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쉐린가이드 선정 ‘올해의 소믈리에’ 김진호 빈호 오너 소믈리에

유진우 기자 2024. 5.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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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가장 완벽한 상태로 조율하는 사람.’ 소믈리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내로라하는 대회에서 우승하거나, 시상대에 오르는 꿈을 꾼다. 그 의지만큼 실력과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와인을 업(業)으로 삼은 베테랑 소믈리에라면 다들 실력과 지식은 어느 정도 갖췄다. 이들 가운데 일인자 자리에 오르려면 실력과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최고 자리에 올랐던 소믈리에들은 매번 다른 손님을 맞이하는 순간마다 뻔뻔하다 싶을 정도의 여유와 친근함이 서비스 성패를 가른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함까지 갖춰야 식사 자리 분위기를 좌우하는 관리자로 올라선다.

지난 3월 미쉐린가이드와 세계적인 샴페인 브랜드 멈(Mumm)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레스토랑 빈호를 운영하는 김진호 소믈리에를 올해의 소믈리에로 뽑았다.

그는 셰프를 꿈꾸며 호주에서 요리 유학까지 마쳤지만, 뒤늦게 소믈리에로 진로를 틀었다. 다른 소믈리에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덴마크 미쉐린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 제라니움에서 유일한 동양인 소믈리에로 일했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가 오너 소믈리에로 일하는 빈호 역시 올해 미쉐린가이드 서울편에서 1스타를 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래픽=정서희

ㅡ미쉐린가이드가 선정한 2024 소믈리에가 된 소감은.

“셰프로 경력을 시작하다 보니, 다른 소믈리에들과 시작점이 달라 나름 내 방식대로 길을 찾았다. 소믈리에로 존경하던 다른 셰프들과 같은 시상대에 설 수 있어 의미가 남달랐다.

개인적으로 이 상은 와인에 대한 전문성뿐 아니라, 빈호 오너 소믈리에 김진호로 스토리텔링을 하려는 노력을 높게 평가한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ㅡ현재 빈호 오너 소믈리에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와인도 음식이다. 이전에는 좋은 와인을 잘 골라 리스트에 올리면 그 와인을 마시기 위해 오는 손님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와인으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똑같은 와인을 내놔도 손님이 다른 레스토랑에서 받지 못했던 감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와인은 어렵다고 말한다. 언어를 잘 구사하려면 해당 국가 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와인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려면 우리 문화와 정서에 맞게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손님에게 어려운 테이스팅 노트(와인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기록)나 품종에 대한 설명보다, 이해하기 쉬운 용어나 친근한 사례로 설명하려 노력한다.

또 왜 이 음식에 이 와인을 맞춰 내놨는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음식을 즐기는 길목마다 와인이 어떤 맛과 풍미를 주는지도 직접 짚어준다.

단순히 맛있는 와인을 골라 선보이기보다 ‘이 와인으로 어떻게 손님에게 최고의 경험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다.”

ㅡ좋은 곳에서 좋은 술과 함께하는 식사는 늘 즐겁다. 분위기도 있겠지만, 와인이 음식 맛과 경험을 어떻게 풍부하게 하는가?

“좋은 와인은 그 자체로 음식 맛을 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음식과 내놓는지, 어떤 방식으로 선보이는지에 따라 손님이 느끼는 경험은 더 다양해질 수 있다. 음식과 기가 막히게 맞는 와인을 만나면 순간 다른 공간으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이전에 와인을 취급하는 레스토랑은 격식 있는 무게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빈호는 이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을 많이 녹여냈다.

그중 하나가 음악이다. 음악은 시대를 관통하는 소통 채널이다. 빈호를 찾는 손님들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록 음악이 흐르는 다이닝 공간으로 들어오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파인 다이닝 가운데 록(rock)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할 수 있는 곳은 빈호가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레스토랑 인테리어 단계부터 록 음악이란 요소를 고려해서 디자인하고 동선 역시 록 음악적 요소를 고려해서 짰다.

식재료 부분에서는 한국 로컬 식재료에 집중했다. 보통 로컬 식재료는 전통주와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 이 틀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음식에 와인과 샴페인을 맞춰 서빙해 늘 보던 식재료를 생경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ㅡ소믈리에로서 본인 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예술 작품도 작가 세계관과 가치관을 이해할 때 그 가치가 배가 된다.

음식도 와인도 좋은 경험을 위해선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 재료만 나열해선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모르던 경험으로 이끌어 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왜 이 음식을 내놨는지 설명해 주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셰프와 소믈리에가 식재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조리법으로 접근했는지 손님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생긴다고 믿는다.

메뉴를 짤 때는 술과 음식을 엮은 서사를 넣으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와인과 음식에 조예가 깊은 손님이 많다. 이들은 본인 관점과 내 관점을 비교하면서 음식을 즐기길 좋아한다.”

ㅡ지난 몇 년 사이 한국 와인 문화가 급격히 발전했다. 어떤 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발전했다고 생각하나.

“10년 전 호주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때에 비해 지금 한국 다이닝 문화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아졌다.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레스토랑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보기보다 비싼 음식 먹으러 가는 곳 혹은 돈 쓰러 가는 곳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레스토랑을 선택하는 기준 역시 유명한 곳이나 비싼 곳이 대부분이었다.

요즘 30~40대 젊은 손님을 보면 새로운 식(食)문화를 느끼기 위해 방문하는 사례가 많다. 유튜브 같은 채널로 간접적인 해외 식문화 경험을 한 손님이 한국에서 외국 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오는 경우도 늘었다.

자연스럽게 주류를 선택하는 안목도 높아졌다. 이제 단순히 ‘맛있어요’ 혹은 ‘최고 품질 식재료입니다’ 같은 설명으로는 이런 수준 높은 손님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기 어렵다.

소믈리에라도 원재료와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방면에 걸쳐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ㅡ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주류는.

“와인을 좋아해 셰프에서 소믈리에로 커리어를 바꿨다. 중간에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와인에 애정이 많아 여태 소믈리에로 일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와인은 시라(syrah) 품종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처음 홀에서 일할 때 손님이 남기고 간 와인을 살짝 맛봤는데 강렬하게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처음으로 레스토랑에서 직접 돈을 주고 이 품종 와인을 사 마셨다. 지금도 이 시라 품종 와인을 가장 좋아한다. 그 강렬했던 맛이 나를 셰프 대신 소믈리에로 이끌었다.”

ㅡ빈호에서 내놓는 메뉴와 잘 어울리는 와인은.

“RSRV는 멈이 1838년부터 선보인 유서 깊은 제품이다. 동시에 독특한 스토리가 녹아있어 빈호가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았다.

멈 샴페인 하우스에서는 중요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선물하기 위한 최상위급 샴페인에 ‘리저브드(예약됨·ReSeRVed)’라고 표기했다. 지금도 RSRV 샴페인 표면 한쪽 귀퉁이는 샴페인 받을 사람을 표시하기 위해 살짝 접힌 부분을 유지하고 있다.

메종 멈 RSRV 뀌베 4.5는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섞어 최소 4년 이상 숙성해 만든다. 이 샴페인은 가자미 요리나 양고기와 잘 어울린다.

메종 멈 RSRV 블랑 드 블랑은 기존 샴페인보다 낮은 압력에서 최소 3년 이상 묵혀 기포가 섬세하다. 빈호에서 준비한 줄 전갱이 요리와 잘 맞는다. 신선함과 청량감이 길게 남기 때문에 굴이나 바닷가재, 가리비 같은 해산물과도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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