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민주적이고 과학적인 장기 전력정책 수립을 기대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결과에 대해 민심을 경청하겠으나 정부 정책 기조는 변화가 없을 것임을 내비쳤다. 지난 4월29일 영수회담에서 RE100 의제가 거론되고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부의 전력정책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올해 안으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정부안이 공개될 예정이다. 전기본 발표를 앞두고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현 정부 출범 2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도 2050년 장기 최적 전력믹스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석탄과 가스 없이 어떤 무탄소 전력원을 각각 얼마만큼 구성하여 전력 수요를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
구상 자체가 없는 것인지, 있지만 공개하지 않는 것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현 정부의 장기 전력정책 방향이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에너지·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현명하고 실현 가능한 전략인지에 대한 사회적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윤 정부의 전력정책은 원전의 역할을 강조하며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대립시켜왔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풀어야 할 핵심 질문은 화석연료 발전을 얼마나 빠르게 퇴출시키느냐이다. 원전만 생각해서는 최적의 무탄소 전력 믹스 구성에 한계가 크다.
현 정부가 제시한 장기 전력정책이 없으니 지난 정부 때 수립했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A안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A안에서 우리나라 총 발전량은 1258TWh(테라와트시)로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다고 가정한다. 2050년에도 원전 비중이 35% 정도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원전 발전량은 440TWh가 되어야 한다. 이용률 85% 수준으로 현재 원전 발전량의 두 배가 넘는 59GW(기가와트)의 원전 설비가 있어야 가능한 수준이다.
현재 운영 중인 모든 원전 수명을 20년 연장하고, 계획 중인 원전 건설을 완료해도 2050년 원전 설비용량은 23GW에 그친다. 따라서 35%를 위해서는 36GW 원전이 더 필요하다. 이를 대형 원전으로 충당하려면 24기, 현재 연구·개발 단계에 불과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로 충당하려면 무려 53개소에 212기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 우리나라 226개 시군구 네 곳 중 하나에는 소형 원전이 4기씩 들어서야 가능한 수치다. 이 같은 추산을 감안하면 2050년 원전 비중 35%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재생에너지가 주가 될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이미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방향이다.
이번 정부가 내세우는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적 확충’은 내용이 없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50년 100% 무탄소 전력 믹스로의 전환이라는 난제를 푸는 첫 시작은 정부가 생각하는 전력 믹스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제시하는 것에 있다. 거기서부터 사회적 토론이 시작되어야 한다.
국가의 장기 전력정책은 민주적인 의견 수렴 과정과 과학적인 토론을 통해서 수립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15년 계획인 전기본은 여전히 국회 의결사항이 아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부터 정부가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이인성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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