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현실의 벽’… 시동 꺼진 ‘푸드트럭’ [중고매물이 된 청년의 꿈 ①]

이호준 기자 2024. 5.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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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 완화 시동 소리 컸지만... 매번 적자 허덕이다 결국 매물行
청년 일자리 창출·창업 지원 목표... 코로나 악재에 지역축제도 사라져

지난 2014년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청년 창업을 지원하겠다며 ‘푸드트럭’ 관련 규제 완화를 발표했다. 이후 창업 문턱이 낮아진 푸드트럭 사업에 많은 청년이 출사표를 던졌고, 거리는 물론 각종 축제와 행사에 빠지지 않고 푸드트럭이 등장하며 푸드트럭은 ‘청년 창업’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거리를 채웠던 푸드트럭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유행처럼 스쳐 지나간 청년 창업 정책. 또 스러져간 청년들. 푸드트럭 정책의 현주소를 통해 단발성에 그친 청년 창업 정책을 긴급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12일 화성시 소재 중고차 매매단지에 들어와 있는 중고 푸드트럭에서 차주가 집기를 정리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청년 CEO 3명 만난 ‘푸드트럭 8호’

12일 화성시 매송면의 한 중고트럭 매매단지. 이곳에는 한 때 청년의 꿈을 싣고 도로를 누볐던 푸드트럭 십여대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녹슨 모습으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8호’로 불리는 푸드트럭도 1년 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축제마다 많은 인파를 몰고 다녔던 ‘8호’가 청년의 꿈을 싣고 처음 달린 건 10년 전. ‘8호’가 만난 첫 번째 청년은 부천에서 요식업을 전공하다 창업의 길에 뛰어들고자 했던 김성규씨(가명·30)였다. 2014년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규제를 완화하면서 많은 청년이 푸드트럭 창업에 도전했는데, 김씨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김씨네 닭꼬치’라는 첫 이름이 생긴 ‘8호’는 하루가 멀다하고 경기도내 구석구석을 누볐다.

5년여를 김씨와 함께 달린 ‘8호’. 넘쳐나는 푸드트럭으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했지만, 김씨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많은 단골을 확보하며 부천 지역의 명물로 꼽히는 등 신나는 질주를 계속했다.

이러한 김씨와 8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악재에 무너졌다. 2020년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길거리에서 푸드트럭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금지되면서 모든 행사와 축제도 중단됐고, 그렇게 ‘김씨네 닭꼬치’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계속되는 적자에 먼지만 쌓여가던 ‘김씨네 닭꼬치’는 결국 2020년 12월 영업을 종료, ‘8호’는 처음으로 중고차 매매단지에 매물로 나오게 됐다.

화성시 소재 중고차 매매단지에 들어와 있는 중고 푸드트럭. 조주현기자

‘8호’의 시동이 다시 걸린 건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22년 1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면서 다시금 창업에 뛰어든 박소영씨(가명·29)를 만나게 되면서다.

출고 당시 2천만원가량의 몸값을 자랑했던 8호는 800만원까지 저렴해졌고, 넉넉하지 않은 창업자금 탓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고매물을 찾던 박씨에게 8호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박씨를 만난 8호는 새롭게 단장하고 ‘츄츄커피’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두 번째 청년의 꿈을 싣고 운행을 시작했다.

츄츄커피는 일반도로 한 켠, 용인시가 허가한 푸드트럭 존에서 그 문을 열게 됐다. 유동 인구는 적었지만 임대료가 한 달에 약 10만원 수준이라 큰 부담 없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꽃처럼 타올랐던 박씨의 열정과는 달리 ‘츄츄커피’의 온기는 빠르게 식어갔다.

외진 장소 탓에 손님의 발걸음이 닿기 어려웠고, 기존에 영업 중이던 인근 카페와 업종이 겹치며 민원과 불평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주변 상인들의 눈총을 이기지 못한 ‘츄츄커피’는 불과 반년 만에 운행을 중단했다.

그렇게 8호는 다시 중고차 매매단지로 돌아왔다.

8호가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던 사이, 푸드트럭 개조 비용은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2015년 1천만원 안팎이었던 개조 비용은 지난해 평균 3천만원까지 오르는 등 푸드트럭 창업비용이 높아지자 ‘8호’를 찾는 사람도 줄어갔다.

8호의 곳곳이 녹슬고 흙먼지만 쌓여 갈 때쯤, 타코야키 창업을 준비하던 권민혁씨(가명·36)가 8호와 만나게 됐다. ‘타코야끼 타코타’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 8호. 그러나 호기롭게 나선 ‘타코야끼 타코타’는 실제 운행을 몇 차례 해보지도 못하고 멈춰서야 했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트럭 개조에 사업자금을 거의 다 써버린 권씨는 일 100만원에 달하는 행사 입점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네 닭꼬치’에서 ‘츄츄커피’로, ‘타코야끼 타코타’가 됐던 이 푸드트럭은 다시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8호’라는 이름으로 새 청년을 기다리고 있다.

2017년 수원 남문로데오시장에 들어선 푸드트럭. 경기일보DB

이처럼 수많은 청년이 푸드트럭 창업에 뛰어들면서 푸드트럭 사업이 큰 인기를 끌었지만, 영업 허가 구역 확보 실패 등 현실의 벽에 부딪힌 정부 정책은 결국 ‘반쪽’이라는 평가와 함께 ‘일회성’ 이벤트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청년 대박의 꿈. 우후죽순 늘어난 ‘푸드트럭’

지난 2014년 3월 정부는 기업 현장애로 및 유망 서비스산업 등 41개 규제에 대해 조치를 약속했다. 그중 ‘푸드트럭’ 사업 관련 규제가 큰 이슈를 모았는데, 일반 식당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자금으로 창업을 할 수 있는 푸드트럭에 청년들의 관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푸드트럭을 통해 청년 창업을 지원하겠다며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소형 화물차의 구조변경을 허용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푸드트럭을 정식 식품접객업으로 승인하는 등의 규제 완화 노력을 펼쳤다. 정부는 이를 통해 6천명 이상의 일자리 창출과 400억원 이상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기대했다. 정부 기조에 발맞춰 지자체들 역시 창업 지원, 영업장소 창출 등 푸드트럭 관련 정책을 쏟아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청년들 사이에서는 푸드트럭이 ‘소규모 창업’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2014년 전국에서 6대에 불과했던 푸드트럭은 2018년 1천여대까지 급증했다. 이중 경기도에서 운행하는 푸드트럭은 796대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푸드트럭이 청년의 꿈을 안고 달렸다.

영업구역 한계…코로나 직격타까지

이처럼 정부의 규제 완화에 따라 푸드트럭 창업이 늘어나며 일자리 창출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푸드트럭 사업은 ‘영업구역 제한’의 벽에 가로막히게 됐다.

푸드트럭 영업은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시행령을 기반으로, 푸드트럭 사업자가 지자체로부터 영업이 가능한 공유지 한 곳을 허가받아 ‘공유지 사용료’를 내고 장사할 수 있다.

이에 푸드트럭은 지자체 지정 장소, 축제 등에서 영업이 가능했지만, 우후죽순 늘어난 탓에 영업 허가 구역에선 늘어난 푸드트럭 수를 감당하지 못했고, 많은 청년은 문을 열지도 못한 채 빈 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일부 푸드트럭 영업 허가 구역은 유동 인구가 적고 외진 곳이거나 특정 기간에만 사람이 몰려 ‘한 철 장사’에 그치는 곳이 대다수였고, 허가 구역을 선점하지 못한 트럭들은 불법 영업을 하다 적발돼 벌금을 물거나 문을 닫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행사나 축제를 전전하던 푸드트럭은 2020년 코로나19에 직격타를 맞았다. 전국 모든 축제는 중단됐고, 돌아다니는 사람조차 없어 푸드트럭이 가진 ‘이동 접객’의 강점은 오히려 약점이 돼 푸드트럭 사업자를 궁지로 내몰았다. 도내 푸드트럭 창업도 2017년 266대에서 2020년 33대로 크게 줄었다.

일러스트. 유동수화백

기존 상권과 마찰, 엔데믹 이후에도 설 곳 없는 푸드트럭

다시 거리에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푸드트럭 사업자들이지만, 코로나 엔데믹 이후 너무나도 달라진 현실에 거리에 나서지 못했다. 창업교육 등 경기도가 청년 예비 푸드트럭 사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책은 사라졌고, 많은 푸드트럭 허가구역은 운영이 중단됐다. 특히 축제 등 민간 행사장 푸드트럭 입점비는 1일 100만원까지 뛰어올랐다.

푸드트럭 사업자들은 경기도와 지자체에 푸드트럭 허가구역 재운영 등 장기적인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기존 79곳의 푸드트럭 허가구역 중 현재 운영이 가능한 곳은 단 27곳(34.1%)에 불과하다. 올해 1월 기준 도내 운영 중인 푸드트럭은 800여대인 것으로 집계되는데, 이 800여대가 27곳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렇듯 거리로 나오지 못하는 푸드트럭이 늘어나면서 지난 2015년부터 10년간 창업한 도내 푸드트럭 10대 중 4대는 폐업했다. 경기도데이터드림에 따르면 2015년 12건에 불과했던 도내 푸드트럭 폐업 수는 불과 1년 만에 167건으로 대폭 늘었다. 이후 매년 평균 50건가량 폐업한 도내 푸드트럭은 10년간 전체 1천386대 중 536대(38.7%)가 멈춰 선 것으로 집계됐다.

푸드트럭 창업 교육 강사로 활동했던 하혁 푸드트럭팩토리 대표는 “정부와 지자체가 푸드트럭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수많은 청년이 창업에 뛰어들었지만, 정작 영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이들은 갈 곳을 잃게 됐다”며 “정부 정책이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한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지난 2014년 푸드트럭 창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 완화에 따라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 지원 사업, 창업 교육 등을 진행했다”면서도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되는 등 관련 예산이 줄었고, 도에서 시행한 푸드트럭 사업에 참여도 저조한 탓에 현재 푸드트럭 사업 관련 지원이 크게 줄었지만, 청년의 지속적 수요가 있다면 관련 사업 편성을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이지민 기자 easy@kyeonggi.com
금유진 기자 newjeans@kyeonggi.com
이진 기자 twogeni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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