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사라지는 중간, 중산층을 위한 도시

김지현 부산대 통일한국연구원 균형발전연구센터장·특임교수 2024. 5. 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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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부산대 통일한국연구원 균형발전연구센터장·특임교수

‘못해도 중간만 하자’는 말처럼 푸근하고 안전한 표현도 많지 않다. 둘 사이에 끼인 중간은 외롭지 않고 함께라는 동료의식도 있으며 뛰어나지는 않지만 영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나 사회계층에 있어서도 중도, 중간층이 두터워야 사회적 통합과 갈등을 이겨내는 힘이 커지고 튼튼한 사회구성을 이루는 역할을 한다.

중간이 사라지고 있다. 1980년대 70%였던 중산층 인식이 42%로 줄어들었고 그 만큼 고속득층 경제적 열망이 커져가고 있다. 통계청은 1960년대 우리나라의 19세이던 중위연령이 2024년 현재 46.1세로 늘어났는데 2072년에는 63.4세로 전망한다. 전세계 최저수준의 합계출산율은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층이 사라지고 있고 그 여파로 많은 지역이 소멸위험에 직면해 있다.

기초학력 편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면서 학력은 고학력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1990년대 20%에 불과하던 대학진학률은 2006년 80%로 정점을 찍고 2010년대 이후 70%를 상회하고 있다. OECD 평균은 40% 넘는 수준이니 우리나라의 학구열은 엄청나다고 하겠다. 덕분에 급발진한 디지털 전환과 지식경제로의 전환에 필요한 전문 인력풀을 제공해 경제성장을 견인했지만 대학 졸업장이 필요없는 현장에서는 인력난이거나 외국인 노동자로 대치되고 있다. OECD는 우리나라의 이러한 현상을 스펙 과잉이라고 표현했다.

국토 공간으로 보더라도 수도권 쏠림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지방의 대도시와의 간격은 점점 벌어져 급기야 중간층 도시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은 인구와 기업, 그것도 100대기업 91%, 1000대기업 86.9%가 있으며 첨단산업 등의 미래가치가 높고 양질의 일자리가 대부분 집중해 있다. 상위 1% 근로소득자 74.5%가 살고 있다. 국토부에서 발표한 생활 인프라로의 접근거리 자료에 따르면 공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공연문화시설 도서관 사회복지관 병·의원 고속화철도 전기차충전소를 비롯한 교육 여가 교통 의료 등 24개 조사대상 가운데 경로당과 보건기관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접근거리가 가장 짧았다. 이쯤 되면 중간이라도 가려면 서울로 이사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저성장시대에 인구감소의 위기 가운데 중산층이 사라지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구문제가 당장 어떤 정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중간층을 늘리자고 대학 입학을 막을 것인가. 이미 입학정원은 진학률 100%를 채우고도 남을 판인데 말이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공원과 산책길, 도서관과 체육시설, 육아와 돌봄, 의료복지, 교통시설 등의 생활 인프라 정책에 공을 들여야 한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말이다. 걷기좋은 도시, 의료와 휴양의 도시, 여가와 관광문화의 도시 등 모두 부산이 지향해 온 도시비전에 ‘책읽는 도시’, ‘해양 스포츠 의무교육 도시’ 등의 구체적인 전략이 더해지면 좋을 것이다.

또 한가지, 중간 혹은 중산층의 의미를 새롭게 챙겨보는 것도 필요하다. 중산층에 대한 다른 나라의 기준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조르주 퐁피두 전 프랑스 대통령이 제시한 프랑스 중산층은 외국어 하나 정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남들과 다른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 공립학교가 제시한 미국 중산층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그 외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보는 비평지가 놓여 있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 우리는 빚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급 중형차를 소유하고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다닐 수 있는 정도라고 하니 쉽게 중산층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수준일 뿐만 아니라 중산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다만, 부산은 어떤 도시보다 정의에 충실하게 대응해 왔던 도시이며, 여가와 취미를 즐기기 좋은 여건이지 않는가. 사라지는 중간, 중산층을 위한 도시 부산을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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