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남긴 질문 “나는 민주시민인가 고객인가” [미디어 리터러시]

신혜림 2024. 5. 1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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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를 듣고 나서야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때도 좋은 말을 하는 어른이라고는 느꼈지만, 그게 남들 다 하는 '그냥' 좋은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선생이 떠나고서야 뒤늦게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처럼 자본을 비판하다 자본에 휩쓸리기보다는, 작게나마 가치를 우선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검열이 더 엄격해졌고, 나와 오래 함께할 것 같은 사람에게 비슷한 잣대를 들이대며 상처 주는 일도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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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언론'을 향한 갈구는 더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매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곧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 언론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4월20일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홍세화 선생의 빈소. ⓒ연합뉴스

부고를 듣고 나서야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경우가 너무 많다. 2024년은 내게 홍세화가 떠난 해이자, 홍세화를 알게 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선생의 부고 소식이 들려온 직후 정말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한 기억, 그와의 직접적 인연을 이야기하며 추모했다. 무엇 하나 절절하지 않은 사연이 없었다. 프랑스로 망명해 난민이 된 지식인.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 저자. 숨을 거둘 때까지 과거에 몸담았던 매체를 걱정한 언론인. 어려운 시기를 맞닥뜨린 진보 정당의 대표직을 기꺼이 감당했던 정당인. 생활고로 작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지원한 사회운동가. 이게 다 한 사람이라고? 나는 그를 취재차 간 어떤 행사에서 딱 한 번 마주했을 뿐이다. 그때도 좋은 말을 하는 어른이라고는 느꼈지만, 그게 남들 다 하는 ‘그냥’ 좋은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선생이 떠나고서야 뒤늦게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한 인간이 그 많은 활동을 해왔다는 것도 놀랍지만, 말과 삶에 어긋남이 없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아득함으로 다가왔다.

평범한 사람이 홍세화처럼 살기는 힘들다. 다만 노력할 수는 있는데, 방법을 잘 몰랐다. 언론사에서 일하며 내가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아끼는 지인에게 불필요하게 딴지 거는 일이 잦아진 걸 깨닫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과거에 뱉은 말과 행동이 다른 ‘지맞그틀’ ‘내로남불’ 지식인, 정치인, 선배 언론인에게 실망이 조금씩 쌓여갔다. 그처럼 자본을 비판하다 자본에 휩쓸리기보다는, 작게나마 가치를 우선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면서 두려움이 생겼다. 자본주의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의 지평을 빈틈없이 장악하고 있는(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세상에서, 생활인으로서 드는 고민도 함께 쌓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검열이 더 엄격해졌고, 나와 오래 함께할 것 같은 사람에게 비슷한 잣대를 들이대며 상처 주는 일도 생겨난 것이다.

말과 삶을 일치시키다 떠난 사회주의자

고민이 깊숙해질 즈음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었다. 저자는 혹시 지인들을, 심지어 너 자신을 존재가 아닌 소유물로서 느끼고 있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그 관계는 죽은 것이며, 살아 있는 관계가 아니’라고, 어느 대학 동아리방에서 탄생한 유명한 짤처럼 얼른 ‘자의식 과잉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되찾으라’고 타일렀다. 홍세화 선생이 생전에 강조했던 ‘톨레랑스(용인)’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자본 어쩌고 하기 전에, 너와 나를 소유물이 아닌 존재 자체로 대할 것. 선생의 부고 소식 이후 그의 마지막 〈한겨레〉 칼럼(‘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2023년 1월12일자)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도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렸다.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라고. 끝까지 말과 삶을 일치시키다 떠난 사회주의자의 말은 공허하게 들리기보단 마음 한켠에 남아 자꾸만 쿡쿡 찔렀다.

얼마 전 〈한겨레〉는 죽음을 앞둔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겨레 독자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는데 답은 이거였다. “민주시민인가 고객인가, 그 질문을 독자들이 스스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독자’ 아닌 ‘후배’에도 제멋대로 날 끼워넣어 읽어본다. 나는 민주시민인가 고객인가. 타인은 소유인가 존재인가. ‘용인’하는 시민이자 언론인의 태도는 어때야 할지, 그의 글을 읽으며 거듭 궁리하는 봄이 될 것 같다.

신혜림 (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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