 단체를 만들어 2년 동안 활동했는데요.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의 지원으로 학교 주변 식당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경사로 유무와 식당 내부 넓이 등의 정보를 담은 지도도 제작했어요. 또 제가 사회학과 외에도 정보문화학도 전공해서 요즘은 관련 수업들을 재미있게 듣고 있어요. 영상 찍는 과제가 있으면 만들어서 제 유튜브 채널에도 올리고 그래요.

‘휠체어 꾸미기’ 같은 밝은 영상에도 다양한 댓글이 달리는데, 고민이 많겠어요.
고민을 오래 할수록 올릴 수 있는 영상이 없어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해요. 다만 그런 생각은 들어요. 저는 재미있으라고 올린 건데 감동적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무래도 장애인이 등장하는 미디어를 소화하는 방식에 있어, 무언가 동기부여를 얻거나 슬프거나 하는 것에 익숙해진 거 같아요. 그래서 더 다양한 모습을 담으려 하는데 그러다 보니 제가 밝은 순간만 올리려고 하는 건 아닌지 도리어 고민이 돼요. 제가 평소에 방방 뛰는 스타일은 또 아니거든요. 요즘은 그런 부담을 좀 덜고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하는 연습도 하고 있어요.

최근 화제가 된, 분식집에서 휠체어 입장 거부를 당하는 영상을 말하는 건가요.
그 영상은 기사화가 많이 됐어요. 올리면서도 고민 많이 했죠. 요즘 저격 문화가 있다 보니 혹시라도 식당에 영향이 미칠까 봐서요. 지금도 여전히 많은 말이 오가고 식당에 대한 심한 욕은 제가 삭제하고 있지만, 그래도 다수분들이 "그런 상황에서도 라면 먹고 나오길 잘했다" "응원한다" 말해주셔서 조금 마음이 놓여요.

아무래도 현실을 담은 영상이 좀 더 이슈화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인생의 중간에 극적인 사고를 묘사한다거나 내가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공유한다거나, 그런 콘텐츠가 인기가 많아요. 물론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그 순간을 얘기하며 과거에 머물러 있기보단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사는 현재가 더 중요해요. 최대한 다양한 얘기를 하려 하는데, 아직은 영상보단 책을 통해 말하는 게 더 편하고 솔직해지는 것 같아요. 세 번째 책을 기획하고 있을 때 '걸즈 온 휠즈(Girls on Wheels)’ 토크 콘서트에 패널로 간 적이 있어요. 당시 사회자도, 관객도 다 휠체어를 탄 여성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장애가 삶의 촉진제인지 장애물인지’ 묻는 질문을 받았어요. 평소라면 촉진제라고, 나는 장애에서부터 영감을 얻는다고 했을 텐데 그날은 "솔직히 좀 힘들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언니들이 그렇다며 웃어주더라고요. 그때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일종의 연대감을 느꼈어요.

워낙 다재다능해서 '슈퍼 장애인’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데, 혹시 부담스럽진 않나요.
자유롭지 않죠. 저는 우스갯소리로 "내가 만약 장애가 없었으면 공부를 이렇게까지 잘하지 못했을 것 같다. 강제로 앉혀놔 할 게 공부밖에 없어서 공부를 했다"고 말해요. 워낙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휠체어를 안 탔다면 저는 노느라 공부를 안 했을 거예요. 어쨌든 저는 공부를 잘했고, 아직까진 학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서울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제가 하는 여러 일을 통해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전 '슈퍼 장애인’의 진짜 문제는 본인도 그렇게 믿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장애, 비장애를 떠나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요. 다 자기가 잘해서 이뤄낸 거로 믿으면 안 돼요. 저는 정말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시설 인프라가 갖춰진 서울에서, 저의 장애를 한 번도 숨긴 적이 없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교육받고 싶은 거 다 받으며 컸어요. 저보다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친구인데도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걸 잘 알죠. 그렇기에 "나처럼 하면 돼" 이런 말은 못 해요.

"저는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대입을 두고 여전히 '특혜’라고 딴지 거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서울대에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들어간 건 맞아요. 그런데 서울대 원서를 쓸 때 엄마랑 많이 싸웠어요. 제가 이미 수시에서 일반 전형으로 연세대와 고려대 1단계 합격을 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서울대 정시에 지원해보고 싶어서 면접을 다 가지 않았어요. 엄마는 서울대 말고 그냥 집 가까운 평지에 있는 학교에 가길 원했어요. 그래서 제가 합격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고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썼어요. 입학 성적을 떠나 제가 서울대에 다니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것저것 하느라 학교 공부나 따라갈 수 있겠냐고요. 입학한 지 꽤 오래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 저는 늘 전교 상위권이었고 학교에서 수학능력시험 성적도 가장 좋았어요. 대학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어떻게 얘기하든 오독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동안 말하기 꺼렸을 뿐이에요.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항상 폼 안 나게 대답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다른 대학생들처럼 저도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에요. 한 가지 얘기할 수 있는 건, 그동안 제 경험에서 동력을 얻고 어떤 목소리를 내며 저를 만들어온 거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처럼 영상이나 글이 아니더라도 어떤 필드에서든 소수자 정체성에 목소리를 내는 일을 하지 않을까, 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글로벌 기업이나 NGO 단체 등에 다니면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좀 두루뭉술하죠. 그래도 제가 그 두루뭉술함 덕분에 지금까지 책도 쓰고, 영상도 만들고, 연극도 해보고 이것저것 도전하며 잘 살았던 것 같아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누구에게나 막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더 큰 설렘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법. 카메라 앞에서 수줍어하면서도 "허리를 좀 더 세워서 다시 찍어도 될까요?" 하며 자기 의사를 똑 부러지게 밝힌 김지우 작가. 단지 두 다리가 아닌 바퀴로 세상을 나아갈 뿐, 삶의 여정은 누구보다 밝고 힘차다.

#김지우 #굴러라구르님 #장애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김지우 장모리

윤혜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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