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드쿠닝·켄트리지…베네치아 화려하게 수놓은 거장들의 전시

노형석 기자 2024. 5. 1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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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초 디도에서 열리고 있는 동서양 현대미술 대가들의 연합 기획전 ‘야누스’의 전시장 일부. 스위스 작가 우르스 피셔의 금속제 물방울 설치작업들이 관객들의 눈길을 모았다. 노형석 기자

‘세레니시마’.

이탈리아 고도 베네치아의 사람들이 자기 도시를 불렀던 이 옛 애칭은 ‘고요하고 고결하다’는 뜻이다. 중세와 근세기 유럽 최고의 해상금융 강국이자 르네상스·바로크 회화와 음악을 꽃피웠던 베네치아는 이제 이런 애칭과는 거리가 멀다.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달 20일부터 공식개막한 세계 최고 최대의 현대미술 큰잔치인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때문에 11월가지 진행되는 행사 기간 세계 미술의 한복판이자 정치 사회적 이슈의 집결지가 되어 흥청거리고 시끄럽다.

올해 베네치아는 ‘언제 어디서나 이방인’이란 색다른 담론을 내걸고 제3세계 원주민과 피식민 국가들의 예술품을 대거 내세운 60회 비엔날레 본전시와 더불어 언저리의 다른 시내 공간에 시각예술 장르의 대가들이 다기하고 독특한 틀거지의 전시들을 숱하게 차려놓았다. 이우환, 빌렘 드 쿠닝, 알렉스 카츠, 장 콕토, 피에르 위그, 존 켄트리지, 로버트 인디애나 등 20~21세기 현대미술을 움직여온 거장 대가들의 회고작과 근작들이 여기저기 공간에 펼쳐져 있다.

2000년대 들어와 시내에서 다채로운 대가들의 전시가 열리는 것은 관행으로 자리 잡았지만, 올해는 특히 도심 서북쪽 변두리였던 카나렛지오 지역의 전시회들이 눈에 띈다. 18세기 프레스코 벽화와 우아한 장식이 들어찬 귀족 가문 저택인 팔라초 디에도 궁전에서 열리고 있는 동서양 현대미술대가 11명의 연합 기획전 ‘야누스’ (11월24일까지) 가 대표적이다.

베네치아에서 소나기와 기온급강하로 도드라진 기후변화의 양상을 예시라도 하듯 스위스 작가 우르스 피셔가 금속제 물방울 조각들을 무더기로 비를 뿌리듯 귀족의 거실에 매달아 놓은 작품들을 필두로, 아리따운 여러 색층으로 점과 선의 획을 그은 그림과 특유의 돌덩이 철판 작업을 내려놓은 이우환의 작품들, 여러 색깔의 정연한 색면 이미지들을 천장과 벽면에 내건 일본 작가 스기모토 히로시, 전시장 입구 카운터 공간까지 설치작품 공간으로 만든 리우 웨이의 근작 등이 여러 층에 걸쳐 선보이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국적과 작업 공간의 벽을 넘어 지금 시대에 대한 대가들의 현재적 감수성은 어떤 것인지를 일러주는 자리였다.

부근에 있는 옛 수녀원 건물인 ‘스쿠올라 그란데 델라 미제리코디아’에서는 중국의 그림 대가인 쩡판츠의 근작전시회(9월30일까지)가 미국 라크마뮤지엄 후원과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의 공간 연출로 차려졌다. 중국의 고전 회화와 서양의 근현대 회화를 융합시킨 듯한 크고 작은 추상, 반추상 작품들이 스펙터클한 공간감을 안기며 선보이는 중이다. 쩡판츠의 전시공간 바로 뒤쪽의 작은 옛 예배당 안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여성 현대 작가인 위홍이 일상의 압박과 속도에 치이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제단화 형식으로 펼쳐낸 대작을 펼쳐냈다.

두칼레 궁전의 마르코폴로 특별기획전 들머리 모습. 마르코폴로의 두상과 용모를 그린 옛 그림들이 보인다. 장동광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 제공

베네치아의 상징 산타마리아 성당이 있는 도르소두로 지구도 주목된다. 대표미술관 아카데미아는 네덜란드 출신 추상표현주의 거장 데 드쿠닝과 이탈리아 인연을 담은 특별전(9월15일까지)을, 옛 세관 자리인 푼타 델라 도가나의 피노파운데이션 뮤지엄에서는 현재 세계적인 설치 작업가로 평가받는 프랑스 출신 작가 피에르 위그의 신작 전시 ‘리미널’(11월24일까지)이 열리는 중이다.

드쿠닝이 이탈리아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머물던 시절 받은 영감이 작용한 청동주물 반추상 인간의 조각상과 흑백 대비가 명확한 추상회화 등이 후기의 밝고 광채 넘치는 추상회화와 선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위그는 칠레 사막에 백골만 남은 유랑자의 시신 위에서 신비적 의식을 행하는 로봇기계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 등을 통해 시적인 은유와 첨단 테크놀로지 미학, 기계주의가 서로 삼투하는 기묘한 상상력을 드러낸다. 프랑스 파리 문화계의 총아이자 미술사조에 해박했던 문인 장 콕토(1889~1963)의 미술계 행적과 그가 남긴 작품들을 살펴보는 페기구겐하임 뮤지엄의 특별전 ‘저글러의 복수’(9월16일까지)도 주목할 만하다.

산마르코 광장에서는 중국의 실체를 처음 구체적으로 서방에 알린 13세기 탐험가이자 상인 마르코폴로를 중국 연구기관과 손잡과 대대적으로 조명하는 두칼레 궁전의 특별전(9월29일까지)과 ‘러브’ 조형물로 유명한 로버트 인디애나의 초기작부터 말년작까지를 망라한 광장 북회랑 건물(프로쿠라티에 베키에)의 회고전 ‘더 스위트 미스터리’(11월24일까지)가 눈길을 끈다.

마르코폴로 전에서는 한반도 청자를 비롯해 중근세 유럽이 동아시아와 교류한 여러 기록과 희귀 사료들을 만날 수 있고, 인디애나 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거칠고 현실 참여적인 뼈와 공산품을 이용한 초창기 설치작품들이 나왔다. 건축 디자인 거장 카를로 스카르파(1906~1978)의 대표적인 수작중 하나로 꼽히는 북회랑 건물의 올리베티 매장 전시관도 가볼만 하다. 모더니즘 디자인의 극점을 보여주는 스카르파의 미니멀한 계단과 격자문, 전시 공간을 보면서 그 안에 진열된 영국 건축거장 토니 크랙의 조각전 ‘유리의 형태들’(9월1일까지)을 감상하게 된다.

산마르코와 마주보는 산조르지오 마조레 섬에서는 인물화 거장 알렉스 카츠의 대형신작 전(9월29일까지)과 여성 누드사진의 거장 헬무트 뉴튼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특별전(11월24일까지), 공예품 명산지 무라노섬에서 1912~30년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유리조형물 명작전(11월24일까지) 이 차려졌다.

산마르코광장을 둘러싼 북회랑 건물의 전시장에 마련된 로버트 인디애나 회고전 전시장. 가축의 해골이 내걸린 설치작품 구작과 조명 빛이 명멸하는 문자설치작품 ‘더 어메리컨 일렉트림 드림’(2007~2018)이 나왔다. 노형석 기자

자르디니 공원 앞 아르세날레 민의정치 연구소 공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거장 윌리엄 켄트리지의 전시회가 꾸려졌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작업실에서 고립되어 지내면서 작가가 그린 여러 드로잉 작업들을 다큐멘터리 영상 형식으로 소개한 특별전 ‘커피 포트로서의 자화상’(11월24일까지)이 진행 중이다. 이밖에 리알토 수상버스 정거장에서 리알토 다리를 건너가 칼레 코르네르 구역의 골목길을 들어가면 만나는 폰타치오네 프라다 재단 베네지아 전시관의 특별전 ‘전당포’(11월24일까지)와 베네치아 본섬 남쪽 주데카섬 여성교도소에 들어선 교황청 비엔날레관(Holy See Pavilion)의 전시(11월24일까지)도 눈여겨볼 만한 전시들이다. ‘전당포’ 전은 스위스 작가 크리스토프 뷔첼이 원래 전당포였던 프라다 재단 전시관 건물의 옛 얼개를 재현하면서 현재 금융자본주의가 삶에 미친 폐해를 잡다한 폐기물 같은 수집품들로 채워진 모습들을 통해 보여준다. 최근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해 화제를 모은 교황청관은 사상 처음 교도소 현장에 개설된 미술전시장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발바닥 벽화를 비롯해 여성 수감자들이 작가들과 협업한 작품들까지 나와 예술과 인권의 관계를 성찰하게 하고있다.

베네치아/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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