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이 인사 잘 안 받아줘요"…공무원의 황당 갑질 신고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곽용희 2024. 5. 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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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온 팀원이 '결재패싱' 하자 관계 틀어져
팀장이 일주일 차갑게 대하자 "괴롭힘" 민원
따돌림·적극적 괴롭힘 없었지만 징계 받자 '소송'
1심 "태도 부적절하지만 징계 사유는 아냐"
2심, 1심 뒤집고 "견책 사유 맞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 괴롭힘'법, 즉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만 5년이 다 돼가고 있다. 직장 내 만연하던 악성 괴롭힘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직장 내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인간관계 갈등까지 법률과 제도적으로 풀어나가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직장이 '혼돈'에 빠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리자급 직원들의 고충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예전만큼 친하게 지내지 않고 소원하게 지낸 게 '징계사유'가 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와 눈길을 끈다. 다른 사람들을 선동해 따돌리거나 적극적으로 괴롭힌 경우가 아닌, 소극적인 외면도 괴롭힘 대상이라는 취지라 논란이 예상된다. 

 ○"팀장이 예전만큼 안 친절해"...갈등 일주일만에 신고

1988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돼 2022년부터 한 지역 소방본부에서 팀장(소방령)을 맡고 있던 4월 초 팀원이 된 B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그런데 B가 팀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팀장인 자신을 거치지 않고 윗선 과장의 의견을 반영한 기안문을 작성한 '결재 패싱'을 당하면서 A는 기분이 상했다. 며칠 지나지 않은 11일경 B를 옥상으로 불러 질책하고 "앞으로 결재 패싱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B는 이때부터 A 팀장이 자기 인사를 잘 받지 않았다고 느꼈다.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다른 팀원에 대한 태도와 달리 친하게 지내지도 않고, 자신과 시선을 맞추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있는 자리의 뒷자리 쪽 통로는 잘 이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일주일 정도 지속됐다고 느끼자 곧바로 일주일 뒤인 4월 19일에 인터넷 신문고로 민원을 제기했다.

B의 신고 사유는 '투명인간 취급'이었다. 이 주장은 A에 대한 징계 사유서에도 반영돼 '투명인간 취급(인사 안 받기, 말 걸지 않기, 다른 팀원과 친하게 굴기, 시선 및 이동동선 피하기)'라고 기재됐다.

B는 조사 과정에서 "인사를 살갑게 받아주던 팀장이 질책 이후 차갑게 인사를 받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인사를 받지 않거나 회피했다"라며 "때론 근처에 사람들이 많고 남들이 들을 정도로 인사를 하면 마지못해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라고 주장했다.

충북도지사는 결국 몇개월 후 '성실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A를 감봉 1월의 징계에 처했다. 소청을 거치면서 징계가 '견책' 처분으로 완화됐지만 억울하고 황당한 A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결국 충북도지사를 상대로 '견책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태도만으로 징계 사유 안 돼" 1심 판단, 2심서 뒤집혀

1심을 맡은 청주지방법원은 A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투명인간 취급 행위는 딱히 B에 어떠한 요구나 지시를 한 것이 아니다"라며 "’다른 팀원과 친하게 굴기‘, ’시선 피하기’는 단지 B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에 불과한데 이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고, 팀장이 다른 팀원과 잘 지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투명인간 취급 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두고 태도에 다소 부적절한 점이 있었다는 비난의 정도를 넘어 징계사유로서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으로까지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판단하고 A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같은 사안을 바라본 2심 대전고법의 판단은 달랐다.

결정적으로 A에 행동에 대한 동료들의 증언이 나뉘었던 점이 증거가 됐다. 다른 팀의 팀장은 조사 과정에서 "사무실서 팀원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모습은 좋지 않아 보였다"라고 증언했다. 다른 팀원 C도 "A팀장은 업무처리가 강한 스타일이라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었다" "의견과 배치되는 직원을 무시하고 대화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진술을 한 점이 결정적이었다.

비록 A의 다른 팀원들이 ‘A의 행위가 갑질이 아니라고 본다’ ‘특이 사항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재판부는 "다른 직원들이 A의 B에 대한 구체적 태도를 목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지난 1일 1심을 뒤집고 도지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사소한 갈등도 법적으로 해결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이란 직장에서의 관계 지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며 "근무환경 악화 등의 개념에 대한 판단 기준 자체가 정립돼 있지 않아 ‘괴롭힘’의 판단을 ‘주관적 해석’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낭비도 급증세다. 자체 해결이 어려운 사건 특성 탓에 사건이 발생하면 로펌 등 외부 전문가를 불러 처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좁은 직장에서 서로 신고하는 바람에 사업장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사내 불신 문화가 형성되는 등 무형적 손실도 만만치 않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1만28건으로 집계됐다. 법 시행 첫해인 2019년 7~12월 2130건에 이어 2020년엔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엔 8961건의 신고가 접수되는 등 괴롭힘 신고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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