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영상으로 만나는 '미술로 보는 세상' ⑭ 애도와 예술

이세영 2024. 5. 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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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미술로 보는 세상'은 미술 작품을 통해 당시 화가가 살아갔던 시대상과 현재 세상 곳곳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재물입니다. 연합뉴스 K컬처팀은 기존 연재물을 영상으로 확장한 크로스 미디어형 콘텐츠인 <영상으로 만나는 '미술로 보는 세상'>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미술 이미지는 영화, 광고 등을 넘어서 메타버스와 가상·증강현실까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K컬처팀은 미술 이미지를 통해 생각의 탄생과 사유의 확장을 표방하는 지식 콘텐츠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노석준(전 고려대 외래교수) RPA 건축연구소 소장과 석수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영상예술학 박사)의 도움으로 제작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나는 애도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를 빗대어 애도의 의미를 중시했다. 결국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데리다가 추구한 가치였다. 그는 살아가며 여러 방식의 관계를 맺지만, 타자를 기억하고 타인도 나를 기억하는 가장 첨예한 수단이 애도라고 여긴 바 있다. 그의 철학에는 애도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많은 예술가가 그의 가치에 동조했다.

서양 회화 작품 중 많은 것 중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리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를 두고 '미술로 보는 세상' 칼럼 저자 연합뉴스 도광환 기자는 "많은 화가가 성경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 특히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작품에 담은 것은 결국, 인간 생활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애도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애도를 제대로 못 해서 원수가 되고 전쟁이 일어나는 등 애도를 어떻게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했다는 게 도 기자의 설명이다.

1982년 미국 워싱턴DC에 세워진 베트남 전쟁 기념비는 애도의 가치와 애도가 삶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 중 하나다. 도 기자는 당시 공모에 선정된 중국계 예일대 재학생 마야 린의 사례를 소개하며, 그의 작품은 전쟁 기념비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쟁 기념비는 약 150m 길이의 알파벳 V자 모양의 검은색 벽면이 이어지는 모양으로, 당선작 발표 때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영웅으로 대접받는 군인이나 전투 장면을 동적으로 표현한 기존의 기념비와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최 측에선 반대 여론을 감안해 수정안을 요구했지만, 마야 린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기념비는 원안대로 제작됐고, 공개된 베트남 전쟁 기념비는 결과적으로 그간의 논란을 일거에 종식했다. 이 작품은 관람자가 죽은 이들의 이름을 바라보는 순간, 기념비에 자기 모습도 비치도록 제작됐다. 죽은 이와 산 자가 공존함과 동시에 추모와 치유가 동시에 이뤄지는 공간이라고 도 기자는 말했다. 마야 린은 공모 당시 21살에 불과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은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공원을 예로 들었다.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이 공간에는 회색빛 콘크리트 비석 2천710개가 줄지어 서 있다. 0.2m에서 4.7m까지 다양한 높이의 '비석의 숲' 안에 있으면 순간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잊고 공포심을 느끼게 된다는 게 노 소장의 설명이다. 아이젠만은 '경험의 장치'로서의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노 소장은 미국 뉴욕의 9.11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도 훌륭한 애도 공간의 예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건축가 마이클 애라드가 설계한 이 작품은 분당 약 1만1400톤의 물이 중앙에 계속 쏟아지는 구조로, 마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는 당시의 모습이 연상된다는 게 노 소장의 설명이다. 희생자 전원의 이름이 공간 곳곳에 적혀 있다.

석수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9.11 테러 당시 뉴욕에 거주했던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 또 9.11 메모리얼 파크는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파크에는 사건 당시 잔해들도 전시돼 있어 애도의 의미를 더한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생활 속에서 애도하고 항상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건축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출연진들은 입을 모았다.

넓게 보면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획·제작총괄 : 정규득, 책임 프로듀서 : 이동칠, 진행 : 유세진·도광환·노석준·석수선, 촬영 : 김민규·유준하, 스튜디오 연출 : 김혜리, 웹 기획 : 이은진, 연출 : 김현주>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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