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가 이렇게 말할때 나는 좀 두려워진다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4. 5. 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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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그가 풀려났을 때였다. 그는 운명의 가호를 입은 듯 보였다. 어쩌다 한두 번의 운은 행운의 영역이지만 거듭 반복되면 운명이 된다.

그는 일일이 헤아리기도 벅찬 사법리스크와 스캔들을 안고 정치 인생을 살아왔는데 마치 곡예 경주를 하듯 매번 장애물들을 뛰어넘거나 우회해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지금도 달리고 있다. 경기도지사가 되고 제1당의 대선후보가 되고 대선 패배 충격에 아랑곳없이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고 민주당의 당권을 거머쥐고 총선에서 압승했다.

돌이켜보면 그 운명의 분기점이 서울중앙지법의 구속영장 기각이었던 듯하다. 이때 구속됐더라면 그는 이카로스처럼 추락한 후 잊혔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매우 길어 보였던 절벽 사이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달려 뛰어넘고 말았다. 그가 운명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확인시키자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 운명의 여세를 몰아 강서구청장 재선에서 압승하고 야권 분열을 겪고도 총선에서 또 압승했다. 그는 앞으로 대장동과 선거법 위반 재판이라는 큰 낭떠러지와 맞닥뜨리게 된다. “절대 못 넘지” 하는 사람보다 “또 넘겠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치는, 심지어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쪽으로 실현되는 경향이 있다.

이재명 대표의 무한 질주가 신이 그의 ‘빽’인 덕분인지야 알 수가 없다. 보다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지난 총선 때 이 대표가 ‘비명’ 박용진 의원을 주저앉히기 위해 최소 3번의 무리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박 의원은 특히 심한 케이스이고 ‘친문’ 현역들을 자를 때 마다 칼을 쥔 이 대표의 손목에는 무리가 갔을 것이다. 이 대표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때는 국민의힘이 상승세를 타던 때로 무려 180석 어쩌고 할 때였다. 이낙연당이 쪼개져 나갔다. 그런 위기 국면에서 내부 소란을 무릅쓰고 마음에 안 드는 현역들을 뎅겅뎅겅 자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재명은 ‘선 내부정리, 후 반격’ 전략을 고수했고 그것이 통했다. 지나고 나면 다 필연같지만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 필연은 없는 법이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면서 동시에 의지의 기술이기도 하다. 이재명은 운이 좋은 정치인이지만 그 운에 이르기 위한 동력으로서의 의지가 탁월한 정치인이다.

타고난 의지와 수완에 더해 운까지 따르는 정치인이 성공하지 않기도 어렵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때보다 대권에 훨씬 가까워졌다. 그런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공화국의 미래상에 견줘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의 팬덤층은 그가 뭘 한들 이뻐 보일 것이고 그를 혐오하는 층은 그가 통치하는 공화국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몸서리가 쳐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사람도 변한다’는 믿음을 가진 부동층이다. 그런 부동층에게 안정감을 주는 전략과 두려움을 주는 전략중 어느 쪽을 택할지 관심을 갖게 된다.

질병 치료차 휴가를 낸 이 대표가 11일 새벽 페이스북에 ‘라인 압박 총무상...알고보니 이토 히로부미 후손’이라는 제목의 MBC 보도를 인용하며 “대한민국 정부는 어디에”라는 코멘트를 올렸다. 지금 일본정부는 국민메신저 라인에서 네이버를 떼내려 한다. 라인야후에 행정지도를 내린 마쓰모토 다케아키 일본 총무상이 이토 히로부미의 고손자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에는 “이토 히로부미:조선 영토 침탈, 이토 히로부미 손자:대한민국 사이버 영토 라인 침탈”이라 적은 뒤 “조선, 대한민국 정부:멍~”이라고 썼다.

글쎄, 이 대표의 이런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나는 두려움을 느끼는 쪽이다. 이 대표는 ‘만화적으로’ 단순한 역사관을 간혹 표출한다. 2021년 7월 대선출마 선언을 한 뒤 고향 안동에 내려간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수립 단계와 달라서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는가.” 이런 역사관의 당부를 지금 따질 여유는 없다. 다만 공화국의 리더가 되겠다는 사람의 세계관으로는 너무 단순해서 무서울 정도다.

나는 정치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 균형적 교양이라고 생각하고 그 교양의 가장 큰 구성요소는 역사에 대한 안목이라고 생각한다. 결단의 순간에 선 리더가 참조할 것은 역사밖에 없다. 처칠은 위대한 결단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역사를 공부하면 된다”고 했다. 이 대표가 역사의 복잡성을 이해하고도 단순하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적절하다. 정치는 표현되는 것이고 표현되는 것으로 평가될 뿐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그 후손인 총무상을 연결해 전개하는 평행이론은 무척 재미있지만 상식적이지 않다. 내 친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 상관 없다. 그러나 농담도 아니고 그런 말을 진지하게 하는 리더는 위험해 보인다.

이 대표는 전 국민에 25만원씩 줘서 소비를 진작시키자는 주장을 꽤 오랜 기간 진지하게 해 오고 있다. 지금 그 주장의 당부를 따질 여유는 없다. 다만 이 대표는 케인즈를 좋아하는 듯해 보이고 ‘일반이론’에 대한 얼마간의 이해도 있는 듯하다. 케인즈는 위대한 경제학자였지만 그의 이론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니고 사실은 아주 제한적인 상황과 표본에서만 유효했다. 늘 옳은 경제이론이라는 건 거의 없다. 수요가 줄면 가격이 내려야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다. 하물며 25만원의 인위적 경기부양이 반드시 통하리라는 그 신념이 나는 좀 두렵다. 그게 꼭 틀려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류 가능성을 배제해 버리는 정신세계가 두려운 것이다.

이 대표는 탁월한 의지로 성공한 정치인이다. 잘하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가 역사와 경제에서 드러내는 사고는 맹신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맹신은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깨지고 보완되어야 할 결여일 뿐이다. 그 결여를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내면서 ‘이게 내 운명. 운명은 내 편’이라고 오만한 표정을 짓는 이 대표가 나는 두렵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동층들은 이 대표가 좀 덜 위험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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