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뮤지컬’에 스며드는 다국적 배우 캐스팅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2024. 5. 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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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뮤지컬 배우들을 위한 안정적인 환경 구축 필요”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영화와 무대예술은 어떻게 다를까.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복제와 저장이 가능하다. 무대는 배우의 예술이다. 영화와 달리 무대는 막이 내리면 소멸하는 상반된 특징을 갖고 있다. 다시 영화를 보자. 영화에서는 시나리오에 묘사된 배역의 인종이나 연령대에 최대한 부합하는 배우를 찾는 것이 관행이다. 그렇지 않을 때 종종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디즈니의 뮤지컬 실사영화 《인어공주》(2023)에서 주인공 '에리얼' 역에 흑인 배우가 캐스팅됐을 때 논란이 있었다. 이 배역을 놓고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할리우드의 오랜 영화산업 역사에서 절대 다수인 백인 대신 유색인종을 캐스팅하는 것이 옳은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오히려 역차별 이슈로 번졌다.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 사진 ⓒ오디컴퍼니(주) 제공

국내 공연에 외국계 배우 속속 등장

다인종 사회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작품에서도 백인이 늘 맡아왔던 배역에 한국 배우가 진출하면서 큰 뉴스거리가 됐다. 얼마 전 일이다. 브로드웨이 투어 프로덕션 《하데스타운》에서 남자주인공 오르페우스 역할로 한인 이민자 출신인 배우 이해찬을 캐스팅해 화제가 됐다.

해외 작품을 국내에서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으로 펼치는 수많은 뮤지컬에서 인종과 연령대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백인인 장발장 《레미제라블》과 흑인인 롤라 《킹키부츠》를 원작과 다른 피부색을 가진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공연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영화와 다른 부분이다. 무대에서는 인종과 연령대를 초월한 배우를 자유롭게 캐스팅하니, 그 배역의 해석 또한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문화가 존재한다.

K뮤지컬이 달라졌다. 한국어로 공연하는 무대에서 외국인 배우가 캐스팅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새로운 시도라고 할 법하다.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된 연극 《신파의 세기》에서 '사즉생, 필즉사'를 외치는 이순신 장군 역으로 튀르키예 배우 베튤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에포닌 역을 소화한 배우 루미나 ⓒ레미제라블코리아 제공

6세에 한국으로 이주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베튤은 '한국인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신파극도 유쾌하게 연기했다. 또 있다. 지난해 뮤지컬 《레미제라블》 세 번째 시즌에서 주요 배역 중 하나인 에포닌 역으로 출연한 루미나는 인도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일본 국적의 배우다. 유학 와서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이번 작품을 통해 뮤지컬 데뷔까지 했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일 테노레》에서는 미국 배우인 아드리아나 토메우, 브룩 프린스가 조연인 미국인 베커 여사 역할을 나눠 맡고 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내성적인 의대생 윤이선이 우연히 베커 여사가 가르치는 '오페라'를 알게 돼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가 되는 이야기다.

두 미국 배우는 뉴욕에서 오디션을 통해 한국 무대에 서게 된 경우다. 극 중에서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선교사 겸 음악교사 캐릭터를 소화하며 관객들을 당시의 시대상에 몰입하게 해준다. 베커 여사는 다른 한국인 캐릭터 사이에서 구별되는 외모를 통해 다름을 상징하면서도 예술 교육과 서구 문물의 메신저로서 두 나라를 연결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평이다.

베커 여사처럼 외국인 배역을 실제 그 나라 배우가 담당하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 5월말에 15주년 기념공연을 앞둔 뮤지컬 《영웅》이다. 교도관 치바 역에 일본 시키 극단 출신의 배우 노지마 나오토를 캐스팅했다. 치바 역에 일본 배우가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2012년 한국 뮤지컬 《빨래》에서 주인공인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솔롱고' 역할을 맡았던 노지마 나오토는 2022년 개봉한 영화 《영웅》에서도 치바 역할로 등장한 적이 있다. 치바는 실제로 안중근 의사의 신념과 인품에 감명받아 그를 평생 기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일 양국에서 추앙받는 안중근 의사의 성품을 표현하기에도 특별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 사진 ⓒ오디컴퍼니(주) 제공

한류가 바꾼 K뮤지컬 패러다임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2000년대에 투어와 라이선스 뮤지컬에 출연한 후 큰 인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한국 활동을 하게 된 미국 국적의 브래드 리틀(《오페라의 유령》)과 마이클 리(《미스 사이공》)를 초창기 성공 사례로 꼽는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한국에 거주하면서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마이클 리는 한국계 배우로서 《서편제》 같은 한국 전통 소재의 창작 뮤지컬에도 출연할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넥스트 투 노멀》에 출연 중이다.

초창기엔 당연히 한국인 멤버들로만 구성된다고 여겨졌던 K팝 그룹에 이제는 외국인 멤버가 포함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새로운 멤버를 꾸려 한국어로 노래하는 신인 그룹을 기획하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한류 붐으로 연극과 뮤지컬계에도 과거에 비해 외국인 관객이 늘어나고 있다. 제작사들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자막을 추가하는 공연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로, 무대와 객석이 서로 연결되고 있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귀화자, 이민자 2세 및 외국인 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을 경우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다양성의 시대를 맞아 외국 배우들의 한국 뮤지컬 무대 진출은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정부에서도 출입국 업무 간소화 및 이민관리청 신설 등의 이슈가 계속 거론되고 있다. 여기서 조언한다. 향후 장기 취업비자 발급 등 외국인 배우들이 국내로 유입되는 상황 속에서 정부의 안정적인 환경 구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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