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전단지가 교재?…"매일 성장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푸르메재단 2024. 5. 1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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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발달장애]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의 교육‧문화 프로그램 현장

발달장애 청년들이 자립을 꿈꿀 수 있는 행복한 일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푸르메재단이 지은 '푸르메소셜팜.'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 농업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직무로 각자에게 원하는 업무를 찾아주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로 만들었습니다. 오랜 연구와 준비 끝에 2020년 10월 착공해 이듬해인 2021년 4월 유리온실을 완공해 토마토 재배를 시작했고, 2022년 9월에는 베이커리 카페 무이숲과 교육문화센터까지 전체 시설을 완공해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현재 푸르메소셜팜과 무이숲에서 총 55명의 발달장애 청년이 정직원으로 일합니다.

하지만 푸르메소셜팜의 역할은 '일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안정적 일터를 기반으로 홀로서기를 꿈꾸는 직원들이 역량을 키우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오전/오후 반으로 나뉘어 하루 4시간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남는 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근무를 끝낸 푸르메소셜팜 오전반 직원들이 퇴근 버스를 지나쳐 교육문화센터로 향합니다. 매주 월요일에 진행되는 요리 수업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푸르메소셜팜은 한국조폐공사의 지원을 받아 장애 직원의 성장을 돕기 위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최은용 기부자가 푸르메소셜팜 장애 직원들에게 미역국과 냄비밥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푸르메재단

1T와 1t의 다른 점은? 직원 자립의 첫걸음, 요리 수업

최은용 기부자는 지난해 10월부터 푸르메소셜팜 장애 직원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평생 약사로 일하다가 은퇴 후 1년 6개월 전부터 장애 직원들에게 한글, 한자, 수학 등을 가르치며 다방면의 교육에 힘써 왔지요. 그녀가 이들에게 요리까지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애 직원의 자립을 위해 더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항상 고민해요. 1년간 지도하면서 장애 직원 대부분이 간단한 밀키트를 이용한 요리조차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 친구들도 다 홀로서기를 꿈꾸고 있을 텐데, 자립 후 스스로 밥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간단한 요리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수업 내용은 미역국과 냄비밥 입니다.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최은용 기부자는 '1T'과 '1t'의 차이점, 요리에 사용될 '액젓'과 '국간장'에 대해 가르칩니다. 장애 직원들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진지하게 들으며 필기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묻기도 합니다.

▲ 최은용 기부자와 푸르메소셜팜 직원들. ⓒ푸르메재단

항상 명랑한 유림 씨가 대표로 나서서 쌀을 계량해 씻어 봅니다. 밥을 안친 뒤에는 미역국 끓이기에 들어갔지요. 우선 물을 넣은 냄비에 마른미역을 넣어 불립니다. 과연 물속에서 미역 양이 얼마나 불어날지 함께 살펴보기로 했지요. 한 직원은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습니다. 나중에 혼자서 미역국을 끓일 때 미역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참고하기 위해서입니다.

밥과 미역국이 완성되길 기다리는 시간, 최은용 기부자가 앞서 가르친 것을 반복해서 설명하기도 하고, 모두가 함께 소소한 대화를 이어갑니다. 쉴 틈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교실은 적막할 새가 없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미역국의 간이 잘 맞춰졌는지 보기 위해 다들 숟가락을 하나씩 드는데, 개구쟁이 종익 씨의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국자를 들어 올려 미역국을 맛보려고 하니 유림 씨가 쏜살같이 나서서 제지합니다. 교실은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완성된 요리는 조금씩 나누어 함께 먹습니다. 먹고 난 뒤에는 차례로 본인이 사용한 식기를 설거지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요리도구와 교실을 똑 부러지게 정리하는 직원들입니다.

ⓒ푸르메재단

마트 전단지가 교재로? 특별한 시간, 기초 생활 교육

요리 수업이 끝나자, 최은용 기부자와 직원들은 곧장 다른 교실로 자리를 옮깁니다. 기초 생활 교육이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이 시간은 정해진 수업 내용과 교재가 없습니다. 장애 직원들이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알고 싶어 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내용들이 그날의 수업 내용이자 교재가 됩니다. 오늘은 마트 전단지가 수업교재 중 하나입니다. 전단지에 적힌 '1+1'과 '세일'에 대한 개념, '%' 기호가 궁금했던 장애 직원이 들고 온 것입니다. 커리큘럼 없이 자유롭게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를 최은용 기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완벽한 커리큘럼을 짜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시킬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장애 직원들이 금방 흥미를 잃고 말아요. 일상생활에서 자주 보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스스로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도록 가르치고 있어요."

장애 직원이 스스로 알고자 하는 마음이 들도록 흥미를 끌어내 주고,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돕는 것이 최은용 기부자의 교육 방침입니다.

▲ 최은용 기부자가 전단지에 적힌 '1+1'과 '세일'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푸르메재단

매일 성장하는 직원의 모습에서 희망을 봅니다

수업이 진행되며 직원들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최은용 기부자는 뿌듯한 미소로 대답합니다.

"장애 직원들이 능동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예요. 얼마 전에 종익 씨 어머니께 전화가 왔어요. 집에서 김장하는데 종익 씨가 먼저 다가와서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대요. 매사에 늘 수동적이기만 했던 종익 씨인데 말이죠. 어머니의 감격한 목소리에 저까지 울컥해지던 순간이었어요. 또 다양한 지식을 배우면서 장애 직원들의 시야가 점점 넓어지는 게 느껴져요. 느리지만 착실히 성장하는 모습을 매일 보고 있습니다."

교육‧문화 프로그램은 푸르메소셜팜 장애 직원들이 다양한 지식과 문화를 배우고 경험하며 배경지식을 쌓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기초생활교육에서 시작해 요리, 스포츠(탁구․요가), 발달댄스, 미술, 보석십자수 등으로 점차 커리큘럼을 늘렸습니다. 이는 앞으로 자립하여 살아갈 힘을 키우는 좋은 밑거름이 되겠지요. 수업은 모두 장애 직원이 업무를 마친 여가에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장애 직원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진정한 자립'을 이루어 내는 것, 푸르메소셜팜의 목표이자 푸르메소셜팜이 지닌 '가치'입니다.

*위 글은 비영리공익재단이자 장애인 지원 전문단체인 '푸르메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가기 : http://purme.org)

[푸르메재단 (hope@purm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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