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법 개정안, 알권리 위축 악용 소지”

2024. 5. 1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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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인터뷰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이 지난 5월 7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정보’는 힘의 원천이다. 정보를 독점한 자는 판세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 불리한 정보는 숨기고, 유리한 정보는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정보가 없는 쪽은 끌려다니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예가 권력과 시민의 관계다. 이런 정보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정보공개제도다. 1998년 도입됐다. “국민의 알권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국민주권주의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 중의 하나”(행정안전부 발간 정보공개 연차보고서)로 평가된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정보 불평등과 독점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펼친다. 정보를 은폐하려는 권력에 맞선다. “누구나 알 수 있다면 세상은 바뀐다”는 구호를 바탕으로 ‘모든 시민이 알권리를 누리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최근 검찰의 특수활동비 등 예산의 집행 내역 공개와 분석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시민, 언론인, 활동가,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도 한다.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정보공개청구를 많이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만큼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국가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시민이 많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요한 문제는 공공기관의 정보 은폐와 비공개 남용”이라며 “정보를 고의로 은닉하는 등 정보공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 등 제재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2008년 정보공개센터의 창립 구성원이다. 지난 5월 7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보공개의 제도와 운영을 둘러싼 현안과 개선 방안 등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안부터 물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 2일 ‘악성 민원 방지 및 민원 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엔 정보공개법에 ‘청구권 남용 금지’ 규정 신설도 담겼다. ‘부당하거나 과다하게 제기되는 정보공개청구’는 내용을 판단하지 않고 종결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청구권 남용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정보공개청구심의회의를 거치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 1월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도 ‘부당하거나 사회 통념상 과도한 요구에 해당하는 청구는 종결 처리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대체로 힘 있는 기관이 정보를 잘 공개하지 않는데, 정보공개청구는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단이다. 청구를 많이 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정보의 공개가 잘 안 되고 있다는 뜻이다. 또 국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번 행안부의 대책은 어떻게 보는지.

“과도한 청구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정말 필요해서 많은 청구를 할 때가 있다. 또 공개한 내용이 모호하거나 미흡해 다시 청구해야 할 때도 분명히 있다. 이를 모두 ‘악성 민원’으로 치부한다면 문제가 된다. 정보공개를 다량 청구하는 것을 무조건 공무원을 괴롭히는 행위로 인식하도록 할 우려도 있다. 과도하게 청구하는 몇 명이 있는 건 사실이다. 2022년 기준 정보공개청구 건수는 약 181만건인데, 상위 10명이 청구한 게 약 57만건에 이른다. 이들 10명의 청구 가운데 종결 처분 등은 45만건이나 된다. 전체 종결 등 건수의 47%다. 이들의 악성·반복 청구만 다른 방식으로 제재해도 충분하다. 몇 명 때문에 정보공개법 자체를 개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외려 알권리를 위축시키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

-그간 정보공개법 개정의 방향은 어땠나.

“시민의 알권리를 넓히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어느 정권인지와는 무관하다. 결재문서의 원문을 공개하는 서비스는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했다. 행안부가 이번에 내놓은 방안보다는 민주사회의 기본 원리인 행정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정보공개청구권이 확대돼야 한다. 현행 정보공개법은 청구권자를 ‘국민’으로 규정한다. 외국인은 제한된다. 그러나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는 국적과 무관하게 청구할 수 있다. 또 한국의 공공기관은 ‘정보목록’을 작성해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공문서만 정보목록으로 분류한다. 이것만으로는 기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기관에서 사용하는 업무관리 및 행정정보 시스템도 정보목록에 포함돼야 한다. 또 시스템에 담긴 정보 항목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업무관리 시스템에는 업무처리의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그러면 정보의 내용과 범위를 보다 구체화해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정보를 숨기는 걸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공개 결정이 나와도 모두에게 공개되는 건 아니더라.

“그렇다. 과거에는 청구인이 선택하면 공개 받은 자료를 다른 시민도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거기에 청구인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도 함께 포함돼 문제가 됐다. 그러자 이 기능을 아예 폐지했다.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다듬어서 다시 살릴 필요가 있다.”

-법에 명시된 비공개 통지 사유는 적절한가.

“두루뭉술하다.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1998년 정보공개법 시행 이후 지난 26년 동안 비공개를 할 수 있는 8개 근거 조항의 틀은 한 번도 건드린 적이 없다. 가장 문제는 ‘의사결정 과정이나 내부 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의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단서를 통해 의사결정 등이 종료되면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했으나, 지금까지 공개 통지를 받은 적이 전혀 없다. 또 의사결정과 내부 검토 과정에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하는 것은 정부의 투명성과 시민의 참여 확대라는 민주정부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이 개입하는 시점을 더 앞당겨야 한다.”

-비공개나 부분 공개 통지를 받으면 불복 절차가 있다. 우선 이의신청과 행정심판 제기가 가능한데.

“이의신청을 하면 기관 내 정보공개심의회의에서 공개 여부를 심의한다. 심의회는 5명 이상 7명 이하 위원으로 구성하는데, 3분의 2는 외부 전문가로 위촉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작은 지방자치단체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전직 지방의원이나 공무원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시민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심의회가 제대로 운영되는지도 의문이다. 저는 중앙행정기관의 심의위원으로 활동하는데, 한 번도 대면 회의를 한 적이 없다. 서면으로 의견만 냈다. 어떤 결정이 났는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위원들의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한 교육 훈련도 필요하다. 행정심판도 정보공개 외에 여러 사안을 다루기 때문에 전문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행정심판위원회가 기관장을 상대로 한 자료를 공개하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정보공개와 관련한 역량과 독립성을 갖춘 전문 행정심판기구가 필요하다.”

행정심판이 기각되면 마지막 수단은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행안부가 발간한 <2023 정보공개 연차보고서>를 보면, 2022년 기준 행정소송에서 공개 판결을 내린 비율은 49%였다. 이 가운데 중앙행정기관의 소송 인용률은 50%, 공공기관은 62%로 집계됐다. 기관이 최초 청구 단계에서 공개할 수 있는 자료를 비공개나 부분 공개한 사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반면 중앙행정기관의 이의신청 인용률은 24%, 행정심판 인용률은 5%에 그쳤다.

-일반 시민이 소송까지 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 소송을 하면 인지대와 송달료 등 기본적으로 최소 수십만원이 든다. 패소하면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 정부를 상대로 한 정보공개청구 소송은 공익소송 성격이 많다. 이 때문에 공익소송의 경우에는 패소자부담 원칙의 예외로 둬야 한다는 요구는 계속 나오고 있다. 국회에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또 승소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검찰의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등의 집행 내역을 공개해 달라는 소송만 봐도,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공개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개인의 권리 구제 때문에 당장 필요한 정보인데, 수년 뒤에 공개되면서 실익이 사라지는 예도 있을 수 있다.”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이 지난해 7월 3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여해 검찰의 특수활동비 지출 증빙 자료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법에 따라 공개해야 하는데도 비공개하거나, 일부 정보를 가린 채 공개하는 때도 있다.

“그래서 고의적인 은닉, 허위 답변 등은 처벌하는 조항이 필요하다. 기관에서 정보가 없다고 거짓말을 해도 대처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현재는 없다. 법원에서 공개 판결이 나와도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뒤다. 정보공개센터는 본래 ‘월간 검찰 특활비’라고, 매달 검찰의 특활비 집행 내역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공개하려 했다. 검찰은 앞서 대법원판결에 따라서 특활비 자료를 공개키로 했고 일부를 제출받았다. 그런데 2023년 6월 자료부터 다시 비공개 통지하고 있다. 동일한 사안인데도 그렇다.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통해 시간을 벌려는 의도로 보인다. 제재 수단이 없으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보 부존재 통지는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이게 가장 문제다. 정보공개법 중 꼭 하나만 고쳐야 한다면, 정보 부존재 부분을 꼽겠다. 이의신청이 가능토록 개선해야 한다. 정보공개심의회의에서 자료의 존재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국방부를 상대로 불온서적 선정 목록을 정보공개청구했는데 정보 부존재 통지가 왔다. 이의신청을 통해 결국 자료를 받아냈다(2011년부터 정보공개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정보 부존재는 이의신청이 불가능해졌다). 정보 부존재 답변이 오면, 정보의 존재를 청구인이 입증해야 한다. 시민이 탐정이 돼야 하는 것이다. 진짜 없는 건지,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건지 의심도 든다. 검찰은 특활비 공개 소송에서 정보 부존재를 주장하기도 했는데,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의심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고 있다는 징후라고 본다. 확실한 건 정부가 공개하고 싶지 않은 자료를 숨기는 간편한 수단으로 정보 부존재를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 첫 화면에 ‘누구나 알 수 있다면 세상은 바뀐다’라는 문구가 있다.

“정보공개를 통해 모든 시민이 알권리를 누리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센터의 목표다. 알권리는 ‘권리를 위한 권리’라고 부른다. 어떤 권리가 침해됐을 때 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알권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됐고, 사회적 참사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와 관련한 정보다. 이런 관점에서 정보를 쥔 권력과 국가는 정보 불평등을 일으킨다. 기업도 위험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정보 불평등과 독점이 사라질수록 누구나 평등하게 안전한 일상을 지킬 수 있다.”

-정보공개청구의 의미와 중요성은.

“대체로 힘 있는 기관이 정보를 잘 공개하지 않는데, 정보공개청구는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단이다. 청구를 많이 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정보의 공개가 잘 안 되고 있다는 뜻이다. 또 국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청구는 법과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확인하거나 감시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다. 기록물 폐기가 절차에 따라 진행됐는지, 근로감독관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이다. 팩트체크를 할 때도 유용하다. 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관련 회의록 유무 공방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를 청구해 보려 한다. 회의록에 관심이 많다. 회의는 거버넌스의 최선(가장 앞)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나를 대신해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 공개돼야 한다. 전문성, 투명성, 책임성을 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위원 명단도 마찬가지다. 정보공개청구를 했다가 비공개를 통지받더라도 그 이유가 나온다. 무슨 맥락인지 추정할 수 있다. 또 비공개가 관성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계속 물어본다.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이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는 정보공개포털(www.open.go.kr) 첫 화면


-그간 정보공개 활동 가운데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기관은.

“대통령실과 검찰이다. 대통령실을 상대로 직원 명단 공개 소송이 진행 중이다. 다른 기관은 다 공개하는데 대통령실만 공개하지 않는다.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의 성명과 직위는 공개토록 정보공개법에서 규정한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미국 백악관 직원의 이름과 업무, 연봉까지 나온다. 또 법원에서 검찰의 특활비 집행 내역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검찰이 다시 비공개하고 있다. 힘 있는 기관의 이런 행태는 결국 다른 기관의 태도에도 영향을 끼칠까봐 우려된다.”

-다른 시민단체도 정보공개청구를 하는데, 센터의 차별점은.

“운동의 도구를 만드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본다. 어떻게 하면 정보공개청구를 권리 실현을 위한 좋은 도구로 만들 것인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청구를 할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한다.”

-현재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업무는 무엇인지.

“우선 산업재해 기업의 정보를 공개하는 일이다. 고용노동부가 과거 국회의원에게는 명단을 제출했는데, 이제 그마저도 안 한다. 그래서 노동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산재가 발생했는지 노동자와 구직자들은 알아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에는 행정처분을 받은 가게들이 공개된다. 국세청은 고액체납자 이름과 주소를 공개하기도 한다. 산재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인데 왜 기준이 다른지 의문이다. 또 국회의원에게는 정보공개청구를 못 하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기록물 관리도 안 된다. 의원의 의정활동이 기록으로 남고 공개돼야 한다. 회의공개법 제정도 필요하다. 회의록이 아니라 회의 그 자체다. 이해 당사자가 여럿이고, 주요한 이슈를 다루는 회의는 공개해야 한다. 국회가 방청과 생중계를 허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회의록을 정보공개청구하면 자주 등장하는 비공개 이유가, 발언이 공개되면 당사자가 위축돼서 발언을 제대로 못 하고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점이다. 그 정도 전문성과 책임성이 없으면 참여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회의 공개는 투명성, 책임성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본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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