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축구처럼 병장에게 볼 다 몰아준다"…씁쓸한 아이돌 육성시스템의 현실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5. 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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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를 부탁해] K-POP 성공 신화가 시장을 옥죄고 있나 - 임희윤 대중문화평론가
 

성장에는 힘이 필요합니다. 흔들리지 않을 힘, 더 높이 뻗어나갈 힘. 들을수록 똑똑해지는 지식뉴스 "교양이를 부탁해"는 최고의 스프 컨트리뷰터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양인이 되는 힘을 채워드립니다.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아티클입니다>
 
교양이 노트
- 리스크 분산 위한 '레이블 쇼핑'
- '아이돌 공장'에 가까운 멀티레이블
- 슈퍼 IP에만 관심을 몰아주는 시장
- K-POP만의 독특한 수익 구조
- 음악 크리에이터 VS 시각 크리에이터
- 장르의 '지속가능성' 고민할 때


하이브는 좀 독특하게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 시작을 했죠. 방탄소년단이 너무나 폭발적인 성장을 단기간에 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상장을 하게 됐습니다. 상장하면서 주주들의 염려는 한 가지죠. 방탄소년단에 빅히트엔터 매출의 90% 이상이 달려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굉장히 크고 군 입대 이슈도 있었죠. 그때 마침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까지 차지하면서 굉장히 큰 성공을 거뒀고 자금 흐름이 좋아졌고 레이블 쇼핑이 가능해진 상황이었죠. 그래서 아주 단기간에 방탄소년단의 매출 비중을 거의 30%대까지 내릴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하이브 형태의 멀티레이블은 빠른 시간에 리스크를 분산하고 사세를 확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좀 강하지 않나 이런 의심이 들어요.

Q. 멀티레이블에서 고도화라는 거는 뭘 바라보고 있는 건가요?

보통 해외 선진국 사례 같은 경우에는 자생적으로 소규모로 레이블이 시작되어서 커져가는 그런 구조입니다. 그 레이블만의 색깔이 10년, 20년 이렇게 쌓인 레이블들을 보통 인수하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레이블들의 색깔이 있고 레거시가 있게 되어있어요. 하지만 K-POP은 사실 아이돌 댄스 그룹 중심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음악 장르가 그렇게 다채롭지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사실 레이블마다 뚜렷한 색깔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희미해졌고 서로의 차별성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보장하기는 힘들어졌죠. 오히려 어떻게 보면 그 멀티레이블 시스템을 갖춘 이후에 각자의 색깔이 더 돋보이도록 장려하는 게 하이브가 지향하는 바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지향만 했지 아직까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는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Q. 레이블 간의 경쟁도 엄청 심하겠어요.

굉장히 심하죠. 서로 밀치면서 경쟁하는 거예요. 기획 방향도 겹치고, 제작 방향도 겹치고, 홍보 방향도 겹치고, 소비층 타깃도 겹치고. 서로 밀칠 수밖에 없는 거죠. 서로 비교하게 되고 그리고 실제로 경쟁을 좀 조장하는 측면도 있고요.

 

"에스파, 밟으실 수 있죠?" K-POP의 명암

아일릿은 국내 하이브 산하 6개 레이블 중에서 빌리프랩이라는 레이블에서 기획되고 제작된 신인 그룹인데 이 빌리프랩에 엔하이픈이 속해 있었거든요. 그런데 엔하이픈과 아일릿을 나란히 놓고 보면 거의 공통점이 없어요. 이어지는 결이 거의 없어요. 멀티레이블 체제를 건강하게 지향한다면 아일릿이 엔하이픈 동생 그룹이라고 나왔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런 건 전혀 부각하지 않았죠. 오히려 뉴진스를 갖다 놓으면 아일릿과 훨씬 더 이어지죠.

그러니까 이런 부분이 민희진 대표 주장과 별개로 시사하는 바가 크죠. 하이브는 처음부터 아일릿을 그렇게 마케팅을 아예 했거든요. '하이브의 막내딸'. 하이브의 막내딸이 되는 순간 무조건 성공해야 해요. 르세라핌, 뉴진스, 아일릿 그렇게 되니까 사실 빌리프랩의 독자적인 기획력이나 제작 역량을 장려하고 지켜봐 주고 그러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컨트롤하는 그런 게 아니었죠. 마그네틱 같은 곡 보면 작사, 작곡, 프로듀서에 다 방시혁 의장이 참가를 했거든요. 이런 부분이 사실 민희진 대표 기자회견에서 굉장히 재미있는 키워드로 나왔던 게 '군대축구'죠. 병장 나오면 볼 다 몰아준다는 게 그런 거죠.

 
민희진ㅣ어도어 대표
"무슨 군대축구 하듯이 골을 병장한테 다 몰아주는 것처럼 나머지는 다 찌그러져 있어야 되고."

최근 현상을 보면 실제로 큰 회사 출신의 아이돌 그룹들이 데뷔하자마자 큰 성공하고 이런 것들이 이어지고 있잖아요. 이른바 아이돌을 띄울 수 있는 루트 자체가 숏폼 바이럴이라든지 이런 쪽으로 집중이 되면서 길목을 점거할 수 있는 큰 회사들의 노하우 또는 자금력이 오히려 갈수록 더 힘을 많이 발휘하는 게 아닌가. 이번에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 때 공개한 카톡 중에서 재밌는 게 많았는데, "에스파 밟을 수 있죠." 같은 것.
 
민희진ㅣ어도어 대표
"느닷없이 12월 2일에 '에스파 밟으실 수 있죠'. 저는 에스파가 목표가 아니었거든요."

설사 그게 뭐 농담이나 장난이라고 할지라도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큰 것 같아요. 진짜 건강한 시장이고 쿨한 시장이라고 하면 에스파 안 밟아도 되거든요. 그냥 자기 음악 내서 그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 확장을 시켜서 장기적으로 보고 가면 되는데 지금의 K-POP 시장 같은 경우에는 뭔가 특이한 콘셉트를 하는 아티스트라든지 프로듀서나 작사, 작곡가라든지 뭐 이런 사람들에게는 빛이 덜 가게 되고 슈퍼 IP에 모든 걸 몰아줘야 되는 상황인 거예요. 인기 있는 예쁘고 멋진 아이돌 멤버들에게 모든 빛을 다 쏴줘야 돼요. 그래서 팬들이 그들에게 종교적인 충성을 다하고 과도한 소비를 하고 그렇게 해서 매출을 증가시키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처럼 됐어요.
 

전 세계 음반 판매량 1, 2위 휩쓴 K-POP의 속사정

Q. 최근 아이돌 수익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K-POP의 특이한 지점이 거기서 발견이 되는데 음반, 그러니까 특히나 실물 음반의 비중이 굉장히 크다는 거죠. 2023년에 전 세계 음반 판매량 통계를 ifpi라고 하는 국제음반산업협회에서 냈는데 작년에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뽑혔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반 2장이 4위와 5위에 랭크가 되어 있어요. 1위와 2위는 K-POP입니다. 1위는 세븐틴의 앨범이었고요.

전 세계에 한 5억 명 정도가 쓰고 있다고 하는 스포티파이라고 하는 플랫폼에서 월간 청취자 수가 나오는데 1,000위, 2,000위까지 통계를 뽑아주는 사이트가 있거든요. 제가 거기 들어가서 인기 있는 모든 K-POP 그룹들을 검색해봤죠. 근데 순위가 가장 높은 게 BTS, 제가 약 한 달 전쯤에 봤을 때 한 177위권이었고 블랙핑크가 422위권 정도 됐었어요.* 그리고 테일러 스위프트를 꺾고 가장 많이 음반을 판 세븐틴 같은 경우에는 1,000위권 밖에 있었거든요, 1,659위.

*테일러 스위프트: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가 공연을 다니는 지역마다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본다고 해서 '테일러노믹스'라는 말이 생김. 엔터테인먼트 단독 인물로는 최초로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

*출처: Spotify - Top Artists by Monthly Listeners (kworb.net)


사실 최근으로 올수록 이른바 세계관이라고도 불리는 콘셉트가 굉장히 중요해졌죠. 초기 1, 2세대 아이돌까지만 해도 누가 더 잘생기고 멋있고 예쁘고 춤 잘 추고 노래가 좋나 뭐 이런 정도에 머물렀다면 조금씩 해외시장으로 확장돼 가면서부터 어떤 다른 차별점, 새로운 경쟁력 같은 것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세계관을 통해서 어떤 스토리 서사를 전개하면서 멤버마다 서사성을 부여하는 게 유리하다는 거를 깨닫게 된 거죠. 그래서 처음에 팬이 된 분들을 이 스토리에도 몰입하게 만들어서 그 충성도를 길게 가져가려고 하는 전략이 3세대, 4세대에 오면서 고도화된 것 같아요.


흥미로운 게 약간 단순화, 도식화해서 거칠게 말씀드리면, 청각 크리에이터와 시각 크리에이터의 충돌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K-POP 가요계를 주도해 왔던 분들은 청각 크리에이터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K-POP은 특성상 시각적인 요소가 굉장히 중요하고 갈수록 글로벌화하면서 더 중요해졌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K-POP이 구분되는 가장 큰 차별점이 시각적인 부분이고 물론 민희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돌출될 수도 있지만 시각 크리에이터들에 대한 어떤 보상 같은 것들이 충분하지가 않았어요. 음악에 대해서는 저작권 다 알고 있죠. 벚꽃 연금. '장범준 부럽다 벚꽃 연금 타겠네.' 하지만 시각적인 부분인 안무라든지 콘셉트, 기획, 제작 이런 데는 적용이 안 되는 거잖아요.
 

쓰레기처럼 버려진 K-POP 앨범

일본 시부야 거리에 버려진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앨범
 
민희진ㅣ어도어 대표

"저는 업계에서 그런 랜덤 카드(넣은 앨범) 만들고 밀어내기 이런 짓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제발. 뉴진스는 그런 거 안 하고 밀어내기 안 하거든요. 뉴진스는 안 하고 이 성적이 나왔어요. 포토카드 없이. 그게 밀어내기 한 애들이랑 같이 이렇게 들어가면요."

"이게 시장이 비정상적이게 돼요."

"그리고 그거 팬들한테 다 부담이 전가돼요. 럭키드로우로 소진해야 되지, 팬 사인회 해야 되지."

"우리 멤버들이 기죽을까 봐 갔던 애들이 또 가고 또 가고 앨범 또 사고 또 사고 이게 도대체. 저는 지금 음반시장 너무 다 잘못됐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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