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피어난 예술혼…발길이 머무는 마을

김보경 기자 2024. 5.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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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마을] (7)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작가 35명 입주해 순수창작활동 펼쳐
마을 곳곳서 작품 감상…볼거리 다채
올해 방문객 체험 프로그램 마련 호응
지역 초등학생에 교육기회 제공 ‘상생’
기자가 제주 제주시에 있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의 입구에서 숲과 조각품을 감상하는 방문객들에게 소감을 묻고 있다.

“꽃을 주는 것은 자연이고, 그 꽃을 엮어 화환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다.”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 괴테의 말이다. 제주 제주시 한경면 중산간에 있는 저지리는 ‘저지오름’ ‘곶자왈공원’ 같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손꼽힌다. 아름다운 저지리를 더욱 빛나게 하는 건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예술이다. 그 중심엔 예술가의 삶을 제주로 옮겨 온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있다.

저지리 북쪽 끝에 있는 32만5100㎡(10만평) 규모의 마을엔 올해 기준 예술인 35명이 터를 잡고 순수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을에 있는 예술인은 서예·회화·한국화·사진·조각 등 그 분야도 다양하다. 마을엔 문화예술 작가들의 자택과 작업실 외에도 제주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야외 조각 전시장, 실내 영상 스튜디오 등 여러 예술공간이 마을을 채우고 있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조성되기 전 이곳은 돌과 가시덤불만 가득한 야생숲 곶자왈이었다. 지금은 폐지된 행정구역인 북제주군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침체된 경제를 일으키고 관광 소외지역을 살리고자 2001년부터 문화예술인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박서보 화백, 김창열 화백, 현병찬 서예가 등 국내 여러 예술분야의 거장이 마을에 입주하면서 문화예술인마을로 자리 잡았고, 2010년엔 도내 유일한 문화지구로 지정됐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기 파주 헤이리예술마을 등 다른 문화지구와 달리 자연생태와 잘 어우러진 모습이 특징이다. 안세원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주민협의회 위원장은 이곳은 예술인들이 자연 속에서 지내며 작품활동에 매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설명한다.

“눈만 뜨면 바로 앞에 자연경관이 멋지게 펼쳐져 순수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곳이죠. 제 아내 장정순 작가도 이곳에 와서 곶자왈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그림의 분위기도 많이 밝아졌어요.”

장정순 작가가 그의 작업실 ‘장정순 갤러리’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안 위원장과 서양화 화가인 장 작가는 2012년에 도시생활을 접고 마을에 입주했다. 장 작가는 대전에서 주로 꽃과 자연을 그리던 유화 작가였다. 그는 이곳에 내려와 곶자왈의 다양한 표정을 그림으로 담기 시작했다.

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은 곳곳에서 예술작품을 접할 수 있다. 입구에선 마을이 소장한 예술품을 보존·관리하는 문화예술 공공 수장고가 반긴다. 마을길 양옆으론 예술가의 갤러리와 작업실이 자리 잡고 있다. 문이 열려 있는 작업실에 들어가면 예술인이 직접 작품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실제 창작활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올해는 ‘구석구석 문화배달’ 사업으로 방문객이 직접 예술활동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마을 전체에 예쁘게 가꿔진 수풀과 나무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대전에서 온 관광객 정기현(61)·이정화씨(59) 부부는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거닐며 숲 냄새를 맡으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며 미소 지었다.

마을 방문객은 해마다 늘고 있다. 마을의 중심인 제주현대미술관은 2021년 최고 관람객수 13만 명을 달성하고 이후에도 매년 10만명 이상이 방문한다. 이는 코로나19 발생 이전 7만명이었던 한해 평균 관람객수와 비교하면 1.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변종필 제주현대미술관 관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된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젊은 문화소비층이 계속 유입되고 문화 향유에 관심이 높아져 저지문화예술인마을뿐만 아니라 저지리를 찾는 방문객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서예가 한곬 현병찬 선생이 마을 인근 학생들에게 서예도구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제주=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제주현대미술관

이 마을은 인근 마을과 상생을 이루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선 2022년부터 매년 마을 인근인 한림읍과 한경면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마을 입주작가가 직접 나서 미술수업을 진행한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서예·염색·석공예 등을 가르쳐주며 지역학생들에게 문화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마을이 생긴 지 20주년을 맞아 열흘간 ‘아트&저지’ 축제를 개최했다. 기념전시는 물론, 마을 밴드공연과 한경면 주민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시장도 열렸다. 특히 축제에서 새롭게 선보인 마을 로고가 눈에 띈다. 마을에 거주하는 박누아군(14)이 만든 로고는 알록달록한 큐브 100여개를 배치한 의복 모양으로, 집 앞마당에 빨래를 널며 이웃과 인사를 나누듯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안 위원장은 “앞으로도 예술·생태·공동체를 주제로 예술인들이 주변 마을과 어우러져 사는 지혜를 끊임없이 고민해 나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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