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괴롭다고? 매일 잠들기전 ‘이것’ 하세요”…화엄사 주지스님의 조언

이향휘 선임기자(scent200@mk.co.kr) 2024. 5. 1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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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주지 덕문스님 인터뷰
스스로 진실해야 행복해져
매일 잠들기전 ‘되감기 수행’
하루하루 정리하면 더 나아져
내 업에 따라 부모 선택하는것
다음생 위해 복짓는 행동 해야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 뒤로 ‘불기자심’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이충우기자]
지리산 기슭에 위치한 전남 구례는 대표적인 인구 소멸 지역이다. 인구 2만5000명에 아기 울음 소리도 그친지 오래다. 가난한 이곳에 MZ세대들이 몰려들고 있다. 천년고찰 화엄사 덕분이다. 홍매화 축제가 한창이던 지난 3월에는 한달 동안 25만명이 몰렸다. 6월엔 요가 대회, 8월엔 모기장 영화제, 10월엔 괘불제가 열린다. 사시사철 사찰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은 이가 바로 주지 덕문 스님(59)이다.

바쁜 일정을 뒤로 하고 최근 서울을 찾은 스님은 종로구 한 사무실에서 “2017년 취임 이후 잊혀져 가는 화엄사가 아니라 앞으로 천년을 위해 미래세대가 찾는 화엄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며 “대학생들에겐 1박2일 템플스테이가 공짜”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 RM이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찾아온 곳도 인스타 스타 ‘꽃스님’ 범정스님이 출가한 곳도 화엄사다.

“20대는 가장 생각이 많아질 때입니다. 옛날처럼 삶이 보장되지 않거든요. 학교에서 나가면 정글이에요. 젊은이들에겐 서두르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남이 뛴다고 덩달아 뛰지 말고, 또박또박 걸어가야 지치지 않는다고. 앞으로 70년은 더 살아야 하니까.”

파르라니 깎은 스님의 머리 위로 4자성어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불기자심(不欺自心)이다.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성철스님이 3000배를 한 이들에게 절값으로 주었다는 화두기도 하다.

최근 서울을 찾은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불기자심’이라는 액자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따. 2024.04.24[이충우기자]
“내가 내 모습을 가장 많이 알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고 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과장해서 보기도 하죠. 자기 객관화가 안되는 거죠. 하지만 행복하려면 스스로 진실해야 합니다.”

옛 스님들이 육환장이라는 지팡이를 밟으면서 발밑을 살 핀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결국 자신을 성찰하느냐가 수행자와 일반인의 차이다. “참선할 때는 내 코 끝을 봅니다. 멀리 바라보는 게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는 거죠.”

현대인이 앓고 있는 ‘걱정병’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왜 세상이 괴롭냐면 생각이 너무 많아서예요. 이를 줄이는 게 명상입니다. 선명상의 선(禪)이라는 글씨도 볼시(示)와 홑단(單)이 합쳐진 거예요. 한 가지에 집중하며 생각을 줄이는 거죠.”

스님은 오래 전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 일과를 돌아보는 ‘되감기 수행’ 을 하고 있다.

덕문스님 화엄사 주지 2024.04.24[이충우기자]
“오늘 있었던 일을 죽 떠올려보는 과정을 5분이고 10분이고 되감다보면 하루를 정립하게 돼요. 그러면 여백이 생겨서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 살아집디다.”

오는 15일은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이다. “2600년 전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경전 읽다보면 자식걱정, 건강걱정, 돈걱정 지금하고 똑같아요. 부처님은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져주죠. 콩 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 인과의 법칙도 이야기합니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스님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1984년 화엄사로 출가했다. 돈 안들고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절집으로 향한 것이다. 수행에 전념하다가 종단 개혁의 바람을 타고 사판승의 길을 걷게 됐다. “안양 용화사 사태에 휘말려 소송 6년을 하면서 30대를 보냈어요. 60대까지는 소임을 하고 나머지 30년은 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스님이 묻더군요. 선방이 좋아요? 주지 살때가 좋아요? 주지 살 때는 신도들 괴로움이 내 괴로움이 돼 괴롭지만 공부는 많이 됩디다.”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최근 서울을 찾아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불기자심’이라는 액자가 벽에 걸려 있다. [이충우기자]
스님은 “누군가 날 괴롭히면 전생에 내가 그 사람을 괴롭혔나보다 생각하고, 돈 빌려서 안 갚으면 전생의 빚을 갚았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말 다음생이 있는 것일까. “부모에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업에 의해 내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부모 원망할 게 아니죠. 이 몸이 살다가 죽으면 껍데기는 없어지고 불성만 남아 있어요. 당연히 99.99%가 다음생에 반드시 태어납니다. 다음생이 있기에 막 살지 말고, 복짓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스님은 “자비란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이라며 “부처님오신날 나를 되돌아보면서 베푸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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