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의 피’가 또 다른 하마스 부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불리한 이유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4. 5. 1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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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중동천일야화]
5월 7일 이스라엘 남부의 이스라엘-가자지구 국경 인근에서 이스라엘 탱크가 기동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세계가 라파를 보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국경도시인 이곳에서 이스라엘이 곧 대규모 전투를 벌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밀려 라파로 이동한 하마스의 본진을 궤멸하려는 작전이다. 군사 전술 측면에서만 보면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봉쇄하고 고립된 적을 섬멸하는 이 작전은 합리적이다. 애매하게 휴전에 합의하면 하마스는 더 폭력적인 집단으로 살아남을 듯하다. 차제에 하마스의 군수물자 밀반입 통로였던 라파 근처 비밀 터널들을 초토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 문제가 있다. 가자 북부에서부터 피란 온 140만 주민이 위험에 몰리게 된다. 이들은 갈 곳이 없다. 피란 지역을 설정했어도 환경이 열악하여 옮길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교전의 직접 피해도 문제지만 봉쇄로 인한 물자 차단의 여파가 더 큰 일이다. 지원이 끊기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피해가 발생한다.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이스라엘에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미국조차 작전을 만류하며 공격 무기 지원을 중단했다. 미증유의 일이다.

이 시점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자칫 이기고도 질 수 있다. 네 가지 이유다.

먼저 하마스 궤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도부 제거로 하마스가 소멸할까? 비관적이다. 하마스는 증오를 먹고 사는 세력이다.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피해가 늘어날수록 하마스의 선전전은 거세질 것이다. 제2, 제3의 하마스 지도자들이 분노를 선동하며 등장할 것이다. 이번 전쟁을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라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라 부른다. 하마스는 국가가 아니다. 극단주의 무장 집단이다. 그런데 어느새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카타르와 이집트의 고위층, 심지어 미국의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하마스 협상단을 상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사라지고 하마스만 보인다. 고약한 상황이다. 라파에서 하마스를 궤멸한다고 해도 여기서 흘린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피는 또 다른 하마스 지도자를 불러낼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김하경

둘째, 국제 여론전에서 밀리고 있다. 작년 10월 하마스의 도발 직후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편이었다. 용납할 수 없는 하마스의 만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일주일 후 여론은 바뀌었다. 비대칭 응징 보복으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면서부터다. 지난 8개월 사이에 이스라엘 사망자의 서른배 가까운 3만5000여 팔레스타인 주민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어느새 가해자가 되었다. 유엔 등 다자 외교 무대에서도 고립무원이다. 최근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실질적 정회원국 수준으로 받아들이도록 결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스라엘이 가자 전장에서 이기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외교 전쟁에서는 지고 있다.

셋째, 아랍 우방을 다시 잃게 된다. 건국 당시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들이 모두 적이었다. 네 차례 중동 전쟁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의 외교 목표는 하나로 수렴했다. 적대적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이었다.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집트와 수교한 후, 1994년 요르단과, 2020년 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와 외교를 통한 평화를 구축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이 틀이 흔들리고 있다. 거리로 나선 아랍 대중의 반이스라엘 구호가 심상찮다. 공들여 쌓은 아랍 외교가 무너지면 이스라엘 안보는 그만큼 위험해진다. 하마스 궤멸을 통해 안보를 확고히 하겠다는 목표는 정반대 방향으로 떠내려가는 중이다. 역설적이다.

넷째, 미국과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동맹의 균열은 치명적이다. 이미 바이든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노출했다. 학교기금의 친이스라엘 기업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캠퍼스 점거 시위는 미국 정치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미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기세다. 1970년대 이후 이스라엘은 미국에서 공공 외교에 전력을 기울여왔다. 핵심은 유대-기독교 공동 정체성과 중동 지역의 유일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공공 외교는 이번 사태로 급격히 기반을 잃고 있다. 인종차별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놓는 네타냐후 연립정부 극우 각료들의 행태는 미국의 가치와 배치된다. 아무리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라 해도 3만5000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죽음을 미국이 간과하긴 어렵다. 급기야 미국 민주당 지도부 일각에서 이스라엘의 정권 교체를 언급했다. 초유의 일이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이 완전히 절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추세다. 오늘 경험하는 이 사태를 보며 미래 세대들은 이스라엘 문제를 다시 생각할 것이다. 불가분의 양국 관계에 이미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답은 없을까? 이스라엘은 휴전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라파 작전을 멈추고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 그래야 폭력을 산소처럼 여기는 하마스류의 극단주의를 장기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이스라엘의 현 연정은 붕괴되고 네타냐후 총리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권이 살기 위해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을 해서야 되겠는가.

억울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하마스의 도발로 시작되었는데 왜 이스라엘이 가해자가 되고, 우방국들과 척을 지며 국제 무대에서의 고립은 물론, 급기야 미국과도 삐걱거리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 유발 하라리의 말에 답이 있다. 하마스가 나쁘다고 해서 하마스와 같은 행태로 보복하다가 이스라엘 안보가 더욱 위험해졌다는 것이다. 엄혹한 국제정치 환경에서도 이스라엘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여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극우 정치인들이 이 가치를 버렸다. 인종차별국가를 노골적으로 희망하는 모양새다. 비판적인 언론 알자지라 지국을 폐쇄함으로써 언론을 통제한다. 잘못된 길이다. 힘들어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와 태도를 지켜내야 이스라엘은 생존할 수 있다. 그 길만이 전쟁에서 이기는 첩경이다. 이대로 가면 진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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