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팔’ 최동원 - ‘폭격기’ 선동열 세번째 대결… 끝내 무승부 [역사 속의 This week]

김지은 기자 2024. 5. 1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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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를 꼽으라면 많은 야구팬이 최동원과 선동열을 떠올린다.

실제로 지난 2022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리그 4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40인'의 전문가 및 팬 투표 결과에서 선동열이 1위, 최동원은 2위에 올랐다.

1986년 4월 첫 선발 대결에서 선동열이 1-0으로 완봉승을 거뒀고, 4개월 뒤 최동원이 2-0으로 설욕에 성공했다.

최동원은 커브를, 선동열은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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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의 This week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라이벌 롯데 최동원(왼쪽)과 해태 선동열이 악수하는 모습. 두 사람은 세 번 맞붙어 1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자료사진

지금도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를 꼽으라면 많은 야구팬이 최동원과 선동열을 떠올린다. 실제로 지난 2022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리그 4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40인’의 전문가 및 팬 투표 결과에서 선동열이 1위, 최동원은 2위에 올랐다. 불세출의 두 투수는 세 차례 맞대결을 펼쳤다. 1986년 4월 첫 선발 대결에서 선동열이 1-0으로 완봉승을 거뒀고, 4개월 뒤 최동원이 2-0으로 설욕에 성공했다. 우열을 가리지 못한 두 사람의 승부는 1987년 5월 16일 세 번째 대결로 이어졌다.

‘무쇠팔’ 최동원은 부산 출신으로 경남고, 연세대를 거쳐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이듬해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두며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다섯 살 아래인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은 광주 태생으로 광주제일고, 고려대를 졸업하고 1985년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최동원은 커브를, 선동열은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삼았다. 양 팀의 에이스였던 두 사람의 대결은 영·호남 지역 경쟁과 학연, 제과업계 라이벌인 소속팀의 기업 경쟁까지 더해져 국민적 관심과 화제를 모았다.

이날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2-1로 끌려가던 해태가 9회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며 승부는 원점이 됐다. 연장 15회까지 완투하며 최동원은 209개,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졌다. 요즘 선발투수의 한계 투구수인 100개의 2배가 넘는 기록이었다. 5시간 가까이 혈투 끝에 결국 2-2 무승부로 끝이 났다.

최동원은 선동열의 손을 맞잡으며 “동열아 우리 끝날 때까지 함 던져 볼까?”라고 농담을 건넸고 선동열은 “형님 한번 해 볼까요?”라며 웃음으로 되받아쳤다. 이 경기를 끝으로 두 사람의 맞대결은 벌어지지 않았고, 1승 1무 1패로 막을 내렸다. 이후 선동열은 최고의 투수로 계속 이름을 날리다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해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현역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와 기아 타이거즈 감독,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반면 최동원은 1988년 선수협의회 결성을 주도하다 구단에 미운털이 박혀 삼성 김시진과 트레이드됐다. 1990년 선수 생활을 마감한 그는 한화 이글스 2군 감독과 KBO 경기운영위원을 맡았고,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2011년 53세로 별세했다. 당시 빈소를 찾은 선동열은 “라이벌이라고 부르지만, 최동원 선배는 존경했던 나의 우상이자 롤모델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맞대결에 대해서는 “그 경기는 잊을 수 없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둘 다 200개 이상 투구를 한 자존심 대결이었다”고 회고했다.

드라마 같은 두 사람의 대결은 2011년 영화 ‘퍼펙트 게임’을 통해 재현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전설의 명승부는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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