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가짜 그림’ 늪에 빠진 국내 미술시장

조명계 미술시장 분석 전문가(전 소더비 아시아 부사장) 2024. 5. 12. 09: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위작 사태에 따른 피해 줄이는 정책 나와야”

(시사저널=조명계 미술시장 분석 전문가(전 소더비 아시아 부사장))

미술시장을 말할 때 서양미술의 '놀이터'라는 인식이 많다. 서양미술 시장의 핵심 주체는 '앵글로색슨계'(5세기 중엽 북해를 건너 잉글랜드 동남 방면으로 이주한 민족)와 유대인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들에 의해 뉴욕 아방가르드가 탄생했다.

이후 또 다른 아방가르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단단하고, 견고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됐다. 이 그룹에 속하지 못한 작가들은 활동에 큰 제약이 따른다. 이곳에서 외지인이 활동하는 것은 필요에 의해 일부 허용되는 것뿐이다. 즉 한국 작가들이 해외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놀이터'에 반드시 진입해야만 한다는 얘기가 된다.

2009~12년 사이 발간된 이우환 화백의 작품집들 ⓒ조명계 제공

이우환 화백 위작 출현 배경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다. 메이저 미술관의 초대를 받는 경우다. 물론 메이저 미술관으로부터 초대받기란 매우 어렵다. 한국 작가가 메이저 미술관의 전시 초대를 받았다면, 이는 '대한민국 캡틴' 손흥민 선수의 성공사례와 비견될 정도다. 그런 점에서 이우환 화백은 엄청난 일을 해냈다. 페이스 갤러리와 삼성의 협력으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초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우환 화백(1936년 6월24일~)은 대한민국의 조각가이자 화가다. 이 화백은 동양사상으로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극복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으로부터》(1974), 《동풍》(1974), 《조응》(1988), 《점에서》(1975), 《상응》(1998), 《관계항(Relatum》(2010) 등이 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 화백이 위작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이 화백 작품은 2005~06년쯤 '서울옥션'에서 거래된 이후 가격이 상승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5년만 해도 다수 작품이 출품되지 않아 '라인10호'짜리만 나와도 관심을 끄는 정도였다. 이후 2007~08년 들어서면서 작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직후 이 화백의 작품은 가격이 몇 배 이상 폭등하기 시작했다. 2011년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이후부턴 세계적인 화가 반열에 오르면서 가격은 더욱 상승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수요가 넘치니 이상한 작품들이 출현했다. 바로 위작들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 터졌다. 2015년 미술시장이 가장 뜨거울 때 터진 80여 점의 위작 논란 사건은 이 화백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위작을 만든 사람과 판매책이 붙잡혔지만, 정작 이 화백 스스로 감정을 거부하면서 또 다른 파장을 낳았다. 이로 인해 사건은 결국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작품의 확인권은 작가에게 있음에도 이 화백은 작품 감정의 확인권리를 화랑 주인들에게 위임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당시 인사동에는 위작 150여 점이 은밀하게 돌아다닌다는 소문까지 널리 퍼진 상태였다.

"무엇이 문제이고, 해결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미술계 지인들에게 물었다. 다들 하나같이 '유구무언'이다. "그냥 내버려둡시다"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이들의 의견을 정리해 보면, 대형 화랑 몇 곳에 휘둘리는 한국의 미술계가 근본 문제였다.

요즈음 미술시장에서는 작가확인서를 못 믿는다. 감정서에 대해서도 "글쎄요"다. 이미 수많은 위작이 국내외 경매회사와 대형 화랑들에 의해 유통됐다. 작품의 출처와 유래가 마련된 것이다. 화랑의 보증서는 결코 작품을 보증해 주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위작들은 모두 진짜 작품으로 바뀔 것이다.

미술품 거래는 경매 혹은 화랑 등 '세컨더리' 마켓에서 유통되는 것이 맞다. 의혹의 작품 대다수는 "이 화백으로부터 직접 구입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이 의혹이 이 화백 위작 논란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는 부분이다.

2009~12년 발간된 이 화백의 작품집들을 비교해 보면, 동일한 작품이 다수 등장한다. 이는 이 화백이 제작한 작품이 많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우환 작품 위작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의 서명 ⓒ조명계 제공

이 화백 작품을 조폭과 거래했다는 보도도

1970~95년에 이 화백은 대략 200여 점 정도의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통된 작품 중 1977~78년 작품과 1982년도 작품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다시 말해 2012년부터 수백 점이 넘는 작품이 유통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위작이 상당수 제작돼 유통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타깝게도 실상은 전혀 알 수 없다.

위작을 잘 그리고, 잘 팔면 수억원이 그냥 들어오는데 범죄자들이 가만 놔둘 리 없다. 이우환 사태의 핵심 문제는 돈만 보고 구입하는 구매자에게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존재한다는 몇몇 위작 공장, 의혹의 작품들을 대놓고 팔고 있는 화랑들, 그리고 미술품 딜러들. 이들이 지금도 대놓고 비상식적인 거래를 계속하고 있음에도 업계나 수사 당국은 수수방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에는 이 화백 작품을 조폭과 거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수사가 제대로 될지 매우 궁금하다. 위작이 아니라면 천만다행이고, 위작이라면 수사를 통해 누구로부터 구입했는지 파악해야 한다. 위작이라면 반드시 누가 만들었고, 누가 팔았는지 꼬리가 잡히게 돼 있다. 이걸 밝히지 못하면 해당 사건은 또다시 흐지부지 넘어가게 될 것이다.

필자는 1977, 1978, 1982, 1984, 2008, 2012, 2022년도 작품들에 대해 주의를 요하라고 말하고 싶다. 피해자는 오직 작품 구매자뿐이니 말이다. 사실상 2011년 이후 작품을 사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