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가속 성능 좋다지만…서킷 경주에선 내연기관 ‘승’

한겨레 2024. 5. 1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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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고성능 전기차
크로아티아 네베라, ‘제로백’ 최고
차체 무겁고 온도 올라 출력 제한
내연기관 대체 위해 성능 높여야
독일에 있는 서킷 ’뉘르부르크링’을 달리고 있는, 크로아티아 전기차 회사 리막의 네베라. 리막 제공

최근 전기차와 관련된 소식에서 자동차 회사들은 크게 두 가지를 내세운다. 먼저 빠른 충전 속도와 늘어난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 이 둘은 좋아진 사용성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또 다른 한 축은 고성능이다. 높은 최고속도와 더 빠른 가속력을 내세우는 전기차들이 늘고 있다. 심지어 고성능 전용 모델을 출시하고 가속성능은 물론 레이스 트랙에서 달리는 즐거움을 주는 차까지 나왔다. 이런 고성능 전기차 바람은 왜 불기 시작한 걸까.

기본적으로 인간은 경쟁을 통한 승리를 추구한다. 우리 주변의 많은 스포츠들이 이렇게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남들보다 빨리 달리는 것은 원시시대 생존을 위해 필요한 본능으로 시작해 말을 길들이고 바퀴와 마차가 발명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특히 자동차가 나온 이후 다양한 모터스포츠가 발전했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는 1894년 프랑스 파리-루앙 구간을 달린 것이 시작이다. 자동차 역사 초기 시속 100㎞를 처음 넘긴 것은 벨기에의 전기차였으나 엔진 성능이 발전하며 자동차 경주와 고성능차 경쟁은 차츰 내연기관의 몫으로 바뀌었다.

강한 감속과 고속 코너링 필요

모터스포츠는 국제적으로 정해진 룰에 따라 지정된 장소에서 자격을 갖춘 레이싱 드라이버가 비슷한 등급과 개조 방법이 정해진 경주차를 몰아 경기를 치르고 승부를 가른다. 좋은 성적을 내려면 드라이버의 실력은 물론 자동차의 모든 부분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고성능차들은 최고속도나,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의 가속성능을 나타내는 ‘제로백’ 등의 숫자는 물론 일정한 트랙을 한 바퀴 돌 때 걸리는 시간인 랩타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전기차는 가속성능에서 독보적이다. 전세계 모든 차의 다양한 기록을 정리한 웹사이트 패스티스트랩스(fastestlaps.com)에 따르면, 현재 제로백이 가장 빠른 차는 크로아티아의 전기차 회사인 리막의 네베라(1.8초)다. 네 바퀴마다 모터를 달아 최고출력 1914마력, 최고속도 412㎞/h, 주행가능거리는 490㎞다. 차 가격이 약 200만달러(약 27억원)에 이르는 네베라는 현재 일반도로용 전기차 중 가장 빠른 500㎾(킬로와트)급 충전이 가능해 120㎾h 배터리를 80%까지 채우는 데 19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회사에 지분을 투자한 포르셰나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쓰는 400㎾급 초급속 충전 기술은 리막에서 온 것이다.

국내에서 1억2554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테슬라 모델 에스(S) 플래드는 3개의 전기모터로 1020마력의 출력에 제로백은 2.1초다. 가속성능에서 내연기관차가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분명한데, 이것만으로 고성능차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가속성은 차의 성능을 보여주는 일부일 뿐 전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많은 차가 도전하는 서킷(경주용 원형 도로)으로 독일 중서부 뉘르부르크에 있는 뉘르부르크링이 있다. 한 바퀴 길이가 20㎞가 넘고, 300m에 이르는 상하 고저 차이, 73개의 코너 등 빽빽한 숲 사이에 나 있는 장대한 코스 때문에 ‘녹색 지옥’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순수 내연기관만을 단 차 중에 양산차로는 포르셰911 지티(GT)2 알에스 엠알(RS MR)이 2021년에 세운 6분43초30의 기록이 가장 빠르다. 리막 네베라는 7분5초298의 기록으로 양산 전기차 중에 최고인데, 이런 하이퍼카가 아닌 전기차 중에서는 포르셰 타이칸 터보 지티(GT)의 7분7초55가 가장 빠르다. 이 차는 1108마력의 출력으로 제로백은 2.2초, 최고시속은 305㎞다.

이처럼 최신 기술이 잔뜩 들어간 전기차가 아직 내연기관차의 기록을 넘지 못하는 것은 전기차 특유의 무게와 동력원 특성 때문이다. 레이스 트랙은 빠른 가속뿐만 아니라 강하게 감속하고 코너에서도 가능한 높은 속도를 유지한 채 돌아야 전체적으로 빠른 기록이 나온다. 전기차인 포르셰 타이칸은 공차중량 2200㎏으로 내연기관차인 포르셰 911의 1500㎏보다 700㎏이나 더 무겁다. 전기차가 높은 출력으로 가속이 빠른 것을 제외하면 차를 멈추거나 코너를 돌 때 높은 무게로 인한 관성의 영향을 더 받아 느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긴 시간의 트랙 주행은 타이어에 큰 부담을 주는데 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그 부담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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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빠른 속도 원하는 인간의 욕망

전기차에 내연기관차의 감성을 장착한 아이오닉 5 엔(N). 현대자동차 제공

전기차가 트랙을 빠르게 달리려면 무거운 차체를 멈출 수 있는 제동장치와 배터리의 적절한 열관리 시스템이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 실제로 테슬라 모델 에스(S) 플래드는 국내 인제 스피디움의 3.9㎞ 트랙을 두 바퀴 이상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터 출력과 무게를 순정 상태의 브레이크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어 금방 과열되고 배터리 온도가 올라 출력 제한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주행가능거리도 문제다. 고성능 전용 모델인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엔(N)의 경우 최대 650마력의 출력과 제로백 3.4초로 매우 빠르다. 또 강력한 브레이크와 가혹한 트랙 주행을 위해 배터리의 열관리 시스템도 잘 갖춰 놓았다. 그럼에도 내연기관차처럼 똑같이 트랙을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발표로는 20㎞ 이상의 뉘르부르크링을 두 바퀴 도는 주행에서 배터리를 50% 이상 사용했는데, 내연기관차라면 40㎞를 달리며 연료탱크의 절반을 썼다는 말이 된다. 실제 내연기관차라면 아무리 고출력이라도 일반적인 80ℓ의 연료탱크를 채웠을 때 10바퀴 이상을 넉넉히 돌 수 있다.

마지막 차이점은 소리와 진동 등 성능 이외의 부분이다. 스포츠카의 멋진 엔진음과 배기음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해 즐거움을 준다. 특히 특정 회전수에서 나는 소리는 계기판을 보지 않아도 적정한 엔진 회전수를 알 수 있는 방법인데 전기차는 이런 소리가 없어 감흥이 떨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엔은 ‘엔 이-시프트’(N e-shift)와 ‘엔 액티브 사운드 플러스’라는 독특한 기능을 갖췄다. 전기모터를 제어해 가상의 8단 변속기를 만들고 그에 맞는 엔진음과 변속 충격을 구현해 내연기관차의 감성을 살린 것이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필연적이라면 더 빠른 달리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고성능 전기차의 역할은 커진다. 특히 내연기관차로 트랙을 달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경험을 더더욱 잊지 못한다. 그동안 모터스포츠를 통해 내연기관차의 기술이 발전한 것처럼, 전기차도 레이스 트랙을 오랫동안 달리기 위해 그만큼 빠른 충전과 효율적인 배터리 관리를 포함한 종합적인 성능을 높여야 한다. 고성능 전기차가 발전해야 할 이유다.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생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여러 수입차 브랜드에서 상품기획, 교육, 영업을 했다. 모든 종류의 자동차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다양한 글을 쓰고, 자동차 관련 교육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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