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내 계부에게 당했어"…두 여중생은 옥상에 올랐다

김학진 기자 2024. 5. 1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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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3번의 영장청구 기각되자 스스로 생 마감[사건속 오늘]
의붓딸 '아빠에게 고마웠다' 유서…전문가 "길들여진 것" 분석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먼저 보내고 남는 부모의 슬픔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견될 수 없다.

가정의달 5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등지고 힘든 선택을 하게 된 중학생 소녀들이 있다.

3년 전 오늘 청주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두 명의 여중생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달리했다.

5월 12일. 평소처럼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약속한 A(당시 13세) 양은 친구 B(당시 13세) 양과 함께 자신의 집이 아닌 동네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로 향했다. 잠시 뒤 A 양은 친구 B 양과 함께 아파트 화단에 스스로 몸을 던지며 세상을 등졌다.

아파트 앞을 지나던 행인이 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후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인근 병원으로 이송 중 둘은 사망했다. 청주의 다른 중학교에 다니던 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 사이였다.

충북 청주 오창 여중생 성범죄 피해자 유가족이 10일 청주지법에서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News1 김용빈 기자

◇가장 친한 친구의 계부로부터 성폭행당한 중학생 소녀

비극의 시작은 사건 발생 4개월여 전인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1월 16일 B 양이 혼자 주말을 보내야 한다고 하자 A 양은 B 양의 집에서 함께 있어 주기로 한다. 얼마 후 저녁 11시쯤 예정에 없던 B 양의 계부가 집에 들어와 둘에게 술을 권했고, A 양과 B 양은 호기심에 이를 마시게 된다.

이후 술에 취해 B 양의 방에서 잠이 든 A 양은 난생처음 접하는 불쾌감에 눈을 떴다. 그 찰나 친구 B 양의 계부인 C 씨가 황급히 방에서 나가는 모습을 목격한 A 양은 새벽녘 기억을 더듬으며 또 다른 친구인 D 양에게 황급히 연락을 했다.

17일 새벽 5시 30분쯤 A 양이 친구 D 양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빨리 이거 봐줘. 나 진짜 아파' '아저씨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어 소름 돋아' '너무 무서워' '나 진짜 무서웠어, 꿈 아니야 생생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데 밖에 아저씨가 있다. 빨리 와달라'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들의 대화에는 피해 당시 상황과 감정 등은 물론 방안의 모습이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짧은 동영상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건 당시 계부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졌나

사건 이후에도 A 양은 부모님에게 당시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주 후 뒤늦게서야 A 양의 부모는 D 양의 부모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됐고, 2월 1일 의붓딸의 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B 양의 계부를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3월 10일 C 씨에게 발부한 체포 영장은 기각됐고, 3월 18일 청구한 구속영장은 보완 수사를 이유로 반려됐다.

그 기간 A 양은 극도의 불안 증세를 호소하며 신경정신과 검사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산부인과 검사에선 처녀막파열상과 방광염 상해 진단이 나왔다.

이후 5월 10일 청구한 구속영장은 다시 한번 접수 취소가 됐고, 결국 세 번의 영장 청구가 반려된 이틀 뒤 5월 12일 A 양과 친구 B 양은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경찰은 "수사할 때 증거 부족 여부를 확보할 시간이 필요했고, B 양이 피해 사실을 번복하는 등 일관된 진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C 씨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난 성기능 장애, 당시 방 안에 있는 토사물만 치웠다" 변명

5월 28일 B 양의 의붓아버지 C 씨는 구속됐지만, 경찰 진술조사 과정에서 "가슴과 성기를 만진 사실이 없다.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7월 23일 이어진 공판에서도 계부 C 씨는 A 양측의 주장에 대해 "당시 바닥에 자고 있던 A 양의 토사물을 치워준 것뿐이다. 그걸 치워주려고 휴지로 닦고 있었던 것이고 그 모습을 추행으로 오해한 것 같다고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또 C 씨는 "성기능 보조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발기가 되지 않아서 성관계가 불가능하다. 거짓이면 날 죽여달라"며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 사망 전 의붓딸의 계속된 진술 번복 왜?

사망 전 친구 A 양 또한 자기처럼 계부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게 된 B 양은 당시 정신건강병원에서 의사에게 상담받으며 "아빠에게 성폭행당했다"고 말했으나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성폭행을 당한 적이 없다. 꿈인 것 같다"고 부인했다. 또 해바라기센터 조사 때도 B 양은 성폭행 사실을 털어놨으나 이내 이를 부정했다.

특히 A 양과 함께 투신하기 전 탄원서에 가까운 유서를 남기며 "아빠는 성폭행한 적이 없다. 이 편지가 아빠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나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내용을 남겼다.

쉽게 이해 가지 않는 B 양의 행동에 심리상태를 분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계부에게 심리적으로 상당히 의존했던 B 양이 친모로부터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의붓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보였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주변인들은 "B 양의 기억에는 자신을 성폭행하고 폭행한 의붓아버지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사주고 안아줬던 아버지가 같이 들어가 있는 거다. 의붓아버지를 많이 좋아했던 B 양은 이미 그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 같다"며 친구와 의붓아버지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충북여성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창 여중생 성폭력 가해자 1심 선고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1.12.10/뉴스1 ⓒ News1 김용빈 기자

◇결정적 유서 발견 '조두순처럼 내게 세 번이나' 친구에게 상담도

결국 조사 과정에서 계부 C 씨가 의붓딸 B 양에게도 여러 차례 성적 학대를 한 정황이 밝혀졌다. C 씨는 2013년 자신의 집에서 B 양(당시 6세)을 강제로 추행했으며 2020년에는 잠자던 B 양(당시 13세)의 신체를 만지고, 팔과 다리를 밧줄로 침대에 묶고 저항할 수 없도록 한 뒤 유사 성행위를 했다. 또 네 차례에 걸쳐서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신 정서적 학대 혐의도 드러났다.

또한 A 양 사망 100일여 뒤 피해 여중생의 집에서 편지지 2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나 너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 1월에 있었던 안 좋은 일 꼭 좋게 해결됐으면 좋겠어. 나쁜 사람은 벌 받아야 하지 않냐. 그날만 생각하면 손이 막 엄청나게 떨리고 심장이 두근댄다"고 적힌 C 씨의 범행을 밝힐 수 있는 핵심 증거가 발견됐다.

추후 "조두순처럼 세 번이나(나를 범했다). 시간 간격 두고. 그냥 떼버렸어야 했다. ○○○ 아빠(계부 C 씨)가 꿈에 나와 인사하는 데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는 A 양과 친구들이 나눈 SNS 메시지가 발견되면서 인과성이 명백히 입증되기도 했다.

ⓒ News1 DB

◇계부 징역 25년…친딸 보호 안 한 친모도 징역형

11월 26일에 청주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C 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12월 10일 청주지법은 C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B 양에 대해서는 무죄 결론이 나왔다.

이후 추가 증거가 제출됐고, B 양에 대한 C 씨의 혐의가 인정돼 2022년 6월 9일 대전고법 청주재판부는 C 씨에게 1심보다 가중된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추가 제출된 증거 등을 종합할 때 의붓딸에 대한 강간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며 "1심 판결에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또한 가해자의 부인이자 숨진 친딸을 보호하지 않는 등 양육을 소홀히 한 친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khj8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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