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잡은 아마, 고교생 꺾은 중1…반상 드라마
- 유치원생~어르신 600명 열전
- 최철한·권해호 명사대국 눈길
- 김영환 9단 등 지도다면기도
“하나 ~둘~ 셋~ 지금부터 제26회 부산광역시장배 전국바둑대회 대국을 시작하겠습니다!”
전국 아마추어 바둑인들의 열기가 부산을 뜨겁게 달궜다. 11일 사직실내체육관에서는 제26회 부산시장배 전국바둑대회가 열렸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유치원생부터 휠체어를 탄 장애인,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까지 600여 명의 바둑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펼쳤다.
유치부 우승을 거머쥔 이태현(6) 군은 바둑 입문 8개월 만에 승리를 맛봤다. 이 군은 “이른 시간에 먼 길을 와야 했지만 어렵진 않았다”며 “바둑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승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즐겁게 바둑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어린이최강부 우승은 김유승(해운대초4) 군에게 돌아갔다. 김 군은 우승을 확정짓고도 바둑판을 떠나지 않고 함께 대결했던 친구들과 실력을 겨루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김 군은 지난해 이 대회 3학년부에 처음 출전해 우승했으며, 두 번째 출전에서 최강자 자리를 거머쥐었다. 초등학생 부문의 경우 오전에 대부분의 경기가 끝났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오후 늦은 시간까지 신중한 대결을 펼쳐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부산지역 중고생이 참여하는 학생부에서는 참가자 중 가장 어린 학생이 우승을 거머쥐는 이변도 벌어졌다. 우승자 안세혁(13) 군은 올해 부흥중 1학년으로 학생부 참가자 중 가장 어리다. 안 군은 “친형도 바둑을 좋아해 함께 대국을 많이 한다. 형과 함께한 경험 덕에 부담 갖지 않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며 “이창호 9단이 롤모델인데, 학업과 바둑 모두 놓치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국장애인부 우승은 서울에서 출전한 김동섭(65) 씨에게 돌아갔다. 그는 “요즘 바둑대회가 줄어드는 추세다. 이 경기 다음 날 경남 김해에도 바둑대회가 열려 연달아 참여하려고 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기관·단체전은 2030 바둑모임인 ‘바꿈기우회’(서울·경기)가 우승했다. 바꿈기우회는 “부산 대회는 처음인데 우승을 거둬 기쁘다”며 “멤버 5명 중 3명이 부산 출신이라 여행오는 기분으로 즐겁게 왔다. 상금으로 맛있는 음식 먹을 계획”이라고 웃었다. 총회원만 150명에 달하는 바꿈기우회는 대회마다 기력을 감안한 멤버 구성으로 다양한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아마추어 바둑인들을 설레게 한 ‘지도 다면기’에는 사전 신청을 통해 선발한 19명이 김영환 9단, 최철한 9단, 김준영 6단과 대결을 펼쳤다. 김 9단이 7명, 최 9단이 9명, 김 6단이 3명을 상대했다. 참가자는 초등학생부터 60대까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다양했다.
빨간 천이 덮힌 책상이 디귿자(ㄷ)로 놓여졌고, 줄지어 자리에 앉은 참가자들이 실력에 맞게 흑돌 몇 점씩을 미리 바둑판에 놓았다. 프로 기사들은 백돌을 잡고 거침 없이 옆으로 이동해가며 대국을 넘나들었다. 1시간 가량 백돌과 흑돌이 바둑판에 쌓이자 “이렇게 해야 했는데” 하는 탄식들이 새어나왔고, 일부 참가자들은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섰다. 그 와중에 프로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참가자도 나왔다. 본 대회를 1회부터 꾸준히 참가했다는 전종태(65) 씨는 “너무 소중한 기회였다. 큰 배움을 얻었다”며 “2점을 미리 놓고 이겼는데, 다면기이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지 1대1 대결이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를 상대로 이긴 것은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명사대국도 눈길을 끌었다. 최철한 9단과 권해호 9단은 체육관 내 별도 공간에서 수준 높은 대결을 펼쳤으며 김한상 이붕장학회장, 김영환 9단, 김종준 8단, 정봉수 대한바둑협회장, 이병윤 경남 바둑협회장 등은 대회장 한켠에서 공개 대국을 진행했다. 공개 대국에서는 즉석 지도 대국도 이어졌다. 초2 학생과 지도대국을 펼친 김종준 8단은 “바둑판은 전장과 다름 없어 고도의 집중력이 필수”라며 “바둑책이나 관련 영상을 보는 것도 실력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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