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소백산 능선서 멧돼지떼 조우…"불빛 밝히고 크게 소리 질러라"

서현우 2024. 5. 1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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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자와 구한자 (2) 제2연화봉대피소] 소백산 등산객 구한 국립공원 직원의 조언

조난. 문자 그대로 재난을 만났다는 뜻이다. 재난의 크기는 생명에 즉각 위협을 줄 정도로 클 수도 있고,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로 작을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똑같은 건 하나 있다. 바로 어떤 도움이든 조난자들에겐 매우 귀중하다는 점이다. 월간<山>은 등산 중 조난을 당한 이들과 이들을 구하려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아무리 작은 도움의 손길이라도 모두 귀중한 선의며 아무리 작은 조난이더라도 남들에겐 큰 교훈을 준다. 제보는 blackhouse@chosun.com. _ 편집자 주

대전한밭수목원에서 정지민 계장과 김보리씨가 5년 만에 재회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에요~"

우리가 등산할 때 가장 많이 듣는 거짓말 1위다. 그런데 사실 거짓말이 아닌 경우도 많다. 실제로 그들에게 남은 거리가 '조금'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산 초보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산행 시간 계산이다. 산은 다 같은 산이 아니라 같은 1km의 길이더라도 설악산의 것과 아차산의 것이 다르다. 심지어 같은 산에서도 급격한 오르막과 험준한 암릉길 1km와 둘레길같이 평탄한 1km의 길이 공존한다. 경험이 쌓이면 등고선지도만 봐도 어느 정도 시간 계산이 서지만 초보에겐 아직 먼 얘기다.

그리고 개인 차이도 있다.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걷는 지리산 화대종주 약 45km를 트레일러너들은 시속 5km, 9시간대에 끝낸다. 일반적으로는 20시간 내외로 걸리는 길이다. 국립공원공단은 산길 2.5km 거리를 걷는 데 평균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며, 구간별 난이도를 차등 적용해 예상 소요시간을 따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일반인' 기준이다.

고치령 들머리에서 오르는 길이 헷갈려 탐방로가 아닌 곳으로 갈 뻔 했다.

드넓은 소백산 능선에 단 둘만 남겨져

2019년 10월 20일 일요일, 친한 지인과 함께 소백산 종주에 나섰던 김보리씨도 산행 소요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등산 초보였다. 등산을 아예 안 다녀본 건 아니었지만 그 전까진 운동화를 신고 짧은 반나절 산행만 즐겼다. 등산 경험이 많은 지인을 굳게 믿고 비상식량 조금과 등산화 한 켤레만 덜렁 구입해 따라 나섰다. 경북 영주에서 하루 잔 뒤 아침 버스로 좌석리에서 내려 고치령에서 출발, 제2연화봉대피소에서 하루 잔 뒤 죽령까지 걷는 25.5km 1박 2일 코스였다.

"지인이었던 친한 언니가 지리산 종주도 해봤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도 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냥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오전 7시에 좌석리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고치령에 7시 40분에 도착했죠. 그것도 쭉 오르막이라 체력소모가 꽤 컸어요. 이후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는데 제2연화봉대피소에 적어도 오후 6시에는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죠. 언니도 그 시간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고 했고요."

가을색이 완연했던 소백산은 분명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전달 태풍 링링이 지나간 산길은 너무나 험준했다. 쓰러진 나무들이 즐비해 길을 찾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가뜩이나 힘든 고치령 오르막이 더욱 버거웠다.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탐방로에 쓰러진 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물을 엄청 많이 마셨어요. 도중에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 큰 소백산에서 단 5명밖에 만나지 못했어요. 그마저도 마지막 2명은 국립공원공단 직원이셨죠. 하산시간이 다 된 탓에 아직 하산하지 않은 등산객을 확인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들에게 약간의 물을 얻은 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녁 6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비로봉에 도착했다. 바닥난 체력으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해는 지고 있었고, 제2연화봉대피소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봉우리가 잔뜩 남아 있었다.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하산하거나 중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계속 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대피소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대피소 입실 시간이 동절기에는 저녁 6시까지인데 그때까지도 저희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우리 위치와 이동 상황을 알리고 빨리 가겠다고 했어요."

가파른 오르막과 희미한 탐방로로 인해 초반에 너무 체력을 많이 소모했다.

다행히 지인은 산행 경험이 풍부한 탓에 장비도 어느 정도 갖춰둔 상태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챙겨 왔다는 비상용 랜턴을 나눠줬다. 희미한 랜턴 불빛에 의지해 무작정 제2연화봉을 향해 걸었다. 스마트폰 배터리도 거의 바닥이 나서 아예 방전되는 것을 막고자 전원을 꺼버렸다. 아직 힘이 남아 있던 지인은 먼저 대피소에 가서 구조요청을 하겠다며 앞서 갔다. 둘 사이의 격차는 산봉우리 하나만큼 벌어져 김씨는 지인의 존재를 먼 산 위에 불빛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넓은 소백산 능선에 등산객은 단 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고요한 산속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능선에 있는 건 우리뿐이 아니었다. 다시 스마트폰을 켜고 전화를 걸었다. 지인은 산속에서 커다란 동물 같은 것과 눈이 마주쳤다며 빨리 오라고 울먹였다. 야생동물을 무서워하는 지인과 달리 김씨는 겁을 초월한 상태였기에 부지런히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인기척' 내려 사이렌을 틀다

"그때 제 바로 옆에서 '파바박'하고 동물 발자국소리가 여러 개 들렸어요. 한 마리가 아니고 떼거리로 있었던 거죠. 그제야 식은땀이 쫙 쏟아지더라고요. 멀리 있다고 생각했을 땐 무섭지 않았는데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어요."

바로 옆 의문의 존재를 극히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지인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그러는 사이 지인은 대피소의 한 레인저와 통화하며 현재 위치와 상황에 대해 알렸다. 그러자 그 레인저가 마중을 나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행동수칙을 알려줬다.

김보리씨가 정지민 계장과 함께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레인저분이 '최대한 갖고 있는 불빛은 다 밝히고, 음악도 켜고 소리도 내면서 오라"고 알려줬어요. 그래서 유튜브에서 사이렌 소리를 찾아서 최대 음량으로 틀었어요. 아껴뒀던 배터리를 다 써버렸죠."

그렇게 걸어가다 보니 낯선 불빛이 보인다. 한 걸음에 달려 나온 레인저의 것이었다. 김씨는 특히 더 겁을 먹었던 지인이 레인저를 만나자마자 안도한 나머지 와락 껴안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레인저의 기억은 달랐다.

"아니 그때 안지는 않았는데요. 하하."

그때 김보리씨를 마중하러 나왔던 레인저는 정지민 계장이다. 그가 5년 만에 다시 한 번 김보리씨를 마중 나왔다. 국립공원공단 원주 본사에서 근무 중인 그가 김씨의 직장 인근인 대전 한밭수목원으로 왔다. 먼저 김씨는 미뤄 뒀던 감사인사부터 건넸다.

"그 다음날 컨디션을 회복했고 구조하러 오신 분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만날 수 없어서 그대로 대피소를 퇴실했었어요. 사실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월간<山>과 국립공원공단이 이런 에피소드를 찾고 있다고 해서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자 사연을 기고했죠."

정 계장은 겸연쩍었다.

"제가 두 분을 구조했다기보다는 그냥 대피소 직원 본연의 업무를 수행한 것에 불과해서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곤 좀 쑥스러웠어요. 더 험한 곳에서 구조하는 레인저 분들이 많거든요."

그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봤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죽령으로 내려섰는데 멧돼지 만났을 때 행동요령이 보였다.

"소백산이 재밌는 게 비로봉 다음에 제2연화봉대피소까지 사이에 있는 봉우리가 제1연화봉, 연화봉, 그리고 제2연화봉입니다. 그래서 대피소 지연 입실자 확인 차 전화했을 때 분명 '연화봉에 다 와간다'고 해서 실은 시간에 맞춰서 바로 마중을 나갔었거든요. 그런데 한참을 대기해도 안 오시는 거예요. 제1연화봉에 계셨는데 그걸 연화봉으로 착각하신 거죠."

그리고 멧돼지 무리는 정 계장이 먼저 만났다. 도무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이들을 좀 더 찾아보고자 등산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는데 갑자기 주변 수풀에서 발굽소리가 경마장에 온 듯 여러 개가 진동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라 몇 마리인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최대한 이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뒷걸음질 쳐서 물러선 뒤 다시 김씨 일행에게 연락을 취하려 했지만 계속 전화기가 꺼진 상태였다.

너무 겁먹어 반대로 숨죽일 뻔

"당시 멧돼지가 번식기라 많이 예민할 때였어요. 연중 가장 위험한 시기라 저도 긴장을 많이 했죠. 국립공원에서 야간산행이 불법인 이유가 사실 이런 것 때문이거든요. 사람들은 랜턴만 있으면 걸을 수 있다고 하는데 밤이 되면 국립공원은 짐승들의 것이 됩니다. 그만큼 위험성이 높죠."

중간 중간 스마트폰을 켰던 김씨 일행과 어렵게 다시 연락이 닿았다. 정 계장은 즉각 멧돼지 대응 행동요령에 대해 일러줬다. 그가 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으면 김씨 일행은 그 요령의 정반대로 행동할 뻔했다.

김보리씨는 창피한 기억이지만 다른 등산 초보들이 무모하고 경솔한 등산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제보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니까 멧돼지들을 자극하지 않되 우리가 여기 있다는 인기척을 계속 내는 게 중요하잖아요? 저희는 너무 무서우니까 오히려 조용히, 자극하지 않고 가야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약 그렇게 숨죽이고 가다가 새끼를 지키는 멧돼지 어미를 자극했으면…."

"운이 좋았습니다. 상황이 마무리되고 대피소로 가면서 사실 좀 재밌었던 게 두 분 중에 유난히 더 힘들어하는 분이 있었어요. 거기가 오르막이라 제가 대신 들어드리려고 배낭을 달라고 했는데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죠. '끝까지 배낭메기 내기라도 했나?'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그것도 저였을 겁니다. 정신이 없기도 한데 폐를 끼쳐드렸단 생각에 너무 죄송해서 거기에 더 폐를 끼치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대피소에 도착해 먹은 식사.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제2연화봉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8시 30분, 13시간의 산행이 끝났다. 하루 종일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했다. 물도 초보인지라 넉넉하게 챙기지 못했다. 500ml 생수 2~3병뿐이었는데 그마저도 고치령 오르막에서 빨리 소모해 버렸다. 먼저 취사장에 들어가서 절대 잊지 못할 맛의 라면과 소시지를 허겁지겁 먹은 뒤 9시 소등에 맞춰 뻗어버렸다. 그리고 거의 12시간을 잔 뒤 다른 등산객은 일찌감치 다 떠난 9시 10분에 대피소를 나서 하산했다. 정 계장이 감사 인사를 못 받은 건 다른 업무 탓이었다.

"보통 대피소에 머물던 분들이 아침 일찍 떠나기 때문에 오전 7시에 물건 판매를 시작해요. 그러다 8시 좀 넘으면 이미 모든 분들이 다 살 것도 사시고 떠나죠. 그러면 굳이 판매 창구에 있을 이유가 없으니 연락처만 남겨놓고 그때부터 청소도 하고 시설 관리도 하고 다른 업무들을 해요. 그래서 아마 저를 찾지 못하셨던 것 같네요."

김씨는 그렇게 등산화를 신고 처음 나선 산행을 죄송하고 창피한 기억으로 남기게 됐다. 하지만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더 폭발적으로 꾸준히 등산을 다니게 됐다고 했다.

"너무 무섭고 힘들었기 때문에 준비 없이 산에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딱 제 체력에 맞게 코스를 짜서 등산을 했어요. 무조건 해가 지기 전에 내려왔죠. 늦어질 것 같으면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는 방법을 택했어요. 고등학교 이후로 보지도 않았던 등고선도 유심히 보게 됐죠."

김씨는 이후 국가지점번호와 다목적표지판을 사진으로 남기는 습관이 생겼다.

이젠 '국가지점번호' 찍으며 등산

무엇보다 정말 좋은 습관을 들였다. 바로 '국가지점번호' 혹은 '다목적 위치 표지판'을 볼 때마다 촬영하는 것이다. 이들은 도로명 주소가 부여되지 않은 지역에 설치돼 있는 것들로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조난됐을 때 마지막으로 본 지점번호를 구조대 측에 신고하면 이들이 헤매지 않고 정확하게 출동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산꾼들이 귀찮다는 이유로 등한시하는 일이다.

김씨는 현재 대전시립연정국악원에서 피리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태평소, 생황 등 특수악기도 다룬다. 아무래도 등산을 하면 폐활량이 좋아지니 연주에 도움이 되냐고 묻자 그는 "실은 연주보다는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제는 등고선 지도도 능숙하게 볼 줄 안다.

"직장에서는 전통음악을 하지만 따로 '봉숭아프로젝트'란 이름의 팀에서 창작 음악을 하고 있어요. 저는 제 경험을 음악에 녹이는데 때때로 자연이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처럼 남은 그때의 장면, 느낌을 떠올리고 이를 음악으로 만드는 거죠. 유튜브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소백산의 기억을 음악으로 만든다면 결코 잔잔하진 않을 것 같네요."

김씨는 "다시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민폐였다"고 되풀이했다. 그래서 "창피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를 무릅쓰고 기꺼이 그때의 기억을 나누려고 마음먹었다. 그 이유는 그가 월간<山>에 보낸 아래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그때의 내가 얼마나 무지했고, 무모했으며, 그러한 나의 경솔한 행동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무지했던 나의 행동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럼에도 무모함과 패기만으로 위험한 등산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선택과 순간의 욕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또 이런 우리를 도와주는 국립공단 레인저 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인력인지를 알리고 싶어 이렇게 사연을 적게 되었다.

사랑하는 우리나라 국립공원들을 오래오래 만끽하기 위해 앞으로도 안전한 등산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국립공원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국립공원 레인저 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힘들게 도착했기에 제2연화봉대피소 일출이 배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진은 김보리씨와 동행했던 지인이 담았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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