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영애’ ‘정글’ 행방 묘연한 장수프로…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남지은 기자 2024. 5. 1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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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돼먹은 영애씨’는 12년간 사랑받았지만, 최근 5년간 다음 시즌 소식이 없다. 사진은 12년간 이영애로 살았던 김현숙. 티브이엔 제공

“‘막돼먹은 영애씨’는 이제 안 하는 건가요?”

우리나라 최초의 시즌제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tvN)가 2019년 시즌 17을 끝으로 5년간 새 시즌 소식이 없자 애청자들이 출연 배우의 소셜미디어(SNS)에 찾아가 물었다. 배우는 이렇게 답글을 달았다. “저희도 몰라요.”

2007년 시작해 티브이엔을 지금의 드라마 왕국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지금 이 드라마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 누구도 “지금까지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거나, “앞으로 계속된다”고 말해주지 않아서다. 시즌 17만 2년 만에 찾아왔을 뿐, 매년 한두 시즌은 꼬박꼬박 방영했던 장수 드라마가 깜깜무소식인데도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공백이 길어질 즈음 티브이엔 관계자는 한겨레에 말했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끝난 게 아니다. 다만, 그 누구도 아직 다음 시즌 기획안을 만들고 있지 않아서 제작을 안 하고 있는 것뿐이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시즌 9까지 한 피디가 메인 연출을 맡는 등 같은 팀이 오랫동안 제작했다. 메인 피디가 떠나면 서브 피디가 다음 시즌 메인을 맡는 식으로 세계관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시즌을 이어가면서 방송 환경은 변했고, 누군가는 외주 제작사로 떠나고 누군가는 다른 드라마를 만들면서 이 드라마에만 ‘올인’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한 프리랜서 피디는 “‘막돼먹은 영애씨’는 시즌제 특성상 다음 시즌을 이어받아 잘 만든다고 해도 온전히 ‘나의 드라마’가 될 수 없다. 피디들 입장에서는 요즘처럼 기회가 많은 시대에 새로운 드라마를 성공시켜 명성을 떨치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글의 법칙’은 10년간 방송했지만, 2021년 방송을 끝으로 행방이 묘연하다. 사진은 정글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던 김병만. 에스비에스 제공

시즌 17이 끝난 뒤 5년 만에 이 드라마를 궁금해하는 이유는 최근 비슷하게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서다. 2011년 시작해 10년간 에스비에스(SBS) 대표 예능으로 사랑받았던 ‘정글의 법칙’이다. 1기 ‘나미비아’ 편, 2기 ‘파푸아’ 편 식으로 방송했던 이 작품 역시 2021년 ‘펜트아일랜드: 욕망의 섬’ 편 이후로 기약이 없다. 10년간 족장으로 몸을 던졌던 김병만은 애정을 쏟은 프로그램이기에 늘 다음 시즌 소식을 기다려왔다.

그런데 최근 ‘정글의 법칙’이 아닌 ‘정글밥’ 소식이 들려왔다. ‘정글의 법칙’을 함께 만든 제작진이 ‘정글의 법칙’에 초대 손님으로 나와 활약한 출연자들을 데리고 오지에서 식문화를 체험하는 새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에스비에스 쪽은 정글에서 요리는 하지만 “‘정글의 법칙’과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병만은 ‘정글의 법칙’ 다음 시즌이 기약이 없자 최근 유튜브 콘텐츠 ‘정글 크래프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 이후 일자리를 잃은 스태프들을 챙기고 정글과 공존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사비로 제작비를 댔다. 이들에게 ‘정글밥’ 소식은 어떻게 다가올까.

10년 이상 사랑받은 장수 프로그램들이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 쓰임이 다했을 수도 있다. 오래 했다고 영원하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강산도 변할 10년이란 세월을 함께한 출연자들에게 프로그램과 이별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을까. 이 프로그램을 사랑해준 애청자들을 위해서라도 매듭은 지어줘야 하지 않을까. 남녀 사이에도 가장 나쁜 것이 ‘잠수 이별’이다.

‘막돼먹은 영애씨’와 청춘을 보낸 한 배우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되는지조차 모른다는 게 무엇보다 슬프다”고 했다. 또 다른 출연자는 “‘막돼먹은 영애씨’ 다음 시즌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할 말이 없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김병만은 “‘정글의 법칙’을 계속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열정적으로 임했던 프로그램인 만큼 계속되는 건지, 끝난 건지 매듭이라도 지어줬으면” 하고 바랐다. 이 프로그램과 울고 웃었던 애청자들도, ‘최애’ 프로그램의 생사 여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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