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놓은 ‘관운장’ 미쉐린 1스타 셰프…비건 레스토랑 만나 ‘진미’ 만들다 [푸디人]

안병준 기자(anbuju@mk.co.kr) 2024. 5. 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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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인-28] 윤서울의 김도윤 셰프 (feat. 농심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 )

삼국지의 명장 관우에게 청룡언월도를 주지 않고 ‘일기토(말을 탄 장수의 일대일 대결)’에 나가라 명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관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담담히 나가 적장의 목을 베어 돌아왔을 겁니다.

밑도 끝도 없이 관우 이야기를 꺼낸 건 미쉐린 가이드 1스타 레스토랑 윤서울의 김도윤 셰프가 비건 파인 다이닝 ‘포리스트 키친’과 협업한 요리에서 이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 매고 입주위를 둘러싼 검은 수염이 관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죠.

김 셰프는 재료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음식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드라이에이징한 생선과 해산물, 올리브를 먹여 키운 소와 우유 등을 사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극강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환경을 생각하는 사려깊음도 돋보이죠.

그런데 비건 레스토랑과 협업하다보니 김 셰프에게 이런 무기가 없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관우에게 청룡언월도를 뺏은 것처럼 말이죠. 오로지 식물성 재료만을 이용해 만든 윤서울과 포리스트 키친의 요리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포리스트 키친은 지난해말 합류한 윤강산 셰프가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미쉐린 3스타 고든 램지의 첼시 레스토랑 외에 다수의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고 합니다.

미쉐린 1스타와 비건 파인 다이닝의 만남
**포리스트 키친(Forest Kitchen)** -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비건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인테리어는 숲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재현. - Forest Kitchen은 숲(Forest)과 주방(Kitchen)을 조합한 단어로 자연의 건강함을 담은 메뉴를 제공하겠다는 의미. 지역 농가와 협력을 통해 제철 채소를 엄선하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개발. - 메뉴(2024년 3월 기준) 런치 (6코스 55,000원, 9코스 77,000원), 디너 (9코스 77,000원, 12코스 99,000원) - 위치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몰 6층
이렇게만 먹을 수 있다면 비건도 행복하다!
웰컴 드링크인 가스파초와 발효한 사파이어 포도. 안병준 기자
윤서울과 포레스트키친의 협업 코스요리는 총 10개의 디쉬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중 윤서울과 포레스트키친은 각각 5개씩 디쉬를 선보였죠.

먼저 입맛을 돋구기 위한 식전 메뉴로 가스파초와 발효한 사파이어 포도가 나왔습니다. 윤서울에서는 날마다 다르긴 하지만 첫 메뉴인 한입거리로 드라이에이징한 가리비관자, 육포, 한치 등이 나오는데 이날은 발효와 숙성된 식물성 재료로 포문을 열었네요.

발효된 사파이어 포도는 새콤함 대신 약간 짭조름하면서도 익은 맛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가스파초는 아라비아어로 ‘젖은 빵’이라는 뜻으로 에스파냐 남부 지방에서 토마토와 오이, 파프리카, 마늘, 빵까지 함께 갈아마시던 가정식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스페인에선 여름철에 특히 토마토를 많이 이용하는데 제철 채소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영양식이 따로 없죠. 이 날 가스파초에는 빵이 들어가지는 않은 듯 했고 디톡스되는 좋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도윤 셰프가 깊게 연구한 면의 매력이 담긴 백화면. 안병준 기자
두번째로 나온 요리는 김 셰프의 공력이 깊게 들어간 백화면 이었습니다. 면 위에 하얀 꽃이 피었다고 해서 이름 지었다고 하네요.

윤서울의 시그니처 요리를 꼽으라면 ‘면’이 빠질수가 없습니다. 김 셰프는 십여년 넘게 면을 연구해오면서 첨가제를 쓰지 않고 좀 더 순수하고 속이 편한 면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죠. 자가제분은 물론 자가제면까지 면에 대한 그의 고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면은 유전자 조작 없는 한국의 통밀에 녹두, 백태를 넣어 향을 더했고 태안자염(태안에서 끓여서 만든 전통 저염 소금)과 들기름으로 맛을 냈습니다.

특히 윤서울은 들기름에 진심인데 이날 들기름은 ‘들샘’ 품종과 토종 들기름을 블렌딩해 만들었다고 하네요. 들깨는 품종만 약 50여가지에 달하는데 ‘들샘’ 품종은 볶지 않고 자연건조로 충분히 말린 후 짜내는 생 들기름 용으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백화면과 함께 마시는 능이주
백화면과 곁들여 마실 술로는 능이주가 나왔습니다. 사실 윤서울은 파인 다이닝이 아닌 한식 주점을 뿌리로 두고 있죠. 홍대 인근에서 다양한 전통주와 한식을 고급스럽게 선보이면서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페어링 주류로 전통주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날 요리와 함께 페어링된 술은 총 6종류였는데 3종류는 윤서울이 선보인 전통주였죠. 내국양조가 만든 능이주는 국내산 쌀로 빚은 약주로 능이버섯을 더해 은은한 향이 돋보이고 도수가 13도 정도라 목넘김이 부드럽습니다.

백화면 위에 올라가 꽃을 피운 도라지와 무나물과 함께 들기름으로 코팅된 면을 한 입 하니 일단 담백한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들기름 막국수는 ‘내가 여기 왕이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들기름이 다른 재료의 맛과 향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백화면은 무와 도라지의 산뜻함과 면의 은은한 고소함을 느낄 수 있게 들기름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샐러드와 샴페인. 안병준 기자
세번째는 샐러드와 샴페인이었고 포리스트 키친에서 준비했습니다.

세가지 이상 넣은 허브에 절인 토마토와 멜론을 바질크림과 미니바질과 선보였고 간은 소금, 간장젤리, 매실 비네그레이트로 마무리했다네요. 샴페인은 테인 리오코(Taisne Riocour) 2014 입니다. 샤르도네와 피노누아를 60대 40 비율로 블렌딩 했으며 레몬, 라임류의 시트러스함과 브리오슈의 풍성한 느낌이 난다고 설명해주시네요. 단맛이 적고 버블감이 적은 편이었습니다.

삭힌보리와 능이버섯, 포르치니가 들어간 윤서울의 만두와 청양고추 향이 나는 ‘SHORE RED’ . 안병준 기자
네번재로 나온 음식은 윤서울의 만두였는데, 기존에 우리가 알던 개념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일단 밀가루가 아닌 삭힌 보리를 갈아서 만두피가 아닌 넓적한 면을 만들었고, 면 속에는 무와 포르치니 버섯, 새송이 버섯이 들어가 있습니다. 보통의 만두라면 재료를 갈아서 넣지만 윤서울은 재료의 형태가 그대로 보이게 토막 썰어서 넣었죠. 육수는 포르치니 버섯과 능이버섯을 사용해 버섯향을 더욱 살렸고 면 위에 놓인 표고버섯은 조리하지 않고 발효한 상태라고 하네요. 발효와 숙성 조리법을 주로 사용하는 윤서울 다운 메뉴였습니다.

전반적으로 슴슴한 맛의 만두에 페어링된 요상한 증류주가 청양고추의 알싸한 맛을 더함으로써 묘한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브리즈앤스트림이 내놓은 ‘쇼어 레드(SHORE RED)’. 안병준 기자
이 요상한 술은 강원도 인제에 양조장이 있는 브리즈앤스트림이 내놓은 ‘쇼어 레드(SHORE RED)’ 입니다. 강원도 인제산 쌀로 만든 증류주를 자작나무숯으로 여과한 쌀 보드카인데, 인제산 고랭지 청양고추를 침출시켜 청양고추 특유의 알싸한 풋내와 함께 40도의 따끔한 알코올 감이 어우러집니다.
윤서울의 흑갱밥. 윤서울에서는 생선인 백조기를 올려 주지만 이번 콜라보에서는 비건 요리인만큼 죽순으로 대체했다. 안병준 기자
다섯번째는 윤서울에서도 메뉴로 나오는 흑갱밥 입니다.

주로 함경도에서 나오는 흑갱은 찹쌀의 일종으로 검고 긴 까락에 흰 낟알 색이 인상적입니다. 낟알은 둥글고 작지만 찰기와 끈기가 강한 편이죠. 까락만 검은색이라고해서 흑갱으로 이름 붙여졌다고 하네요.

흑갱밥은 흑갱과 2017년 담근 된장으로 발효한 다시마와 파를 결들여 밥을 지었고 위에는 콩으로 만든 콩지게미와 죽순을 올렸습니다. 윤서울에서는 백조기나 가자미 등 생선이 주로 밥 위에 올려지는데 비건 레스토랑인만큼 죽순으로 대체됐네요.

제 입맛에는 가장 재밌는 요리였는데 흑갱과 다시마, 파의 식감이 살아있고, 콩지게미의 은은한 달달함이 잘 어울러졌습니다.

김으로 싼 화이트 아스파라거스와 두릅 튀김. 안병준 기자
여섯번째와 일곱번째는 포레스트 키친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요리로 마치 팝아트 작품을 연상케 할정도로 식물성 재료의 다양한 색감을 살린 플레이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섯번째 요리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김으로 하나하나 싸서, 마치 검은 벌집 모양 같았고 두릅은 살짝 데쳐 바삭하게 튀겼습니다. 소스는 두가지인데 검정색은 김 퓌레, 하얀색은 샐러리악 퓌레와 허브오일을 사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파리는 오이스터리프라는 허브인데 생굴과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하네요.

웰링턴. 안병준 기자
일곱번째로 나온 요리는 웰링턴으로 흔히 레스토랑에서 먹는 비프 웰링턴과 모습이 유사하나 재료는 식물성으로만 사용했습니다.

바삭함을 구현하면서도 버터를 사용하지 않은 비건 페스트리 안에 버섯과 애호박, 토마토 등 채소를 가득 채웠고 형형색색의 퓌레 소스는 4가지인데 초록색은 시금치, 노란색은 당근, 붉은 색은 비트로 만들었습니다. 가운데에 있는 브라운 소스는 양파를 졸여 단맛을 최대한 이끌어낸 양파 소스라고 하네요.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윤서울의 아이스크림. 안병준 기자
어느덧 메인 요리가 끝나고 디저트로 넘어갑니다.

디저트는 총 3종이 나왔는데 먼저 윤서울에서 만든 우유 없는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마와 마카다미아, 조청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우유가 들어갔다’고 해도 믿을만큼 질감과 풍미가 아이스크림 같아 놀랐습니다. 윤서울에서는 올리브 사료를 먹여 키운 소로부터 고기와 우유를 받아 요리에 사용하는데, 비건 요리인만큼 이번엔 우유와 첨가제 없이 만들었다고 하네요.

조선의 명주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경성과하주. 안병준 기자
여기에 페어링 된 술은 경성과하주였습니다. 조선의 명주 중 하나로 손꼽혔는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겼다가 ‘술아원’에서 문헌을 바탕으로 복원에 성공했습니다.

달짝지근한 화이트 와인 느낌인데 실제 포르투갈의 포트와인과 동일한 주정강화 방식으로 만든다고 하네요. 디저트 술로는 제격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포리스트 키친의 셔벳. 안병준 기자
이어서 나온 디저트는 포리스트 키친의 셔벳입니다. 계절이 변해가는 숲의 모습을 표현한 디저트로 봄철 푸른 잔디와 꽃이 피어나는 나무 가지를 형상화 했다고 하네요.

마지막은 약과와 참외 마카롱, 카모마일 티가 나왔는데 참외 마카롱은 상큼한 맛이 신선했습니다.

약과와 참외 마카롱, 카모마일. 안병준 기자
식사를 마치고 윤서울의 김 셰프와 간단히 인터뷰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재 제주도에서 올리브 사료를 먹인 소를 키워 조만간 우유와 버터 등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또 고사리 등 좋은 원재료를 찾기 위한 노력도 여전히 철저하게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의 요리가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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