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스승의 날' 선생님께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를 보냈다

노스캐롤라이나(미국)=오상헌 기자 2024. 5. 13.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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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감사 주간을 맞아 학부모들의 기부를 독려하는 미국 초등학교 메일

'선생님 감사 주간'(5월6~10일)을 며칠 앞둔 이달 초 아이가 다니는 미국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에게서 한 통의 메일을 받고는 고민에 빠졌다. 선생님들을 위해 소액(25달러)을 기부하라는 내용이었는데 "기부도 기부지만 담임·보조교사에게 기프트카드라도 사서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국의 '스승의 날'처럼 미국에선 매년 5월 첫 주 화요일이 '교사의 날'(National Teachers' Day)이다. '선생님 감사 주간'(Teacher Appreciation Week)인 5월 첫 번째 주에 학생과 학부모들은 선생님들에게 감사 카드와 소소한 선물로 마음을 전하고 학교에 기부금도 낸다.

물론 의무가 아닌 자율이지만 한국 학부모들이 미국에서 가장 큰 이질감을 느끼는 지점이 바로 '기부'(Donation)와 '선물'(Gift) 문화가 아닐까 싶다. 촌지는커녕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으로 작은 선물도 터부시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학부모들이 수시로 학교에 기부하고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전달한다.

◇교사엔 '선물' 학교엔 '기부' 자연스러운 美공립학교

미국 교사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 중 하나는 현금처럼 쓸 수 있는 기프트카드다. 선생님 감사 주간은 물론 추수감사절, 핼러윈 데이, 크리스마스, 심지어 교사 생일 때도 20~50달러 정도 충전된 기프트카드를 감사 카드에 넣어 보내는 경우가 흔하다. 동네 마트마다 기프트카드를 따로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감사 카드가 빼곡히 진열돼 있을 정도다.

선물 시즌이 되면 학부모 대표격인 '룸맘'(Room Mom)이 정보 제공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의 생일을 알려주거나 교사들의 세세한 취향을 학부모 전체 메일로 전달하는 식이다. 담임과 보조교사들이 선호하는 마트와 식당, 카페 정보 등의 리스트가 들어 있다.

촌지가 구시대의 유물이 된 한국적 정서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미국만의 독특한 감사 문화와 열악한 공교육 재정 시스템을 마주하면 이른바 '선물의 일상화'를 아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거주 중인 한 교민은 "값을 따지지 않고 선물 자체에 의미를 두는 미국에서 선생님에게 주는 선물은 감사와 고마움을 표시하는 마음이자 성의여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며 "뇌물이나 촌지의 성격은 전혀 없다"고 했다. 다른 한국인 학부모도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 선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차별을 받았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의 한 마트에 설치된 기프트카드 진열대
'십시일반' 기부의 일상화, 학교 보수 공사도 '도네이션'

미국 학교의 자연스러운 기부, 선물 문화는 재정적으로 위기에 처한 미국 공교육 시스템과 공립학교 교사들의 열악한 처우와도 적잖이 관련 있어 보인다. 미국 공립학교에선 학부모들의 지원으로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 기자재를 확충하는 일이 다반사다. 학기가 시작되면 수업에 필요한 각종 학용품과 학급 공동 비품을 구입해 보내 달라는 교사의 메일이 먼저 날아온다. 학부모의 십시일반으로 학급 용품이 채워지지 않으면 담임교사가 자비로 부족분을 충당해야 한다고 한다.

교실이나 교내 놀이공간 보수 등에도 학부모들의 기부와 금전적 지원이 큰 역할을 한다. 막대한 재정적자로 미국 연방정부의 교육 예산이 수십년간 삭감돼 온 데다 각 주 정부들도 재정난을 이유로 교육지원금을 줄이는 추세여서다. 실례로 올해 초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교실이 있는 학교 건물에 작은 화재가 발생했는데 아니나다를까 건물 전체 보수 공사를 위해 기부를 해 달라는 요청이 메일로 왔다.

공교육 예산의 일부를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지갑으로 메우고 있는 셈인데 교육당국의 지원이 상대적으로 촘촘한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올해 12월 미 대선을 앞두고 일부 교사 노조들은 집권 시기 교육 예산을 대폭 줄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고 교육예산 증액을 공약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미교육협회(NEA)가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한 노스캐롤라이나 주 교사들의 평균 연봉 자료
'박봉'에 투잡 뛰고, 아예 학교 떠나는 美공립 교사

교육 예산 부족은 미국 교사들의 열악한 처우로 바로 이어진다. 고된 업무와 낮은 임금에 투잡(Two job)을 뛰거나 아예 교육 현장을 떠나는 교사들이 매년 급증 추세다. 전미교육협회(NEA)가 교사의 날인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한 교사 급여 보고서에 따르면, 2022~2023년 미국 전체 교사의 평균 연봉은 6만9544달러로 집계됐다.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교사의 급여 수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2009년과 견줘 4273달러 가량 되레 줄었다고 한다.

특히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우 교사 평균 연봉이 5만6559달러로 최저생활임금(5만5545달러) 수준에 그친다. 미국 전체 주 가운데 38위다. 미국 경제 규모와 팬데믹 이후 살인적인 고물가를 감안하면 교사 직업만으론 생활이 벅찬 박봉이다. 이 지역의 왠만한 주택 월세만도 매달 2000달러를 웃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노스캐롤라이나에선 근 20년 이래 최대 규모인 1만 명 이상의 공립 교사들이 교단을 떠났다. 전년보다 무려 42% 증가한 이직 규모다. 교사 부족은 미국 전역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팬데믹 이후 교사들의 행정 업무가 가중됐고 소셜미디어 확산으로 학부모들의 간섭과 교권 추락 사례가 잦아졌다"며 "교사들의 교단 이탈은 미국 공교육 시스템의 위기를 방증한다"고 분석했다.

노스캐롤라이나(미국)=오상헌 기자 bborir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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