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르 피어오르는 전통향, 어느새 마음에 평안이

정성환 기자 2024. 5. 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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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향의 매력
선조 때부터 내려온 향료 배합방식 ‘향방’ 토대
솔잎·계피·정향나무·백단향 등 천연재료 사용
코로나19 거치며 인테리어·힐링 용품으로 주목
꽃향·커피향 등 섞은 젊은층 공략 제품도 등장

전통향(香)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싶기 마련이다. 전통향은 집 안의 분위기를 한층 그윽하게 만들고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켜주는 힐링 용품으로 주목받는다. 덕분에 빨갛게 타들어가는 심지와 피어오르는 항연(향의 연기)을 바라보며 ‘향멍’을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경북 성주의 취운향당을 방문해 우리 전통향이 지닌 매력을 알아봤다.

#전통 제조법으로 복원한 전통향

“일제강점기에 전통향 제조법이 소실되고 외국에서 들어온 질 나쁜 향 때문에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전통 재료와 방법으로 만든 건강한 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취운향당에서 31년간 향을 만든 채명희씨(61)의 말이다. 이곳은 1993년부터 전통향을 만들어 온 국내 대표적인 향 제조업체다. 취운향당을 설립한 능혜 스님(62)은 사찰에서 전해 내려오는 향 제조법을 기반으로 전통향을 복원했다.

왼쪽부터 전통 방식으로 완성한 선향 ‘취운’ ‘진관’ ‘자금’.

전통향이란 선조 때부터 내려온 향 혼합 방식인 ‘향방(香方)’을 토대로 천연 재료를 사용해 만든 것을 말한다. 향방은 향을 내는 향료를 어느 비율로 배합할지를 결정하는 제조법의 일종이다. 취운향당은 전통 향방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향 배합기술을 발전시켰고, 매주 향을 2500통 이상 판매한다. 지금은 한국향도문화협회를 설립해 전통향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전통향의 재료로는 주로 솔잎·계피·정향나무·백단향 등이 쓰인다. 한약방에서 자주 맡아본 냄새로, 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효과가 있다. 채씨는 “오랜 실내생활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우리 향을 찾는 까닭”이라며 “코로나19 때 향을 피우는 ‘향멍’이 유행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향(정향나무 꽃봉오리)으로 만든 향은 매콤하면서도 박하처럼 산뜻하고, 침향(침향나무 진액)은 상대적으로 깊고 묵직한 내음이 난다. 향은 반죽을 어떻게 빚는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국수처럼 길게 뽑아낸 막대 모양은 ‘선향’, 총알처럼 작은 원뿔 모양으로 빚은 것은 ‘탑향’, 동그란 구슬처럼 말아놓으면 ‘환향’이라 일컫는다. 채씨는 향 종류에 따른 활용법도 알려줬다.

“향 연기에 민감한 분들이 많아서 따듯한 곳에 두면 은은하게 향이 올라오는 환향을 많이 추천드려요. 중간 시간에 적당한 향과 연기를 즐기려면 선향을 주로 쓰죠. 탑향은 불을 붙이면 짧은 시간에 풍성한 향을 맡을 수 있어요.”

향을 코로만 즐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통향은 코로 한번 즐기고 눈으로 또 한번 즐긴다. 향의 연기를 ‘향연’이라고 부르는데 향연이 그리는 유려한 곡선은 두 눈을 사로잡아 자연스럽게 향에 취할 수 있다. 단, 안전하게 향을 즐기려면 환기는 필수다. 밀폐되지 않은 공간에서 향을 피워야 하는 이유다. 또 주변으로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충분한 크기의 타지 않는 도자기나 유리 받침을 사용해야 한다.

① 말린 솔잎. 향에 들어가는 한약재는 정해진 비율대로 섞고 가루를 낸다. ② 배합한 원료를 반죽기에 넣고 지하수와 섞어 반죽한다. ③ 향 반죽을 작은 구멍이 뚫린 틀에 넣어 막대 모양 ‘선향’을 뽑는다. ④ 나무판 위에서 선향을 건조하고 있다. 경북 성주 취운향당에서 기자가 원뿔 모양의 ‘탑향’을 감상하는 모습. 탑향은 향연이 위아래로 퍼지는데 적절한 받침대 위에 올려놓으면 아름다운 곡선으로 춤추는 향연을 볼 수 있다. 성주=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천연 재료로 어필하는 전통향

최근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실내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향을 찾는 젊은층이 늘었다. 전통향은 천연 재료를 기반으로 젊은층에게 익숙한 꽃 향기 등이 더해져 친숙하게 다가온다. 사찰 냄새 같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다.

전통향의 대중 보급을 꿈꾸는 기업 ‘인센스월드’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향(캣닢향), 쌀겨를 태운 누룽지향 등 독특한 향을 출시했다. 이곳은 향을 만들 때 쑥·난·매화 등 90% 이상 천연 재료를 활용한다. 김영 대구한의대학교 부교수가 설립한 향 브랜드 ‘카라영(KSENS)’은 체질에 따라 잘 맞는 약재를 배합한 ‘태양솔잎’ ‘태음감국’ 등 사상(四象) 인센스를 출시해 월 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은은한 커피향이 나는 ‘커피캠퍼’는 버리는 커피 찌꺼기를 재사용한 제품으로 젊은 세대의 가치소비 트렌드를 노렸다.

손성현 인센스월드 대표는 “전통향에 5%만 새로운 재료를 첨가해도 젊은이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향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장준수 한국향도문화협회 이사도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우리 전통향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며 “MZ세대(1980년∼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전통향 개발에 적극 나서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할 일로 머릿속이 꽉 찬 하루의 끝, 은은한 전통향으로 마음을 달래봐도 좋을 듯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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