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놓은 ‘관운장’ 미쉐린 1스타 셰프…비건 레스토랑 만나 ‘진미’ 만들다 [푸디人]
삼국지의 명장 관우에게 청룡언월도를 주지 않고 ‘일기토(말을 탄 장수의 일대일 대결)’에 나가라 명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관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담담히 나가 적장의 목을 베어 돌아왔을 겁니다.
밑도 끝도 없이 관우 이야기를 꺼낸 건 미쉐린 가이드 1스타 레스토랑 윤서울의 김도윤 셰프가 비건 파인 다이닝 ‘포리스트 키친’과 협업한 요리에서 이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 매고 입주위를 둘러싼 검은 수염이 관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죠.
김 셰프는 재료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음식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드라이에이징한 생선과 해산물, 올리브를 먹여 키운 소와 우유 등을 사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극강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환경을 생각하는 사려깊음도 돋보이죠.
그런데 비건 레스토랑과 협업하다보니 김 셰프에게 이런 무기가 없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관우에게 청룡언월도를 뺏은 것처럼 말이죠. 오로지 식물성 재료만을 이용해 만든 윤서울과 포리스트 키친의 요리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포리스트 키친은 지난해말 합류한 윤강산 셰프가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미쉐린 3스타 고든 램지의 첼시 레스토랑 외에 다수의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고 합니다.
먼저 입맛을 돋구기 위한 식전 메뉴로 가스파초와 발효한 사파이어 포도가 나왔습니다. 윤서울에서는 날마다 다르긴 하지만 첫 메뉴인 한입거리로 드라이에이징한 가리비관자, 육포, 한치 등이 나오는데 이날은 발효와 숙성된 식물성 재료로 포문을 열었네요.
발효된 사파이어 포도는 새콤함 대신 약간 짭조름하면서도 익은 맛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가스파초는 아라비아어로 ‘젖은 빵’이라는 뜻으로 에스파냐 남부 지방에서 토마토와 오이, 파프리카, 마늘, 빵까지 함께 갈아마시던 가정식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스페인에선 여름철에 특히 토마토를 많이 이용하는데 제철 채소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영양식이 따로 없죠. 이 날 가스파초에는 빵이 들어가지는 않은 듯 했고 디톡스되는 좋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윤서울의 시그니처 요리를 꼽으라면 ‘면’이 빠질수가 없습니다. 김 셰프는 십여년 넘게 면을 연구해오면서 첨가제를 쓰지 않고 좀 더 순수하고 속이 편한 면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죠. 자가제분은 물론 자가제면까지 면에 대한 그의 고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면은 유전자 조작 없는 한국의 통밀에 녹두, 백태를 넣어 향을 더했고 태안자염(태안에서 끓여서 만든 전통 저염 소금)과 들기름으로 맛을 냈습니다.
특히 윤서울은 들기름에 진심인데 이날 들기름은 ‘들샘’ 품종과 토종 들기름을 블렌딩해 만들었다고 하네요. 들깨는 품종만 약 50여가지에 달하는데 ‘들샘’ 품종은 볶지 않고 자연건조로 충분히 말린 후 짜내는 생 들기름 용으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날 요리와 함께 페어링된 술은 총 6종류였는데 3종류는 윤서울이 선보인 전통주였죠. 내국양조가 만든 능이주는 국내산 쌀로 빚은 약주로 능이버섯을 더해 은은한 향이 돋보이고 도수가 13도 정도라 목넘김이 부드럽습니다.
백화면 위에 올라가 꽃을 피운 도라지와 무나물과 함께 들기름으로 코팅된 면을 한 입 하니 일단 담백한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들기름 막국수는 ‘내가 여기 왕이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들기름이 다른 재료의 맛과 향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백화면은 무와 도라지의 산뜻함과 면의 은은한 고소함을 느낄 수 있게 들기름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세가지 이상 넣은 허브에 절인 토마토와 멜론을 바질크림과 미니바질과 선보였고 간은 소금, 간장젤리, 매실 비네그레이트로 마무리했다네요. 샴페인은 테인 리오코(Taisne Riocour) 2014 입니다. 샤르도네와 피노누아를 60대 40 비율로 블렌딩 했으며 레몬, 라임류의 시트러스함과 브리오슈의 풍성한 느낌이 난다고 설명해주시네요. 단맛이 적고 버블감이 적은 편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슴슴한 맛의 만두에 페어링된 요상한 증류주가 청양고추의 알싸한 맛을 더함으로써 묘한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주로 함경도에서 나오는 흑갱은 찹쌀의 일종으로 검고 긴 까락에 흰 낟알 색이 인상적입니다. 낟알은 둥글고 작지만 찰기와 끈기가 강한 편이죠. 까락만 검은색이라고해서 흑갱으로 이름 붙여졌다고 하네요.
흑갱밥은 흑갱과 2017년 담근 된장으로 발효한 다시마와 파를 결들여 밥을 지었고 위에는 콩으로 만든 콩지게미와 죽순을 올렸습니다. 윤서울에서는 백조기나 가자미 등 생선이 주로 밥 위에 올려지는데 비건 레스토랑인만큼 죽순으로 대체됐네요.
제 입맛에는 가장 재밌는 요리였는데 흑갱과 다시마, 파의 식감이 살아있고, 콩지게미의 은은한 달달함이 잘 어울러졌습니다.
여섯번째 요리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김으로 하나하나 싸서, 마치 검은 벌집 모양 같았고 두릅은 살짝 데쳐 바삭하게 튀겼습니다. 소스는 두가지인데 검정색은 김 퓌레, 하얀색은 샐러리악 퓌레와 허브오일을 사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파리는 오이스터리프라는 허브인데 생굴과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하네요.
바삭함을 구현하면서도 버터를 사용하지 않은 비건 페스트리 안에 버섯과 애호박, 토마토 등 채소를 가득 채웠고 형형색색의 퓌레 소스는 4가지인데 초록색은 시금치, 노란색은 당근, 붉은 색은 비트로 만들었습니다. 가운데에 있는 브라운 소스는 양파를 졸여 단맛을 최대한 이끌어낸 양파 소스라고 하네요.
디저트는 총 3종이 나왔는데 먼저 윤서울에서 만든 우유 없는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마와 마카다미아, 조청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우유가 들어갔다’고 해도 믿을만큼 질감과 풍미가 아이스크림 같아 놀랐습니다. 윤서울에서는 올리브 사료를 먹여 키운 소로부터 고기와 우유를 받아 요리에 사용하는데, 비건 요리인만큼 이번엔 우유와 첨가제 없이 만들었다고 하네요.
달짝지근한 화이트 와인 느낌인데 실제 포르투갈의 포트와인과 동일한 주정강화 방식으로 만든다고 하네요. 디저트 술로는 제격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은 약과와 참외 마카롱, 카모마일 티가 나왔는데 참외 마카롱은 상큼한 맛이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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