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출연진 욕하는 당신은 “사랑할 용기도 없는 사람!”[책과 세상]

전혼잎 2024. 5. 1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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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한국 사회의 단면 포착한 9편의 단편들
“자체로 곤란한 삶, 서로에게 친절해야”
ENA와 SBS Plus에서 방영하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SOLO)'의 한 장면. SBS PLUS, ENA 제공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에서 '마음껏 욕해도 되는 대상'이 된 이들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출연자들이다. 외모, 나이, 언행은 물론이고 출연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방송에서 사용하는 가명마저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되어 전 국민이 가학적으로 ‘물고 뜯고 씹고 맛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송에 나와 사랑을 찾으려 하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 김기태 작가의 단편소설 ‘롤링 선더 러브’는 출연자들을 낮잡아 보는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사랑할 용기도 없는 놈들!”

김 작가의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이처럼 현실의 조각을 촘촘하게 꿰어낸 9편의 단편으로 채워져 있다. 수록작 ‘롤링 선더 러브’는 현실의 ‘나는 솔로’를 떠올리게 하는 ‘솔로농장’이라는 예능에 출연한 여성 ‘맹희’가 주인공이다. 맹희는 바보짓이라는 시선을 알면서도 지원서를 내고, 녹화장에서 최선을 다하나 “각오했지만 어떤 말들은 너무 부당한” 반응에 맞닥뜨린다. 소설을 ‘사회고발물’로 읽으려는 찰나 이야기는 살짝 방향을 튼다. 출연진을 조롱하는 불량배를 향한 맹희의 일갈과 이를 응원하는 사람들, 또 방송 전후의 삶의 태도를 비추면서 비판의 날을 타인에 대한 ‘이해’로 누그러트린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김기태 지음·문학동네 발행·336쪽·1만6,800원

김 작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문제를 꼬집기보다는 다소 천진하게 어떤 출연자들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한국일보에 설명했다. “방송은 늘 거짓이지만, 그 안에는 진짜라고 믿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모든 논란과 혐오를 뚫고 튀어나오는 진실한 표정에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는 것. 그의 박수는 ‘나는 솔로’ 출연자만을 향하지는 않는다. “삶이란 그 자체로 곤란한 활동이며, 그러므로 가능하면 서로 친절할 필요가 있다.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다 응원하고 싶다”며 “전부는 아니지만, 제 많은 소설은 그런 사람들을 응원한다”고 김 작가는 말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의 등을 은근슬쩍 밀어준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하면서.


“사람 아닌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

김기태 소설가. 문학동네 제공

‘나는 솔로’처럼 소설의 원형이 되었을 무언가는 독자에게 페이지 터너 역할을 한다. 국민 여동생 아이유나 “상업 광고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가수 이효리, 기타를 든 미국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등 실존 인물부터 프랑스 철도 노동자 외젠 포티에가 작사한 ‘인터내셔널가’와 트로트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등 장르를 망라한 음악들. 또 인터넷 밈으로 쓰인 캐릭터 개구리 페페와 펭귄 펭수, 뽀로로 잔망루피 등 현실을 이루는 이미지 사이를 소설은 유영한다. 이를 통해 “김기태의 소설이 조명하는 것은 그 이미지가 구성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미지를 중심으로 모이는 ‘무명의 사람들’”이라고 이희우 문학평론가는 짚었다.

김 작가의 소설은 이처럼 “결석하지 않고 학교도 잘 다녔”고 “법을 어긴 적도 없”는 데다 “하루에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는데도 “큰 걱정 없이 살 수” 없는 무명의 ‘우리’를 비춘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는 그의 소설은 보편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푼크툼’의 희열을 선사한다. 보편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건 단순히 사회 문제와 유행의 조합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2022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올해의 문제소설 등 유독 외부로부터의 호명이 잦았던 김 작가다. 숨 가쁜 2년을 거쳐 첫 소설집을 낸 소감을 그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른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얼마나 왔는지, 또 얼마나 가야 할지 생각합니다. 이번 소설집을 독자들과 나눌 수 있다면 목도 축이고 배도 채울 수 있겠습니다. 휴게소가 아무리 좋아도 때가 되면 떠나야겠지만요. 의미는 휴게소가 아니라 길에 있을지도요.”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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