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킴 개인전 ‘3시 20분 픽셀의 기도’

김신성 2024. 5. 1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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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의 행복한 실험여행
소소한 일상의 귀함을 아는 작가
노화랑 5월 20일까지
검은색 마커로 픽셀들의 아웃라인을 그린 뒤, 그 안에 화사하고 알록달록한 색을 하나하나 채워나간 무척 공 들인 작업이다.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는 픽셀작업은 작가 픽셀킴(김현우)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작은 픽셀들은 그가 만난 사람과 자연, 순간의 기분 등이 담긴, 그 만의 조형 단위이다.

그는 아크릴 물감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내는 우연함을 꽤나 즐기는 편이다. 캔버스를 이리저리 기울이면서 표현방식을 확장시킨다. 일상에서 찾은 오브제들을 캔버스에 붙이거나 오려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모든 재료들은 새로운 창작 도구로 탈바꿈한다. 

픽셀킴은 늘 무엇인가 적는다. 그리는 만큼 글을 쓴다. 휴대폰에 빈 노트에. 그의 작업실 한 켠에는 그의 글을 담은는 노트들이 쌓여 있다.

그의 글쓰기 실험은 전시 제목에서 그 빛을 발한다. 직접 제목을 정하고 가끔 포스터도 만드는데, 전시 제목들만 가지고도 그의 일상과 작업이 한 줄기로 꿰어진다. ‘나는 직관적인 노래를 잘 부릅니다’(2021)라는 자기고백적인 소개는 ‘픽셀로 부르는 이름’(2019)으로 이어지고 ‘픽셀의 언어’(2018)를 통해 ‘픽셀의 기억’(2022)을 이야기하고, ‘픽셀의 방법: 믿을 수 없는 공간’(2021), ‘두드림 금색 달빛 밤’(2015), ‘픽셀: 무한한 공간’(2021)으로 펼쳐지면서 다짐이라도 하듯 ‘나의 픽셀은 확장되고 있습니다’(2019)라고 말한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펼쳐졌던 그의 전시들은 언뜻 서로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결국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작가의 내면에 닿아 있음을.
픽셀드로잉 (1)
픽셀드로잉 (2)
픽셀드로잉 (3)
많은 사람들이 그의 픽셀 드로잉을 좋아하지만, 그의 수학 드로잉도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픽셀 드로잉이 세상을 만나는 조각난 창이었다면, 수학 드로잉은 우주로 확장된 세계 같은 느낌이다. 세상과 닿으려는 노력보다는 그만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자꾸 보게 된다.

수학 드로잉의 시작은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포르세포네 수학드로잉’, ‘이아포리스 수학드로잉’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하듯 그의 수학 드로잉에는 무수히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몇몇은 잘 알려진 신들이지만 포르세포네(꽃과 식물의 신), 에리크토니우스(대지에서 태어나 아테나 여신에 의해 길러졌다고 전해지는 아테네 초기 군주) 등 생소한 이름들도 보인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심취했던 작가는 수학 수업을 들으며 신들의 이야기와 수학의 관련성을 도모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 하면 누가 누구와 결혼해 누구를 낳았다는 식의 가계도가 떠오르듯, 그는 자신을 둘러싼 학우와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한 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새로운 직책을 부여하고 이전과 다른 인간관계를 상상하는 메모 놀이, 드로잉 놀이를 이어갔다. ‘픽셀의 기억’ 속 ‘수학 드로잉’은 그렇게 시작됐다.
에리크토니우스 수학드로잉
그러나 수학 드로잉 속 신들은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그림의 전면을 메우고 수식과 기호들을 받쳐주는 바탕색은 은밀한 연관관계를 암시할 뿐 명확한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수식과 기호 역시 해석이 불가한 상태이니, 관객은 그림 앞에서 길을 잃고 만다. 하지만, 길을 잃어버리는 그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들뜬다.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여행하는 것 같고, SF 영화에서 보는 디지털의 무한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수학의 기호 앞에서, 답이 없는 수학공식 앞에서 이렇게 즐거워도 될까 싶을 만큼, 수학 드로잉은 관객의 시선과 마음을 녹여낸다.

최근 그의 수학 드로잉은 다양한 내용으로 확장하고 있다. 캐나다 밴프에 갔던 인상을 담는다든지(‘밴프 춤 수학 드로잉’),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우크라이나 픽셀 수학 드로잉’). 영상 미디어 작업을 하면서부터 블랙에 매료되기 시작했는데, ‘블랙 공간 수학 드로잉’, ‘블랙 자연 수학 드로잉’처럼 ‘블랙’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픽셀킴은 계획을 철저히 지켜가며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기까지 시간별로 할 일을 메모지에 적어 벽에 붙인다. 휴대폰 알람도 가득 채운다. 중요한 회의나 만남을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굳건히 지키려는 것이다. 커피 마시기, 샤워하기, 일어서기 등. 그는 소소한 일상의 귀함을 아는 작가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결국 관객이 적극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작업이 된다.
봄 수학드로잉
그림자 숲향 수학드로잉
경험과 삶의 기억들을 픽셀에 담아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픽셀킴의 개인전이 ‘3시 20분 픽셀의 기도’라는 제목을 내걸고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린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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