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비선라인 통한 ‘이재명 대통령 밀어주기’ 사실인가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2024. 5. 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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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까마득한 옛날같지만 꼭 4년 전, 그러니까 2020년 총선 직전 김종인 미래통합당(지금의 국민의힘이었다)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장 정직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조국이 잠깐 법무부 장관이 됐다 검찰에 ‘비리’가 털리면서 물러나고, 위성정당 열린민주당이 검찰 수뇌부를 ‘검찰 쿠데타세력’이라며 대차게 공격하는 와중이었다.

그 김종인이 국힘 대선 후보가 된 윤석열에게 2021년 말 결별을 고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늘 얘기하지만 경선하기 전 사람과 후보로 확정된 사람, 대통령이 된 사람 사이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9일 윤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남 전 ‘비선라인’이 있었는지, 이재명의 대선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은 대통령실에 안 쓰겠다고 제안한 게 사실이냐는 질문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 서 기자 질문에 답하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 개편 때 이재명 경쟁자 안 쓰겠다고?

물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윤-이 회담은 ‘공식라인’을 통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그런 기사가 7일 조간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도 한참이 지나 오후에 나온 답이다. 참내. 이런 경우엔 차라리 “모른다” 라든가 “말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게 낫다. 전쟁 중 적군 사이에서도 협상은 해야 하는 법. 밀사가 오가는 게 나쁠 순 없다. 분명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거짓말하니 가뜩이나 높지도 않은 윤 대통령의 신뢰가 더 떨어지는 것이다(10일 발표된 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 긍정률은 24%.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최저였다) .

민주당 쪽 비선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과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이 윤-이 사이에서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확인해줬다. 임혁백이 누군가. 비록 내가 신문 칼럼에서 ‘이재명의 망나니’라고 쓰긴 했어도(4‧10 총선에서 그는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 ‘명예’교수가 정치인처럼 ‘정치적 거짓말’을 할리 없다.

윤 대통령이 함성득-임혁백을 통해 전한 메시지는 국힘 지지층이나 보수라면 뒷목 잡고 쓰러치기 충분했다. 거칠게 해석하면, 국힘의 1호 당원이라며 2년간 당 대표 2명, 비상대책위원장 3명을 갈아치웠던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이재명의 대선 경쟁자가 안 될만한 ‘얼빵’으로 채워선 다음 정권을 민주당에 상납할 의향을 밝혔다는 얘기다. 우하하하. 대통령감은 대통령실에만 있다는 윤 대통령의 발상도 웃기지만 이재명은 무슨 이런 대통령이 다 있나 속으로 비웃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경쟁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모범답안을 전해달라고 했다는 거다. 아주 여유만만하게.

기자회견에서 ‘비선라인’ 왜 물을 기회 없었나

그래서 기자들이 ‘사전 담합’을 해서라도 윤 대통령에게 비선 확인 질문을 했어야 한다는 거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그런 말은 한 적도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는데 그런 말이 어떤 말인지 밝히지 않음으로써 국민을 고문한 셈이다(국힘 지지층은 궁금해 미치겠고, 민주당 지지층은 고소해 죽겠도록).

함성득은 윤 대통령의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시절 ‘사우나 동문’인데다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사이로 유명하다. 특히 7일 한국일보 단독기사로 실린 함성득의 ‘설명’은 반드시 대통령의 확인이 필요하다. 함성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나는 어차피 단임 대통령으로 끝나지 않느냐”며 “소모적 정쟁이 아니라 생산적 정치로 가면 이 대표의 대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는 거다.

생산적 정치 중요한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생산적 정치가 나라와 국민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이재명의 대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윤 대통령이 말했다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재명이 윤 대통령을 도와주면 윤 대통령도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을 돕겠다는 ‘거래’의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수사는 내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 시절 시작된 것”이며 “ 내 가족도 다 수사를 받았고 다 끝난 문제로 다시 불려 왔다”고 강조했다고 함성득은 설명했다고 한다. 위의 생산적 정치와 연결해 또 한 번 거칠게 해석하면, 머리끝이 쭈뼛 설 판이다. 몇 달째 두문불출하는 김건희 여사를 위하여 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피차 퉁치고 정권을 주고받자는 간교한 딜로 읽혀서다. 가장 불쾌한 건 무슨 대의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 봐도 김 여사의 도이치 수사 문제를 감싸주기 위한 눈물겨운 윤 대통령의 순애보로 읽힌다는 점이다. 한국일보 기사가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사실 확인 기회가 필요했던 것인데 대통령은, 대변인은 그걸 놓쳐버렸다.

총선은 윤석열식 내로남불에 대한 심판

기자가 물어도 과연 대통령이 정직하게 답할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윤 대통령이 솔직담백하게 말해주는 성격인지도 잘 모르겠다. 대통령의 9일 답변도 사실과 다른 것이 적지 않았다. 김 여사의 ‘도이치니 하는 사건’(대통령 표현)을 놓고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 한 2년 반 정도, 사실상 저를 타깃으로 검찰에서 특수부까지 동원해 정말 치열하게 수사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은 서면조사만 달랑 한번 받았을 뿐이다(지금까지 대통령은 늘 “탈탈 털렸다”고 말했기에 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어버이날 가석방된 대통령의 장모만 해도 그렇다. “내 장모가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 준 적 없다”로 유명해진 바로 그 분이다. 대통령은 2021년 6월 출마 선언을 하며 “그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었다(마치 “바이든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다”는 말과 흡사하지 않은가). 검찰총장 출신 정치 신인 윤석열은 그때 “제 친인척이든 어떠한 지위와 위치에 있는 분들이건 간에 수사와 재판, 법 적용에 있어선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멋지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김 여사도 마찬가지여야 옳다.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이유로 민생과 소통에서의 부족을 꼽았지만 난 아니라고 본다. 윤석열식 내로남불에 대한 심판이었다. 말로는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내 식구’ 아닌 모두를 범인 취급하고, 정직하지 못하게 ‘내 식구는 예외’라고 주장하는 대통령에 대한 대파 일격이었던 것이다.

이젠 대통령이 뭔 말을 해도 믿기 어렵다

4년 전 정직하고 나라에 충성했던 윤석열은 지금 안 보인다. 국방부 수사 질책 의혹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채 상병 순직 사고를 질책했다는 대통령의 답변도 정직해 보이지 않는다. 나라에 충성하기 보다 오로지 김 여사에게 충성하는 대통령만 보일 뿐이다.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모습. 대통령실 홈페이지

윤석열 국힘 대선후보 시절 김종인은 곡절 끝에 그의 곁을 떠나며 “정직하지 않으면 성공도 못한다”고 일갈했다. 인간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 옛날 공자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고 했다. 경제도, 국방도 중요하지만 신뢰가 없는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앞으로 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든 믿기 어려울 것 같아 나는 그게 제일 두렵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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