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 돼지처럼 조류독감 인간 전파 교두보 가능"

한건필 2024. 5. 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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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바이러스 수용체 조류형과 인간형 모두 발견돼
미국 젖소 농장에서 유행한 조류독감이 전 세계 공중보건 당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소가 조류독감뿐 아니라 인간의 독감 바이러스에도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젖소 농장에서 유행한 조류독감이 전 세계 공중보건 당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소가 조류독감뿐 아니라 인간의 독감 바이러스에도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최근 생물학 논문 사전인쇄 사이트 《바이오아카아브(bioRxiv)》에 발표된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CNN이 9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고병원성 조류독감(H5N1) 바이러스는 주로 조류 개체군에 국한됐다가 최근 점점 더 많은 포유류를 감염시키면서 점차 인간 병원체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H5N1은 미국의 상업용 가금류 무리를 몰살시켰고 돼지도 감염시킨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소가 잠재적 숙주가 될 가능성은 그동안 검토되지 못했다.

포유류에서 독감은 일반적으로 폐를 감염시킨다. 고양이의 경우는 뇌도 감염될 수 있다. 연구를 이끈 코펜하겐대의 라르스 라르센 교수(수의학 임상미생물학)는 "감염된 젖소의 우유에 있는 H5N1 바이러스의 농도가 일반적으로 감염된 조류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1000배나 높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감염된 젖소 한 마리의 우유를 1000t의 우유에 희석하더라도 과학자들이 실험실 테스트에서 미량의 바이러스를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동물세포의 외부에 안테나처럼 뻗어 있는 시알산(Sialic acid)이란 산성 당 성분이 있다. 이 시알산은 동물마다 모양이 다르다. H5N1 바이러스는 조류의 시알산 수용체와 결합해 세포에 침투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앤디 페코즈 교수(분자 미생물학‧면역학)는 새의 시알산 수용체가 검지손가락을 똑바로 든 모양이라면 사람의 시알산 수용체는 손가락 마디를 꾸부려 만든 거꾸로 L자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독감 바이러스는 다른 모양보다 한 가지 모양에 결합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것이 조류에서 유래한 H5N1이 사람들 사이에서 효율적으로 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최근까지 소가 어떤 종류의 시알산 수용체를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소가 H5N1과 같은 A형 독감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르센 교수 연구진은 송아지와 젖소의 폐, 기관지, 뇌, 유선에서 조직 샘플을 채취해 다양한 종류의 시알산 수용체에 달라붙는 것으로 알려진 화합물로 염색했다. 염색된 조직을 아주 얇게 썰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폐포라고 불리는 유방의 작은 우유 생산 주머니에 시알산 수용체가 가득했는데 조류의 수용체와 사람의 수용체가 모두 존재했다. 논문의 주저자인 코펜하겐대의 샤를롯 크리스텐슨 박사후연구원(수의 병리학)은 관찰한 거의 모든 세포에 두 가지 유형의 수용체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세계보건기구(WHO) 동물 및 조류 인플루엔자 생태 연구 협력 센터의 책임자인 리처드 웹비 박사는 "같은 세포에서 두 가지 바이러스가 동시에 감염되면 본질적으로 하이브리드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류독감과 인간독감 두 가지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되기 위해서는 세포가 두 종류의 시알산 수용체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소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 이번에 처음 밝혀진 것이다.

25년 동안 H5N1 바이러스를 연구해 온 웹비 박사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밝혔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조류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소가 사람 독감 변이에 감염돼야 한다. 현재 미국 전역의 인간 독감 감염률은 낮은 데다 독감 시즌이 끝나면서 감소하고 있어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돼지 역시 호흡기에 사람과 조류의 시알산 수용체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돼지의 독감 감염이 독감 대유행을 촉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조류독감 대유행은 멕시코의 돼지에서 바이러스가 재조합돼 사람 사이에 빠르게 퍼질 수 있는 바이러스로 변이된 결과였다.

웹비 박사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소에서 변화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은 더 점진적이고 더 흔하다고 밝혔다. 바이러스는 스스로를 복제할 때마다 실수를 저지른다. 때때로 이러한 실수는 바이러스의 힘을 약화시키고 생존 가능성을 떨어뜨리지만, 다른 경우에는 적어도 바이러스에겐 행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만일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소의 인간형 시알산 수용체에 더 쉽게 결합할 수 있도록 변이를 일으킨다면, 인간과 같이 더 많은 세포와 더 많은 종류의 동물을 감염시킬 수 있는 이점을 얻게 된다.

이러한 재배열은 바이러스 진화에 있어서 큰 변화를 초래하지만 새로운 숙주를 통해 바이러스가 점진적으로 이동하는 진화적 표류에 의해 바이러스의 게놈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은 소식은 아니라고 미국 노스이스턴대의 샘 스카피노 교수(컴퓨터생물학)는 설명했다.

이번 연구를 검토한 스카피노 교수는 동료검토가 필요한 연구이긴 하지만 이전에는 아무도 A형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소 조직의 수용성을 조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젖소와 유제품에 밀접하게 접촉하는 근로자에게 의무화된 보호 조치를 강화하고 젖소의 독감 연구에 대한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며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매우 빨리 알아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biorxiv.org/content/10.1101/2024.05.03.592326v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hanguru@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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