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 "전주 매력, 느낌 아니까"…30대 '로컬' 드로잉 작가

나보배 2024. 5. 1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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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작가 "나고 자란 곳서 좋아하는 일 평생 하고파"
엽서 그림으로 시작해 외주 주문 받는 작가로 성장
'그 작가가 있어 전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 들도록 "열심히 그리겠다"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박성민 작가 [촬영 나보배]

(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흰 캔버스 위에 세밀하게 그어진 까만 선.

그 선들이 모여 전주 한옥마을과 전동성당, 그리고 오랜 세월을 머금은 철물점이나 약국, 세탁소가 된다.

'로컬' 일러스트레이터 박성민 작가(39)는 '전주'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그린다.

전주에서 태어나 줄곧 대학까지 졸업한 '전주 사람'이다.

그 때문인지 그의 그림에는 공간을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애정이 어린 시선들이 묻어 나온다.

박 작가는 "전주한옥마을은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던 아주 옛날부터 참 좋아하고 자주 갔던 공간이었다"며 "전주의 느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특별한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대학 때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하지만 졸업하고도 무엇을 그려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던 그는 대부분의 청년이 그러했듯 서울로 올라가 아시아나항공에 취업했다.

돈이 필요했지만, 비행기에 화물을 싣는 일을 평생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주에서 멀어지니 전주라는 도시가 객관적으로 눈에 들어왔다"며 "한옥마을과 확장하는 신시가지가 가까워 '전주는 과거·현재·미래가 구성지게 잘 섞여 있는 매력적인 도시'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박성민 작가가 판매 중인 달력 [촬영 나보배]

밥벌이의 지겨움과 서울에서 삶을 뒤로하고 그렇게 다시 전주로 내려왔다.

이렇게 매력적인 고향을 '내가 가장 잘하는 그림과 접목해 보자'는 결심과 함께였다.

박 작가는 "서울에 있을 때 인사동을 자주 갔는데, 인사동에서 팔던 기념품과 전주 기념품이 비슷했다"며 "전주를 기념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경기전, 전동성당, 향교, 오목대 등 한옥마을의 명소들을 그린 엽서를 판매했다"고 출발선을 회고했다.

그게 2018년쯤이었다. 전주남부시장 야시장에 매대를 마련해 팔던 엽서는 꽤 인기가 많았고 이후 전주남부시장 내 청년몰에 '감성민 작화실'이라는 작은 작업실을 냈다.

박 작가는 "1천∼2천원인 저렴한 가격으로 전주를 기념할 수 있어서인지 엽서가 생각보다 잘 팔렸다"며 "로컬 작가라고 소개하면 외국인들이 특히 더 관심 있게 봐주었다"고 말했다.

그가 그린 엽서가 '전라북도 관광기념품 100선'에 선정돼 도지사 인증서를 받고, 연하장에 쓰일 전주역 앞 첫마중길 삽화 의뢰 제작을 받는 등 조금씩 입소문이 났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전주를 찾는 관광객이 뚝 끊어지며 정체기를 맞았다.

움츠러들 법했지만, 그는 오히려 '위기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드로잉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박 작가는 "나중에 또 찾아올지도 모를 좋지 않은 시기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중들이 조금 더 좋아할 만한 그림이 무엇이 있을까, 어떤 걸 어떻게 그려야 할까 등 오히려 깊고 넓게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드로잉하는 모습 [박성민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즈음 방영된 SBS 드라마 '그 해 우리는'도 박 작가에게는 힘이 됐다.

많은 장면을 전주에서 촬영한 이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최웅(최우식 분)의 직업은 우연히도 박 작가와 비슷한 건축물 일러스트레이터였다.

박 작가는 "드라마 속 최웅 그림의 원작자는 외국 작가였지만, 배경이 전주였던 덕분에 저를 최웅처럼 바라봐주는 분들이 계셨다"며 "이게 과연 평생 할 수 있는 작업물과 스타일일까를 고민했는데, 이런 작업을 관심 있게 지켜봐주는 많은 분을 보면서 이 길을 가야겠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자 박 작가는 지난해 작업실을 대규모 상가가 밀집한 효자동 서부신시가지로 옮겼다.

'작가의 취향'이라는 새로운 간판을 단 뒤 작품 전시는 물론 책과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그림 역시 카페 로고가 적힌 휴지 등에 낙서하듯 그린 커피나 도넛, 카메라 등까지 드로잉의 범위도 넓어졌다.

박 작가는 "명색이 로컬작가라면 관광객만큼이나 지역민들도 많이 찾고, 그들로부터 인정받는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작업실 이전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옥마을은 관광객은 많지만, 지역민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었다. 좋은 건물주를 만나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지난해부터 신시가지에 카페 겸 작업실을 열었다"고 덧붙였다.

박성민 작가 작품 박 작가가 그림을 그린 뒤 이 문구점은 사라져서 이제 추억의 장소가 됐다. [촬영 나보배]

이곳에서 박 작가는 지난해 '낙th전(낙서전)'이라는 작은 개인전도 열었다.

익숙한 전주의 명소를 담은 그림을 보고 좋아해 준 분들도 있었고, 전주의 한 골목길이지만 마치 자신이 어렸을 때 뛰놀던 장소인 것처럼 향수를 느끼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아예 1층엔 카페를, 2층엔 전시실을 갖추는 등 그는 더 큰 공간으로 확장을 꿈꾸고 있다.

박 작가는 "'오리지널'에는 언제나 힘이 있다"며 "'빵의 성지'를 찾아 사람들이 대전을 찾아가듯 '전주에도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서 전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그때까지 열심히 그리겠다"고 웃었다.

wa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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