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곳곳에 ‘작은 베트남’ 생겼다는데 [사이공모닝]

이미지 기자 2024. 5.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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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 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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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안동에 놀러 갔다가 사탕수수 주스(Nước mía)라는 글씨를 보고 일행들과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베트남어로 쓰인 걸 보니, 사탕수수 줄기와 함께 베트남 작은 귤이나 레몬을 넣고 짜낸 베트남식 사탕수수 주스를 파는 게 분명했습니다.

베트남식 사탕수수 주스. 사탕수수만 짜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레몬이나 오렌지 같은 과일을 짜내 상큼한 맛을 더한다. /안동=이미지 기자

주문을 해놓고 가게를 둘러봤더니 간판은 ‘아시아 마트’라 적혀 있지만, 베트남 물건을 주로 파는 것 같았습니다. 둘러보다가 레몬그라스와 베트남 고추, 두리안과 잭프루트까지 사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둘러보니 근처엔 베트남 식당과 마트는 물론, 노래방까지 있더라고요. 식사를 마치고 나와 삼삼오오 몰려 있는 베트남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경북 안동시의 한 아시아마트. 베트남어로 사탕수수 주스를 적어놓은 가게 안에선 두리안도 직접 손질해 팔고 있었다. /이미지 기자

농촌 지역뿐 아니라 서울 등 대도시에서도 베트남어 들을 일이 많아졌습니다. 국제결혼 뿐 아니라 취직, 유학 등을 목적으로 한국에 온 베트남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죠. 전국 곳곳에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베트남 식당이 생기는 것은 물론, 이들을 상대로 하는 마트나 유흥시설도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 안의 베트남이지요.

우리나라에 상주하는 외국인만 143만명(2023년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베트남의 비중도 높아졌습니다. 한국에서도 베트남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베트남 사람들이 많아진 만큼 양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싶지만 여기서 파생되는 사회 문제들도 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 양쪽 모두에서 말이죠.

◇전국 곳곳에 ‘작은 베트남’

만선 호프 등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자리 있어요” “들어오세요” 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모두 베트남 사람입니다. 홀은 물론, 주방에도 베트남 사람들이 근무 중이더라고요. 베트남 친구를 데려갔더니 “여기가 한국 맞느냐”며 놀라며 곧 종업원과 베트남어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서울 동대문의 한 골목. 베트남 음식점과 노래방이 있고, 인근에 베트남 식자재를 파는 마트도 있다. /이미지 기자

동대문에도 베트남 식당과 마트, 노래방이 있는 ‘작은 베트남’이 있습니다. 명동의 한 고깃집에 베트남 술을 가져갔더니 종업원이 “베트남 술 좋아하세요?”라고 말을 걸더라고요. 그 종업원은 베트남 북부 하롱베이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몇 년 새 우리 주변에서 베트남 사람들을 마주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이후 중국 국적의 외국인들은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 사이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 시장을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과 비교하면 베트남이 상대적으로 코로나 발발이 늦었고, 무비자 빗장을 빨리 푼 것도 영향을 미쳤죠.

지난달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이민자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 143만명으로, 이 중 14.1%가 베트남 국적입니다. 특히 유학생 중에서는 베트남(34.6%)이 중국(29.9%)보다 비중이 높고, 결혼 이민에서는 10명 중 3명이 베트남 국적입니다. 결혼이나 유학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베트남 사람이 많아지는 거죠. 유학으로 온 학생들은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한국 기업에 취직하기도 합니다.

◇한국 취업 브로커 기승

몇 년 새 빠르게 오른 최저임금으로, 한국은 ‘아르바이트만 해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나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태원, 명동 같은 곳에서는 홀 서빙만 해도 최저임금 이상의 금액을 받을 수 있지요. 실제로 이태원의 한 베트남 식당에서는 베트남 종업원의 시급으로 1만2000~1만3000원가량을 지급한다고 합니다. 한국인이냐, 베트남이냐 국적을 따지지도 않고, 최저임금보다 많은 금액을 지급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한국에 들어오려는 베트남 사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보내주겠다”며 불법 이민을 주선하던 브로커가 경찰에게 붙잡히기도 했죠.

베트남에서 취업 사기를 친 여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VN익스프레스

이달 11일 베트남 남부 하우장성 경찰은 베트남 사람 18명을 한국에 밀입국시키려던 30대 초반 부부를 체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결혼한 사람이 가족이 친척을 초청한 경우 한국에서 최대 5개월 취업할 수 있는 비자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였죠. 한국에 들어가게 해주겠다며 한 사람당 7000만~1억동(370만~540만원)을 요구하며 2000만~4000만동(107만~215만원)을 선입금 받았는데, 작년 7~10월 사이에만 18명을 모았다고 합니다. 올해 1~2월 이들은 네 그룹으로 나눠 한국에 보냈지만 모두 입국을 거부당했습니다. 비자가 없었기 때문이죠.

올해 1월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베트남 여성이 취업 사기로 우리 돈 5억6500만원가량을 뜯어낸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남부 까마우성 출신으로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얻은 프엉(43)이란 여성이 지난 2022년부터 111명에게 “한국에 일자리를 주겠다”며 105억동(5억6500만원)이나 받아냈단 거죠. 프엉에게 속아 14억동(7500만원)이나 보낸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노이나 호찌민 같은 베트남 1 지역 최저 월급(468만동)의 300배에 가까운 금액이지요.

‘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유혹해 돈을 벌어먹는 게 최근 사기꾼들의 수법인 것 같습니다. 호찌민 의류 공장에서 근무하던 한 여성은 “한국에서는 한 달에 4000만동(215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 “한국에서 9~10개월 근무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돈을 보냈다고 합니다. 500만동(27만원)이라던 비자 처리 비용을 보내자 다음 날 “보험료 1000만동을 더 보내라”고 했다는 거죠. 이를 거절하고 환급을 요구하자 브로커는 잠적해버렸습니다. 당한 거죠.

한국에서 불법 체류 중인 베트남 노동자. 2016년에 찍힌 사진이다. /VN익스프레스

북부 빈푹성에 사는 한 남성은 “한국어를 공부하지 않고도 한국에 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브로커의 말에 속아 7000만동(377만원)을 잃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가서 번 돈으로 가족과 고향 식구들을 부양하려던 마음이었겠지만 한국어 시험 등 기본 자격을 채우긴 싫었던 게으름이 결국 사기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취업 사기와 관련한 베트남 언론의 기사엔 이런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이와 같은 사기는 현대 베트남 사회에 만연해있습니다.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저해해 온 많은 문제 중 하나일 뿐입니다.”

최근에는 지방대 부속 어학당 같은 곳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국내 학생으로 정원을 채우지 못한 지방 사립대 어학당들이 해외 유학생들로 정원을 채우고, 베트남 사람들은 어학당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뒤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돈을 버는 거죠.

실제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를 보면 지난 3월 기준 국내에 한국어연수(D-4-1) 비자로 들어온 학생의 국적은 베트남이 4만7484명(65.5%)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중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순이었다고 합니다.

◇차별과 혐오는 혐한(嫌韓) 뿌리 되기도

취업과 관련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건 베트남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이 이들의 사정을 악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도 하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임금 체불액이 2022년 기준, 신고된 것만 1223억원, 2023년엔 1300억원가량 될 거란 추정(국가인권위원회)도 나옵니다. 신고된 것만 집계한 것이라 실제 체불액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불법 체류자 등의 경우 임금 체불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세계노동절을 사흘 앞둔 지난 28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메이데이 집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 금지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노사발전재단이 지난달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임금 체불과 중대재해 피해를 신속하게 지원하기 위한 ‘핫라인’을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고용허가제로 외국인력이 사상 최대 규모인 16만5000명이나 입국할 예정인 가운데 이들에 대한 피해에 빠르게 대응하겠단 것이지요.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임금 체불 등의 사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공유합니다. 베트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한국에 취직하러 갔다가 돈도 못 받고 돌아온다”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을 적게 주고, 거주 환경도 열악했다”는 한국 취업 후기가 올라옵니다. 이런 부정적 경험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면서 베트남 일부에 ‘혐한’(嫌韓) 분위기가 퍼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지요.

베트남에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한 임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존심이 센 베트남 사람들은 회사 상사라 할지라도 자신을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것을 굉장히 기분 나빠한다”며 “한국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유지하고, 인구 1억명의 베트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존중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은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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