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돌봄휴직 신청하니 “간병인 쓰라”는 회사
공공기관에 다니는 A씨는 지난해 7월 가족돌봄휴직 신청서를 회사에 냈다. 70대로 지체장애 3급에 지병까지 앓고 있어 거동이 힘든 어머니가 혼자 화장실에 가다 고관절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A씨가 휴직을 신청한 지 100일이 지난 이후 사용 불가를 통보했다. ‘휴직이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등의 이유가 따라붙었다. A씨는 회사로부터 “간병인을 쓰는 방법도 있다” “3급 장애면 중한 장애인이 아니다” 등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A씨는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에 왜 휴직을 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직장인 10명 중 6명이 A씨처럼 가족돌봄휴가·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남녀고용평등법은 가족돌봄휴가(연 10일)와 가족돌봄휴직 제도(연 90일)를 보장하지만 현실은 딴판인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월 2~13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 같은 응답이 나왔다고 12일 밝혔다.
직장인들에게 가족돌봄휴가·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지 물어본 결과 ‘그렇지 않다’가 59%로 ‘그렇다’(41%)보다 18%포인트 높았다. 특히 비정규직(70.5%), 5인 미만 사업장(72.1%), 월 급여 150만원 미만(73.9%)의 경우 가족돌봄휴가·휴직 사용이 어렵다는 응답이 70%를 웃돌았다.
직장갑질119는 “정부와 정치권은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미 있는 가족 구성원조차 돌볼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가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남녀고용평등법의 가족돌봄휴가·휴직, 가족돌봄 등 근로시간단축 제도를 모든 일터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법 위반 사업주는 강력 처벌해 돌봄을 경시하는 관행·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김현근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가족돌봄휴직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고, 심지어 현행법상 사용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의무조차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제도 활용이 어려운 현실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사업주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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