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노동 만연한 게임 개발 문화 바꾸겠다"

김주환 2024. 5. 1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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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선언한 넷마블그룹노조 이해미 지회장 인터뷰
이해미 넷마블그룹노조 지회장 [촬영 김주환]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넷마블을 '한 번쯤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 7일 전격 출범을 선언한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넷마블지회의 이해미 지회장은 지난 9일 서울 구로구 넷마블 사옥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넷마블지회는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이른바 '3N' 게임사 중에서 처음으로 노조가 생긴 넥슨, 지난해 출범한 엔씨소프트에 이어 마지막으로 생긴 노조다.

넷마블지회의 별칭은 '넷마블그룹노조'다. 이 지회장은 "엔씨소프트 노조 '우주정복' 처럼 개성 있는 이름을 쓰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개발 조직이 여러 자회사로 뿔뿔이 흩어진 넷마블의 특수한 상황상 계열사를 아우르는 통합 노조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지회장에 따르면 노조 출범을 회사 안팎에 알린 지 이틀 만에 상당한 인원이 노조 가입 의사를 밝혔다. 대부분이 계열사 소속이지만, 본사 소속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회장은 "그만큼 구성원들이 노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넷마블 노조의 출범은 아직도 노조 활동이 일반적이지 않은 IT 업계에서 또다시 이목을 끌었다.

구체적인 계기는 지난 3월 말 연봉협상 때였다. 연봉 동결을 통보받은 직원들이 평소보다 상당히 많았고, 사내 게시판에 관련 문의가 폭주했다고 한다.

넷마블엔투에서 '머지 쿵야 아일랜드'·'모두의마블2: 메타월드' 개발에 참여한 경력 7년차 원화가인 이 지회장도 의아함을 느꼈다.

이 지회장은 "연봉 동결 결정 근거나 사원 급여 관련 통계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개인 대 회사로 협상을 하다 보니 그런 요구 자체를 못 하고 속앓이만 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넥슨이나 엔씨소프트는 노조가 사측과 정기 교섭을 통해 임금 인상률을 논의하고, 평균 인상률 등 정보도 공개하는 것을 보고 '내가 한번 만들어볼까?'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 지회장도 노조가 있는 회사에 다닌 적 없어 막막했지만, 넥슨 노조의 배수찬 지회장과 연락이 닿아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측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지회장은 노조 활동을 통해 계열사 전반에 만연한 개발자들의 '그림자 노동'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지회장은 "연차나 직급에 비해 과도한 업무를 주고 제때 업무를 못 끝내면 압박을 가해 야근을 사실상 강요받는다"며 "밤 8시가 되면 사무실이 소등되지만, 다들 그냥 '8시구나' 하고 불을 다시 켜고 일한다. 법정 근로시간이 다 차면 출근 태그를 찍지 않고 일하거나 집에 일감을 가져가서 해오는 일도 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급한 일이 몰리면 야근은 해야겠지만, 적어도 보상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방적인 구조조정 방식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노조 입장이다.

노조는 지난 7일 창립 선언문에서 "넷마블은 지금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 중"이라며 "2년 사이에 감소한 직원 수가 수백명이 넘고, 자회사 폐업과 권고사직 속에서 위로금 1개월 따위로 퇴사를 종용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회장은 "권고사직을 거부하면 대기발령이 되는데, 계열사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사실상 대기발령 팀으로 쓰이는 각종 '지원실'이 그룹 곳곳에 있다"며 "지원실에 배정받은 개발자들은 경력이 끊길까 봐 알아서 떠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불가피하게 사업을 접거나 사람을 내보내더라도, 직원과 소통하고 합리적인 절충안을 찾아가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야심차게 출범한 넷마블 노조지만 아직 전임자도, 사무실도 없는 형편이다. 이 지회장을 비롯한 집행부원 4명이 각자 소속 계열사 부서에서 일하면서 가입 희망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단체교섭 요구안을 만들고 있다.

이 지회장은 "근무제도 개선, 고용 안정성 등을 비롯해 복지 확대, 인센티브 제도 개선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며 "권영식·김병규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이 사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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