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현의 재난백서] 기술을 들고 화마와 싸우는 인류

강세현 2024. 5. 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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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수백 년 동안 불 끄는 장비 연구
물항아리 '드브'부터 '드론'까지 발전해
미래엔 로봇 활용 더 늘어날 전망

지난주 일요일은 어린이날이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좋아하는 장난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답은 ‘소방차’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소방차 장난감을 좋아했습니다. 강렬한 색에 각진 모양, 우렁찬 소리까지 내는 소방차 장난감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죠.

지금은 장난감으로 만들어질 만큼 익숙한 소방차는 사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불과 싸운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수십만 건의 화재와 수백만 명의 죽음을 겪으며 연구하고 또 연구한 끝에 만들어낸 작품인 겁니다.

화마에 시달린 조선

1426년인 세종 8년, 화마가 수도 한양을 덮쳤습니다.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불은 집 하나를 집어삼키더니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람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불에 잘 타는 나무와 짚으로 만들어진 건물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옥 2천여 채가 잿더미로 변했고, 3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끝내 찾지 못한 실종자도 많았습니다.
물항아리 '드므' (자료 : 소방청 '소방유물을 찾아서)

불로 큰 피해를 입은 조상님들도 가만히 있진 않았습니다. 궁궐과 관청에는 커다란 항아리인 ‘드므’를 설치했습니다. 드므는 물독의 순우리말로 이 항아리에 항상 물을 채워놓고 불이 나면 안에 있는 물을 사용해 불을 껐습니다. 조선시대판 소화기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드므는 무거워서 쉽게 움직일 수 없었고, 물을 넣을 수 있는 양도 한정적이었습니다. 또 바가지로 물을 퍼서 뿌려야 해서 물을 멀리 보낼 수도 없었죠.

펌프를 이용하다

간이수총 (자료 : 소방청 '소방유물을 찾아서)
조선시대가 끝날 무렵, 불을 끄는 사람들 손에는 작은 크기의 펌프가 들려 있었습니다. 간이수총이라고 불리는 이 펌프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물이 든 통에 펌프를 넣고 손잡이를 당기면 물이 들어가고 안으로 반대로 누르면 물이 나갑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물총의 원리와 똑같습니다. 지금은 워터밤 같은 축제에서 가지고 노는 물총이 과거에는 중요한 진화 장비였던 겁니다. 그래도 바가지보다는 적은 힘으로 물을 더 멀리 보낼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장비였습니다.
발동기즉통 (자료 : 소방청 '소방유물을 찾아서)

엔진의 힘을 이용해 펌프를 움직여 불을 끄는 장비도 등장했습니다. 발동기즉통(發動機喞筒)이라 불리는 도구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이 된 이후에도 불을 끌 때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무거운 펌프에 바퀴를 달아 화재 현장까지 쉽게 옮길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 장비가 등장하며 사람의 힘으로 펌프를 움직여 불을 끌 때보다 훨씬 쉽게 불을 끌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장비들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주변에 물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점입니다. 물이 있어야 펌프를 이용해 계속 물을 뿌릴 텐데, 주변에 냇가나 호수가 없으면 물을 꾸준히 공급받기 어려웠습니다.

자동차의 등장

1980년대 소방펌프초 (자료 : 소방청 '소방유물을 찾아서)
자동차의 보급은 소방장비의 역사에 중요한 분기점이 됐습니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을 화재 현장까지 옮길 수 있게 된 겁니다. 튼튼한 트럭에 커다란 물탱크를 설치하고 물을 멀리 보낼 수 있도록 강력한 펌프까지 장착했습니다. 위 사진은 1980년에 쓰이던 소형 펌프차입니다. 이런 형태의 소방차가 등장하며 주변에 물이 없어도 제법 큰불도 끌 수 있게 됐습니다.
무인파괴방수탑차 (자료 : 울산 온산소방서)

당연히 지금은 소방차의 기능이 더 좋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펌프차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을 채울 수 있는 물탱크차나 기름이나 화학물질에 붙은 불을 끌 때 출동하는 화학소방차가 등장했습니다. 기다란 팔처럼 생긴 관이 건물 외벽을 뚫고 들어가 내부에 물을 뿌리는 무인파괴방수탑차도 화재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새로운 게임체인저

자동차가 등장했던 것처럼 최근에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드론입니다. 헬기와 달리 언제, 어디서나 쉽게 띄울 수 있는 드론은 보급과 함께 효과가 입증됐습니다. 하늘을 날며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발화 지점을 촬영해 전송하고 구조자의 위치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소방청은 2015년 드론 7대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2023년 12월 기준 554대의 드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조종자격자도 6천 명에 달해 지난해 1,430번이나 화재 현장에 투입돼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전통시장 화재 감시 로봇 (MBN)

드론의 다음 차례는 로봇이 될 전망입니다. 지금도 로봇을 이용한 시범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는 밤마다 로봇이 돌아다닙니다. 시장은 밤이 되면 사람이 빠져나가 불이 나도 제때 신고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이 커질 대로 커진 뒤에야 소방대원이 출동하는 일이 빈번했죠. 이 로봇은 사람을 대신해서 화재를 감시합니다. 밤새 시장을 순찰하다 불을 발견하면 실시간으로 관리자에게 화재 사실을 영상으로 알리고, 소화약제를 이용해 불을 끕니다.

산불 진화 웨어러블 로봇 (자료 : 산림청)

산림청도 산불을 끌 때 사용하는 웨어러블 로봇을 공개했습니다. 이 로봇을 입으면 허리와 허벅지의 근력이 강화돼 산을 오르는 게 쉬워집니다. 진화대원은 무거운 호스를 들고 비교적 쉽게 산을 누빌 수 있습니다. 장비에 부착된 GPS로 대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진화 전술을 짤 때 이용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화재 현장에서 로봇의 역할을 점점 더 커질 겁니다. 사람을 대신해 위험한 현장에 직접 들어가 불을 끄거나 구조 작업을 펼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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