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엔 뚝심 ‘외유내강’ 경제통… 수출기반 확대 ‘현장 소통’ 올인[Leadership]

장병철 기자 2024. 5. 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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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정권 관계없이 중용 경륜 풍부
관세청장때 ‘엑스레이 검색’ 혁신
리먼 사태때 위기 극복 소방수
무협 회장단 대기업 합류 견인
대·중기 긴밀한 협력창구 역할
올 수출 7000억달러 달성 총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지난 3월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반도체 테스트 장비 기업 엑시콘을 방문해 반도체 발전 전략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제공

매주 지방 수출 기업 현장을 찾는 경제단체장이 있다. 지난 2월 회장단 만장일치로 제32대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추대된 윤진식 무협 회장 얘기다. 취임하자마자 불과 1주일 만에 기업 현장으로 달려갈 정도로 수출 기업과의 소통 강화에 ‘올인’하고 있다. 경제단체장으로는 이례적 행보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윤 회장은 이른바 고금리·고유가·고물가로 요약되는 ‘3고’ 현상과 글로벌 경기침체의 후폭풍이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경제에 어느 위협으로 다가올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끊임없이 이어온 경제 위기의 파고 속에서 한국 경제의 조타수 역할을 해온 윤 회장의 결론이기도 하다.

윤 회장은 취임사에서도 “무역의 활력을 되찾고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마케팅·금융·물류·해외 인증 등 업계의 주요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대 정부 경제정책 전반에 관여한 ‘경제통’ = 윤 회장은 지난 1972년 행정고시(12회)에 합격한 뒤 1973년 재무부 행정사무관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경제 관료의 길을 걸었다. 특히 좌우 진영과 관계없이 주요 정권마다 요직에 중용되면서 업계에서는 진정한 ‘실력파 경제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윤 회장의 이력은 그 누구보다 화려하다. 지난 김대중 정부에서는 관세청장·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산업자원부 장관, 서울산업대(현 서울과학기술대) 총장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과 정책실장을 지냈으며 18·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풍부한 정치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 윤 회장은 현 정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캠프·인수위원회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오랜 공직 경력 때문에 권위주의적일 것이란 편견이 있지만, 주변에서는 상대 의견을 경청하고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며 “공직 생활뿐 아니라 정치권에도 몸담았던 만큼 풍부한 경륜이 윤 회장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지난 4월 경기 안성시에 위치한 유·무인 소형 항공기 제조 업체 베셀에어로스페이스를 방문해 소형 항공기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제공

◇‘외유내강형’ 리더 = 윤 회장은 외유내강형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유연한 처신으로 적을 만들지 않고 두루두루 원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책 집행과 업무에 관해서는 ‘뚝심’을 갖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성향은 윤 회장의 별명에서도 잘 드러난다. 윤 회장의 별명은 ‘진돗개’인데, 이는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금융세제비서관으로 금융실명제를 입안할 때 한 달 동안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먹고 자며 일에 매달리는 모습을 지켜본 주변 인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처럼 맡은 일에 대해선 초지일관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업무 스타일 때문에 진보 정권은 물론 보수 정권에서도 두루 중용됐다.

다만 원칙과 소신 행보로 부침을 겪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외환위기 위험성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일화는 관료 사회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윤 회장은 당시 소신 발언으로 일신상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는데 IMF 사태 이후 열린 국회 IMF환란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환란위기 때 김 전 대통령을 독대해 위기 상황을 보고한 공로로 모든 의원으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다”고 전했다.

윤 회장의 좌우명은 ‘진실이 최선의 길(Honesty is the Best Policy)’이다. 이는 미국 실용주의의 대표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좌우명으로 공직 생활 과정에서 이해를 달리하는 기업이나 국민을 설득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오직 진실을 추구하고 진실만을 말하는 것임을 느껴 좌우명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진다. 윤 회장은 ‘일시적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편법을 쓰기보다는 당장은 힘들더라도 길게 보고 정도로 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그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당장은 어렵더라도 정도를 걷는 것이 그에 따른 코스트(비용)가 가장 덜 드는 방법”이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탁월한 업무 능력 = 윤 회장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늘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으로 2000년대 초 관세청장으로 재직 당시, 윤 회장은 모든 입국자의 짐을 일일이 검색하던 기존 제도를 엑스레이를 통해 모든 화물의 검색을 마치고 문제없는 여행자는 신속히 세관 검색대를 통과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혁신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윤 회장의 이 같은 조치로 인천공항은 입국 소요 시간이 세계에서 제일 빠른 공항으로 거듭나며 서비스 측면에서 세계 1위의 지위를 인정받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서울산업대 총장 시절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윤 회장은 밤낮없이 대학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이를 통해 전국 대학 평가에서 40위권이던 서울산업대를 현재 20위권 이내로 진입하는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탁월한 업무 능력 때문에 주요 정권마다 소방수 역할도 도맡아 왔다. 지난 2009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던 그를 청와대 정책실장 겸 경제수석으로 중용하며 미국의 리먼 사태로 야기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대한 전권을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금융위기를 안정적으로 극복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먼저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무협 회장 취임 후 수출 증대에 모든 역량 ‘올인’ = 무협은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제32대 회장단 공식 출범 행사를 열고 첫 번째 회의를 개최했다. 신임 회장단은 신규 회장단 멤버 16명을 포함해 총 46명으로 구성됐다. 이는 전임 회장단(38명)보다 8명 증가한 것이다.

신임 회장단은 역대 최대 규모로 LG·포스코·HD현대·두산 등 주요 대기업 경영진이 대거 합류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대기업 경영진 합류에는 윤 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이 우리나라 수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전체 수출 증대를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을 포함한 모든 수출 기업들이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윤 회장은 “32대 회장단은 무역업계가 직면한 도전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논의를 주도하고, 중장기적 미래 무역 의제를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민간 통상 활동의 대표 창구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정부가 도전적으로 제시한 ‘올해 수출 7000억 달러 달성’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윤 회장은 “정부가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인 수출 7000억 달러를 목표로 제시한 만큼 무역업계도 정부와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뛰겠다”며 “재외공관·기업인과 원팀으로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롯데마트 & H마트 MD 초청 상담회’에 참석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제공

■ 공직생활 시절의 윤 회장은…

소탈·겸손한 성품… 靑 정책실장때 비서관 호출 않고 직접 찾아가 업무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청렴하고 겸손한 성품을 갖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격식을 따지는 것을 싫어해 평소에도 직원들과 격의 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소통형 리더’로 평가받는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윤 회장은 장관급인 서울산업대(현 서울과학기술대) 총장 시절 지방 행사를 갈 때 차량 좌석이 부족하자 산업부 사무관들과 뒷자리에 섞여서 장거리 출장을 떠나는 등 평소 격식을 따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윤 회장과 함께 비좁은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출장을 함께했던 사무관들은 당시 윤 회장과 나눈 대화와 그의 소탈함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논의할 일이 생겼을 때 타 수석이나 수석실 비서관을 부르지 않고 직접 방을 찾아갈 만큼 겸손한 자세로 업무에 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직 사회의 한참 후배인 데다 나이도 어린 다른 수석이 윤 실장의 방문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당황하지만, 겸손한 그의 성품을 알기에 뒤돌아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청와대 근무 시절에는 윤 회장의 정책 수행 스타일 역시 주목을 받았다. 당시 경제수석에 이어 정책실장까지 겸직하게 되자 ‘모든 길은 윤진식에게로 통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윤 회장은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수행하는 핵심 인사임에도 가능하면 아래 비서진들에게 직접 대통령 대면 기회를 위임하고 본인은 이를 삼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장 본인이 표나게 앞에 나서기보다는 아랫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공도 세울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청와대에서 윤 회장을 가까이서 본 한 직원은 “남들은 어떻게 하면 대통령 눈에 한 번이라도 더 띌까 조급해하는데 윤 회장은 묵묵히 자기 일만 했다”며 “아마 대통령도 그런 사실을 잘 알아서 본인이 더 여유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청렴함도 갖췄다는 평가다. 윤 회장은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근무할 당시 딸을 출가시키면서 부내 직원은 물론 친구들에게까지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1946년 충북 충주 출생 △청주고·고려대 경영학과 △행정고시 12회 △재무부 금융정책과장·공보관 △대통령 경제비서관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부위원장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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