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남친 '교제 폭력' 하루 40건…살인 전조인데 '너무 착한' 양형[의대생 사건 그후]③

서상혁 기자 2024. 5. 1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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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량 정할 양형 기준엔 교제 폭력 관련 내용 없어
21대 국회 한 달도 안 남았는데 특별법은 계류 중

[편집자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교제폭력 피의자는 1만3939명에 달한다.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는 교제폭력 사건 특성상 통계에 잡히지 않은 가·피해자는 더 많을 것이다. 강남역 의대생 살인 사건이 연일 주목 받고 있지만, 교제폭력 대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뉴스1>은 '의대생 사건' 이후 개선해야 할 교제폭력 실태를 집중 보도한다.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A 씨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A 씨는 과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의대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4.5.8/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교제 폭력이 하루에 40여건꼴로 터지고 있지만, 정작 피의자에게 선고할 형량을 정하는 양형기준에는 교제 폭력 범죄와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일반 폭력과 동일하게 간주돼, 충분한 형량이 선고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 수는 지난 2020년 8951명에서 지난해 1만3939명으로 55.7% 증가했다. 하루 평균 24.5명에서 38.1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해부터 정식 기소 범위를 확대하고 구속 기준을 마련하는 등 강화된 처벌 기준을 시행 중이다. 교제 폭력이란 연인이라는 친밀한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폭력 행위로 폭행부터 상해·협박·강요·살인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수사기관 강화된 처벌기준 적용해도…형량 정할 양형 기준엔 교제 폭력 '전무'

다만 교제 폭력 범죄와 관련된 양형 기준은 없는 상황이다. 양형기준이란 피고인의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할 '가이드라인'을 말한다. 교제 폭력 범죄자가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사실상 일반 폭력 피의자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교제 폭력을 다루는 별도의 법이 없는 만큼, 개별 범죄로 포섭할 수밖에 없다"며 "친밀한 관계에서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올 수 있겠지만, 현재 양형기준엔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의자와 어쩔 수 없이 합의하거나, 피해자의 책임이 인정돼 형이 감경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살인 범죄엔 교제 폭력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있긴 하다.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애인의 변심 또는 관계 청신 요구에 앙심을 품고 한 살인'을 보통 동기 살인으로 보고 있다. 기본형이 징역 10~16년이며 무기징역도 선고할 수 있다. 다만 이 범죄에서도 교제 폭력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해 형을 더 무겁게 선고할 만한 가중 양형 인자는 없는 상황이다.

◇"교제 폭력 피해자, 심리적으로 취약"…특성 반영한 양형기준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교제 폭력의 재발 방지 차원에서 기존 양형 기준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나마 교제 폭력 범죄에 적용할 여지가 있는 양형인자 중엔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 정도가 거론된다. 양형인자의 정의가 '신체 또는 정신 장애, 연령 등으로 인하여 범행에 취약하였고, 피고인이 이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 되어있어 현재로선 교제 폭력에 일괄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서 변호사는 "멀쩡한 성인이지만, 장기간 폭력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심리 등의 측면에서 취약해졌을 수도 있다"며 "양형인자 중에서 교제 폭력을 포섭할 여지가 가장 큰 만큼, 특수성을 반영할 문구를 넣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통상 교제 폭력이 한 사람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는 특성을 갖는 만큼, 이를 반영한 양형인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장 연구위원은 "교제 폭력의 특성이 '친밀한' 관계이긴 하지만, 범위가 굉장히 넓어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며 "지속적으로 동일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게 교제 폭력의 특성 중 하나인 만큼, 이런 경우를 가중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법 발의 앞서 교제 폭력 정의 확실히 해야

교제 폭력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국회엔 관련 특별법이 계류돼 있지만, 21대 국회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서 변호사는 "특별법을 발의에 앞서 '교제 폭력'의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는 일도 필요하다"며 "친밀한 관계는 무엇인지, 폭력 이외에 다른 범죄도 포섭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 연구위원은 "교제 폭력 피해자 상당수가 상대방의 방해 등으로 수사기관에 신고조차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교제 폭력 예방 차원에서 긴급 신고용 손목시계를 더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보복 시 가중처벌하는 등 신고를 활성화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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