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차에 발목잡힌 연금개혁···22대 국회서 논의 전망도 ‘흐림’[뒷북경제]

세종=주재현 기자 2024. 5. 1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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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소득대체율 이견 2%p까지 줄였는데
돌연 '협상 결렬'···尹 “22대 국회서 논의”
여야, 책임론 주고받으며 막판 힘겨루기
[서울경제]

21대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의 개혁안 협상이 좌초했습니다. 여야는 2022년 7월 연금개혁특위를 출범한 이후 22개월간 복수의 공청회, 자문위원회 회의, 재정추계, 시민참여형 숙의공론화 등 사실상 국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형식의 논의 과정을 다 거쳤지만 2%포인트의 이견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22대 국회에서 논의하자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21대 국회 내 협상 타결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차기 국회 논의를 통해 임기내 연금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22대 국회의 정치 스케줄을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추가 개혁을 통해 국민연금 재정을 장기지속가능하게 하려면 최소한 21대 국회에서 보험료율을 올리는 연금개혁만큼은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시민 500명이 참여한 숙의 공론화를 거친 뒤 협상을 이어온 끝에 여야 양쪽의 안은 상당히 근접한 상황입니다. 소득보장성을 중시하는 더불어민주당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5%’를 제시했습니다. 시민대표단 과반의 선택을 받았던 1안(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의 경우 재정 전망이 되레 악화된다는 점을 고려해 소득대체율 상승폭을 일부 양보한 것입니다. 재정안정론을 강조하는 국민의힘의 안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입니다. 현재 보험료율은 9%, 소득대체율은 40%(2028년 기준)입니다. 양측 모두 보험료율 인상에는 공감하되 소득대체율 인상폭을 두고 신경전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당초 특위는 어떻게든 21대 국회 임기 내에 합의안을 만들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양측의 의견이 상당히 좁혀진데다 지금이 바로 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돌연 연금특위는 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협상 결렬을 선언합니다. 당초 8일부터 5박7일 일정으로 영국·스웨덴·네덜란드 등 연금 선진국을 돌아보며 협상을 마무리할 예정이었는데 출국 전날 협상 테이블이 엎어진 셈입니다. 물론 외유성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출장도 취소됐습니다.

주호영(왼쪽 두번째)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장과 유경준(왼쪽 세번째) 국민의힘, 김성주(왼쪽 첫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종료 및 출장 취소 등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위기에 빠진 연금 개혁 논의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대통령실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9일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취임 2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임기 내 국회와 소통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반드시 (연금개혁을) 하겠다”라며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급하게 하기보다 22대 국회로 넘겨 좀 더 충실히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습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연금 특위 야당 간사인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소속 특위 야당 위원들은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막판 이견 조율만 하면 되는데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개혁 중지를 선언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특위 여당 간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미 양측의 절충안인 ‘소득대체율 44%안’을 민주당에 제안했다는 점을 공개하며 “무책임한 언론 플레이를 중단하고 새 제안에 책임 있는 답변을 달라”고 반박했습니다. 양측이 서로 협상 중단의 책임을 떠넘기며 막판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 계획대로 22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를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연금개혁에는 지금 논의되는 보험료율·소득대체율 등 ‘모수개혁’ 외에도 크레딧 제도, 직역연금과의 관계, 기초연금과의 관계, 재분배성 강화, 기금운용 제도 개선 등 다양한 구조개혁 과제가 포함돼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임기내 연금개혁을 마무리하려면 21대 국회에서 가장 기본 틀인 모수개혁부터 끝내야 하는 구조입니다.

22대 국회 임기 중 대형 정치 이벤트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치권이 선거에 몰두하면 연금개혁과 같이 유권자 대다수의 이익이 걸려있거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과제들은 제대로 논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은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치릅니다. 2027년 3월이 대통령 선거여서 지선이 대선의 전초전이 될 예정입니다. 사실상 2026년 초부터 정치권은 기나긴 선거전에 돌입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정부와 국회가 연금 개혁을 논의할 시점은 22대 국회가 출범하는 6월부터 내년 말까지 약 18개월에 그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녹록치 않습니다. 민주당은 이미 상임위원장 독식을 예고하고 있어 22대 국회는 원구성에만 수개월을 허비할 예정입니다. 9월부터는 정기국회가 출범해 연금 특위를 새로 만들더라도 본격적인 논의는 내년에야 가능합니다. 게다가 21대 국회에서 연금 개혁 논의에 참여해온 특위 위원 13명 중 7명이 22대 국회에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연금 개혁 특위 여야 간사 모두 22대 국회에서 뱃지를 달지 못했습니다. 21대 국회에서 22개월 가까이 진행해온 과정을 22대 국회에서 그대로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자체로 예산과 시간 낭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성주(왼쪽 두번째) 의원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21대 국회에서의 연금개혁 완수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 의원이 공개한 연금 특위의 재정추계에 따르면 민주당 안이든 국민의힘 안이든 혹은 그 사이를 절충한 ‘소득대체율 44%’ 안이든 2093년 기준 누적적자는 2766조~4318조 원 개선됩니다. 통상 소득대체율 2% 인상에 필요한 보험료율 인상폭이 1%포인트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협상폭 내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셈입니다.

연금 개혁 논의에 참여해온 한 전문가는 “언젠간 우리나라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평균 수준인 18.2%정도까지는 보험료율이 오르게 될 수밖에 없다”며 “한번에 두 배를 올리기는 힘드니 이번에 보험료율 인상을 한 발짝 내딛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한 차례도 올리지 못한 보험료율을 바꾸지 않고서는 그 어떤 구조개혁도 논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40%의 소득대체율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데 필요한 보험료율이 19.8%입니다. 지금은 그 절반도 안되는 비용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출산·군복무·실업 크레딧, 의무가입기간 연장 등 가입자들의 납부 기간을 늘리는 어떤 형태의 구조개혁도 모두 재정 악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가입자들의 평균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서라도 지나치게 낮은 보험료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여야 양측이 극한 대립을 하고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발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협상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은 모습입니다. 김 의원은 윤 대통령이 연금 개혁을 막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국회는 끝까지 연금개혁을 완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 의원 역시 “22대 국회에서는 구조개혁을 포함한 논의를 해달라”면서도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 절충안이나 ‘보험료율 14%, 소득대체율 45%’안 등을 공개 제안하고 있습니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까지 이제 16일 남았습니다. 협상 결렬을 선언하기 전 연금 특위 고위 관계자는 “거의 다 왔다. 의사봉 두드리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이후 단 한 번도 손 대지 못했던 연금 개혁을 17년만에 해낼 수 있을지 2200만 가입자와 650만 수급자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세종=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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