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시혁과 김범수, 초고속 성장 속 ‘이것’을 잃었다  [권상집의 논전(論戰)]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2024. 5. 12. 12: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업가의 본질·방향성 놓쳐…“성장 이전에 철학을 정립해야”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갈등이 장안에 화제다. 국내외 언론사들은 일주일간 1000건이 넘는 기사로 이를 보도했다. 일부 경제주간지는 아예 특집호로 두 경영진의 갈등을 K팝 산업 차원에서 조명했다. 언론의 관심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이돌 그룹, 엔터테인먼트 산업 특성상 10대부터 50대까지 해당 사안에 관한 논쟁이 진행됐다. 특히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은 논쟁과 화제에 불을 지폈다.

(왼쪽)방시혁 하이브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연합뉴스

창업 초기에 보여줬던 참신함 퇴색

이번 사태, 그리고 갈등에 관해서는 많은 언론사가 이를 깊이 있게 다루었기에 또다시 이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번 이슈로 인해 방시혁 의장에 대한 평판, 그리고 경영자로서의 위상이 치명상을 입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는 BTS가 글로벌 아이콘으로 부각된 후 언론사 인터뷰 등을 모두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 학계의 경영자상 수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그는 기업가의 본질에 주력하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BTS 데뷔 전, BTS 멤버 내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기획형 상품이 아닌 뮤지션, 더 나아가 아티스트로 아이돌 지망생을 발굴·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의 소신으로 방시혁 의장은 '진정한 기업가란 무엇인가'를 학계와 재계에 제대로 각인시켰다. 뮤지션을 소모품으로 처리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아티스트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그들의 발자취를 고민한다는 방시혁 의장은 이후 언론에서 기업가 정신의 롤모델로 손꼽혔다.

민희진 대표는 이 점을 공략 포인트로 삼았다. 방시혁 의장을 'X저씨' 프레임으로 몰아갔다. 심지어 그가 뉴진스를 모방해 자신을 쫓아내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와 나눈 개인적인 카톡 메시지 공개는 각종 커뮤니티에서 '방시혁 의장 재평가가 필요하다' '실망이다'라는 부정적인 흐름을 굳히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사안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민희진 대표의 잘못이 크지만 치명상은 오히려 방시혁 의장이 입었다.

방시혁 의장이 지난해 최대 실적을 거둔 이유는 멀티 레이블(multi-label) 체제에 기인한다. BTS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라는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그는 하이브의 방향성을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으로 재조정하고 다양한 레이블(계열사) 인수에 주력했다. 하이브의 미래 지향점은 콘텐츠 포털기업이었다. 다수의 소속사를 보유한 대기업으로 변모한 하이브에 필요한 건 고속성장이 아닌 철학의 재정립이었다.

방시혁 의장은 K팝만의 전도사가 아니다. 하이브는 AI, 게임, 메타버스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콘텐츠를 기획한다. 하이브 경영진 다수가 IT 기업 출신으로 구성된 이유다. 다양한 레이블을 인수하며 규모가 커진 하이브의 성장은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가 결합되기에 이는 필연적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안의 본질은 방시혁 의장이 성장에 초점을 두다 자신의 강점인 철학을 놓쳤다는 데 있다.

2019년 2월 서울대 졸업식에서 방시혁 의장은 업계에 팽배한 무사안일, 악습과 관행에 강하게 맞서며 성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조리한 관행에 굴종하지 말고 분노하라는 메시지는 졸업생들에게 최대 화제가 됐다. 이 메시지는 현재 방시혁 의장을 향한 누리꾼의 부메랑 소재가 돼버렸다.

민희진 대표가 언론을 통해 시종일관 방시혁 의장의 생각을 꼬집으며 자신 역시 불합리에 분노한다고 유독 강조하는 이유다. 하이브는 공개 반박문을 통해 그녀의 주장을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했으나 상당수 대중은 그의 뉴진스 모방, 민희진 대표에게 던진 '즐거우세요?' 메시지를 본 후 비판적으로 돌아섰다. 역시나 지금의 하이브에 필요한 건 성장이 아닌 그가 창업 초기에 보여준 철학과 방향성의 재정립이다.

기업가에게 성장과 수익성은 물론 중요하다. 사업하는 분들에게 '성장, 수익보다 기업가의 가치와 철학, 인재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 이를 진중하게 듣는 이는 많지 않다. 성장과 수익은 당장 눈앞에 보이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로 나타나는 반면, 깊이 있는 철학과 가치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성과나 성장으로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가와 장사꾼은 철학으로 갈린다"

방시혁 의장만의 문제일까. 코로나 시기, 카카오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자 국내 모든 언론은 찬사를 보냈다. 지상파 방송사는 카카오를 '진격의 거인'으로 표현하며 그들의 성장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필자가 4년 전부터 카카오의 고속성장을 우려하며 기업가의 철학과 방향성 정립이 중요하다는 칼럼을 기고했으나 이를 경청한 이는 없었다. 기업가의 철학이 부재하면 어려운 상황에서 조직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각자도생한다.

당시 카카오는 4~5년 만에 계열사 160개를 보유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카카오만의 방향성이 부재하다 보니 금융, 콘텐츠, 이커머스를 넘어 대리운전, 가사도우미, 주차 서비스 등 골목상권, 소상공인 영역까지 침투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상장을 계기로 900억원대 차익 실현을 한 도덕적 해이는 카카오의 철학 부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철학이 부재한 기업가 정신은 빈 수레에 가깝다.

기업가와 사업가, 장사꾼은 철학의 유무로 갈린다. 돈을 버는 데 뛰어난 이는 장사꾼에 불과하다. 사업가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사업을 운영하며 지속 가능성을 꿈꾸지만 방향성이나 경영철학, 인재상까지 강조하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업가를 비즈니스맨(Businessman)으로 한정한다. 반면 기업가(Entrepreneur)는 자신이 꿈꾸는 방향, 그리고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를 밝히고 입증해야 한다.

방시혁·김범수 의장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각각 K팝과 플랫폼 산업을 개척한 인물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규모 확장과 수익성을 중시하다 보니 어느새 기업가가 가져야 할 본질을 놓쳤다. 사업가의 관점에 빠져들고 말았다.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사업가 밑에 모인 또 다른 장사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합집산하며 갈등만 유발한다. 경영철학이 빈곤한 상황에서 입에 문 달콤한 사과는 결국 독사과가 될 뿐이다.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