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날 때 부업, 수익 1000만원” 홍보의 진실

신다은 기자 2024. 5. 13.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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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단독]지노위,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 부당해고 첫 인정…업계 1위 ‘크라우드웍스’ 쪼개기 계약·부당 처우 등 일삼아
크라우드웍스에서 데이터 라벨러와 검수자로 일한 최아무개씨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 받았다. 김진수 선임기자

네이버의 메신저 앱 라인(LINE) 쇼핑 사이트에 접속한다. 유명 일제 기저귀 ‘군’(GOO.N)을 검색해본다. 각 사이트에 흩어진 상품 정보가 제목에 일목요연하게 담긴다. ‘군플러스·민감 피부용·테이프형·신생아용·3S사이즈·36매.’ 실시간 가격 비교도 한다. 특정 사이트의 판매가가 달라지면 곧바로 최저가 순위에 반영되는 구조다. 이 검색 결과는 인공지능(AI)의 작품일까. 네이버는 그렇다고 했다. “회사가 꾸준히 고도화한 카탈로그 생성·매칭 기술을 일본으로 확장”(<아이티(IT)조선> 2022년 3월31일 기사)한다고 네이버는 소개했다.

건당 20원 ‘디지털판 인형 눈 붙이기’

사실 이 ‘기술’에는 사람의 손길이 투입됐다. 새로 적용한 인공지능은 오류가 잦았다. 36장짜리 기저귀 상품에 18장짜리 상품 링크를 잘못 끌어오는 식이었다. 스무 명 남짓 되는 인원이 실시간으로 상품 소개 페이지(카탈로그)를 생성하고 오류를 바로잡았다. 이런 작업을 ‘데이터 라벨링’(인공지능 학습 개선에 투입되는 노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네이버가 요청한 작업 일감과 작업자를 잇는 ‘데이터 하청 기업’ 크라우드웍스가 등장한다. 최씨는 크라우드웍스가 이 작업에 투입한 스무 명 남짓한 작업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2021년 8월부터 라인 쇼핑 카탈로그 오류 검수 작업을 해오던 최씨가 2023년 12월 돌연 계약 종료로 일자리를 잃었다. 최씨는 자신이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2024년 4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에서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가 법적 노동자로 인정된 첫 사례다.

라인쇼핑 홈페이지가 보여준 ‘군’ 기저귀 상품 갈무리. 상세한 상품 스펙이 제목에 적혀있다. 하단은 사이트별 실시간 가격 비교 순위다. 쇼핑 인공지능의 결과물이라고 네이버는 소개했으나, 모니터 뒤 오류를 잡는 것은 사람이었다.

인공지능 시대라지만 자동화 기술엔 여전히 오류가 많다. 인공지능은 초코머핀 사진과 치와와 사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동 글자 인식도 틀리기 일쑤다. 인공지능 대신 사람이 각 사진에 이름을 붙이고 인공지능이 잘못 입력한 글자를 바로잡는다. 이런 노동을 광범위하게 칭하는 말이 데이터 라벨링이다. 인공지능이 학습하기 쉽도록 각종 데이터에 꼬리표를 붙인다는 뜻이다.

이렇게 인공지능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아마존 같은 기업도 연중무휴 24시간으로 전세계에 분산된 인력에 머신러닝과 데이터 수집 등의 일감을 수행하면 파트타임으로 돈을 주는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MTurk)라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크라우드웍스도 마찬가지다. 주로 IT 기업 고객사의 데이터 라벨링 일감을 대거 떼어와 잘게 쪼갠 뒤 수많은 작업자에게 뿌린다. 이 기업은 “틈날 때 부업할 수 있다” “(월) 수익 1천만원도 가능하다”는 홍보 문구를 내세웠다. 크라우드웍스가 자랑하는 ‘데이터 작업자 풀’은 2021년 20만 명에서 2024년 60만 명으로 대폭 늘었다.

정부도 앞장서서 시장을 키웠다. 데이터 라벨링 관련 사업계획을 낸 기업에 바우처 형태로 인건비를 지원했다. 2020년 7월, 정부가 발표한 공공일자리(일명 ‘데이터 댐 일자리’)의 76%(38만9천 개 중 29만5천 개)가 데이터 라벨링 관련이었다. 일자리가 급한 이들 사이에서 데이터 라벨링은 금방 입소문을 탔다.

화려한 홍보 뒤에는 어두운 그늘이 숨어 있다. 음식 사진 찍기처럼 간단해 보이는 노동도 회사의 세세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으면 작업물이 반려됐다. 프로젝트 참여자로 선정돼도 실수가 잦으면 갑작스레 계약이 해지됐다. 대부분이 프리랜서(용역) 계약을 맺어 노동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건당 단가는 20원부터 시작했다. ‘디지털판 인형 눈 붙이기’라는 자조적 별명이 붙었다.

무늬만 프리랜서, 실질은 ‘근로자’

크라우드웍스는 최씨에게 근로계약서가 아닌 프리랜서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엔 굵은 글씨로 “근로계약이 아니므로 주휴수당, 연차수당, 가산수당 등이 지급되지 않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계약기간도 들쑥날쑥했다. 짧게는 2주, 길면 3∼4개월짜리 단기 용역 계약을 맺었다. 최씨는 이 계약을 12번 갱신하며 2년5개월 동안 쭉 일했다.

단기 용역 계약은 일감 수급이 들쑥날쑥한 데이터 라벨링 업계의 돌파구다. 1∼2개월씩 쪼개서 용역 계약을 체결한 뒤 원청 쪽 일감이 줄면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종료한다. 그래도 문제가 안 된다. 2년 이상 일한 계약직 노동자에 대해선 기업이 정규직으로 대우할 의무가 있지만, 프리랜서에 대해선 그런 의무가 없다. 기업 관점에선 ‘유연한’ 대처지만, 노동자 입장에선 언제 일자리가 끊길지 모른다.

이런 방식은 실수가 잦거나 속도가 느린 작업자를 솎아내는 데도 유리했다. 크라우드웍스는 최씨와 동료들에게 다양한 계약 해지 사유를 내걸었다. 컴퓨터 로그 기록이 비어 있는 경우, 일정 기간 메신저 연락에 답하지 않는 경우, 자잘한 오류 개선이 안 되는 경우 등이었다. “이런 행동은 계약 해지로 이어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회사 담당자가 자주 공지했다.

작업량 못 맞추면 계약 해지·단가 삭감

그저 엄포만일까. 크라우드웍스의 또 다른 노동자 정아무개씨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걸 봤다. 2023년 11월, 인공지능 학습용 대화문을 만들 때의 일이다.

“회사가 작업자들에게 일주일치 작업 목표량을 100∼300건 정도 배분했다. 일주일이 지난 뒤 작업량을 못 채운 사람이 하나둘씩 카카오톡방에서 퇴장하더라. 계약이 해지된 거다. 어떨 땐 해지는 안 하는 대신 단가를 절반으로 확 깎았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자는 급여 등 노동조건을 구체적으로 알 권리가 있다. 노동자 동의 없이 노동조건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수 없다. ‘중대한 사유’가 아니면 해고되지 않는다. 뒤집으면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정씨는 이런 보호를 기대할 수 없었다.

배달라이더와 웹툰작가, 대리운전 기사 등이 모인 ‘플랫폼노동희망찾기’ 회원들이 2022년 9월28일 국회 앞에서 ‘접속! 플랫폼월드, 우리의 노동을 잇다’라는 주제로 플랫폼노동자대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프리랜서가 되려면 사용자의 상세한 지휘·감독 없이 독립적으로 업무를 주도하고 완수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가 업무 내용과 방식 등을 강하게 통제한다면 노동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회사가 노동 통제 · 긴급 지시도 

최씨가 일하는 방식은 사실상 노동자나 다름없었다. 근무지만 재택일 뿐 회사 요청으로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주 5일 근무했다. 사전 승인 없이 작업시간을 임의로 옮길 수 없었고 출퇴근 일지도 매일 작성해야 했다. 작업을 다 끝냈다고 자리를 뜨면 로그 기록을 토대로 임금을 깎았다. “몇몇 작업자분이 8시간 중 작업 기록이 없는 빈 시간(1시간 이상)이 있는 경우가 발견되었습니다. 해당 시간은 시급에서 제외 후 비용 지급하겠습니다.”(회사 담당자의 작업 공지)

업무 지시도 매우 구체적이었다. 크라우드웍스가 배포한 작업자 교육용 엑셀파일엔 상품 제목 쓰는 순서까지 정해져 있었다. 가령 아기 기저귀 상품 제목을 쓸 때 기저귀 제품명-테이프타입-사이즈-매수 순으로 써야 하고 임의로 순서를 바꾸는 건 불가하다. 순서를 틀리면 지적받고 고쳐야 했다. 회사는 작업자별로 업무량도 할당해 매일 공지했다.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업무는 몇몇 작업자를 호명해 따로 시켰다.

긴급 지시도 있었다. 주로 경쟁사에 올라온 인기 상품을 라인 쇼핑에도 걸어달란 네이버의 요구였다. 관련 연락을 받은 크라우드웍스 직원이 긴급 지시를 내리면 작업자들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그 일을 최우선순위로 처리했다.

이런 업무 방식은 대법원이 오랜 기간 축적한 노동자 판단 기준(대법 2016다277538)에 대부분 부합한다. △업무 내용과 근무 시간 등을 사용자가 정하고 △노동자가 이에 구속되며 △사용자가 직접 업무를 지휘·감독했다. 최씨의 근무 방식이 상대적으로 논쟁이 없는, 전통적 노동자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크라우드웍스는 ‘작업시간 조율이 어렵다’고 채용 공고에 빨간 글씨로 강조하고는 용역 계약을 맺었다. 극도의 무지일까, 의도된 고의일까.

“아무리 기업이 노동법에 무지하대도 근무시간을 안내하면서 프리랜서 계약을 제안할 정도로 모를까요. 이런 유형은 고의에 가깝다고 봅니다. 일을 구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사정 등을 알았겠죠.” 2021년 데이터 라벨링 실태조사를 진행한 문종인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실장의 말이다.

크라우드웍스는 계약 도중인 2023년 5월 ‘계약직 변경을 검토한다’고 공지한 바 있다. 설문조사도 진행했지만 끝내 계약 형태를 바꾸진 않았다. 기업이 노동법 위반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답장 늦었다고 계약 종료?

최씨도 자신이 맺은 계약을 유심히 보진 않았다. 그저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까지 일하겠거니 했다. 2023년 12월8일, 13번째 계약이 갑작스레 종료되기 전까지는.

그날은 유독 일이 많았다. 온종일 작업자 질문에 응대하고 늦은 밤에야 밀린 검수 업무를 시작했다. 오후 6시47분, 최씨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갱신을 원하면 이튿날 11시까지 회신하라’는 회사 담당자 문자메시지였다. 최씨는 이 문자메시지를 이튿날 오후 1시께 뒤늦게 확인했다. 부랴부랴 답장했지만 크라우드웍스 쪽은 “기한을 넘겼다. 계약 종료한다”는 답을 보내왔다.

크라우드웍스가 매번 의사를 물어가며 계약을 갱신한 건 아니다. 최씨가 일한 2년5개월 동안 회사는 별다른 질문 없이 계약을 자동 갱신했다. 그러다 2023년 8월 처음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의사를 확인했고, 이때는 문자가 온 시간이 일과시간 중이어서 답을 했다. 하지만 12월8일 온 두 번째 문자는 일과시간 이후에 도착해 놓쳤다.

최씨는 다급해졌다. ‘답장이 늦었단 이유로 갑자기 계약을 종료하는 게 맞느냐’고 항의했다. 회사의 답은 짧았다. “모든 대상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 내용이라 예외적으로 (계약 갱신) 처리가 불가합니다.” 그렇게 최씨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청천벽력 같았다.”

유사한 노동, 사내에 더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잘린 사유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 못하는 작업자들 수시로 물갈이하려고 단기 계약을 고집한 거 아닐까, 그러면서도 계약기간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되니까 그런 사람들을 따로 정리하려 한 게 아닐까 싶어요. 처음엔 개인적인 억울함이 컸는데, 시간이 지나니 저 같은 노동자를 대한민국 법이 못 지켜주면 어떻게 하나 싶더라고요.”

최씨는 자신이 일하던 프로젝트에 34명이 소속돼 있고 이 가운데 2년 이상 근무자가 12명이라고 말했다. 최씨와 유사한 일을 하면서도 노동법 보호에서 벗어난 이가 더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크라우드웍스 쪽은 구체적 숫자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한겨레21>은 최씨 판정 사건에 대한 회사의 입장과 프리랜서 인원 현황, 향후 개선 여부 등을 상세히 질의했다. 크라우스웍스는 이 가운데 아무것도 답하지 않았다. “현재 지방노동위원회 초심 판정문 송달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슈가 종결된 사안이 아니라 구체적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 일일이 답변드리지 못한 점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만 밝혔다.  ♦ 이 기사는 2부로 이어집니다. ♦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한겨레21> 1513호 표지이야기 '데이터 라벨링' 노동실태 

'사무실로 출퇴근하는데 프리랜서 라니요'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4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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