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탈출은 지능 순이라고?" 저연차 공무원들이 말하는 '우리가 떠나는 이유' [스프]

박수진 기자 2024. 5. 11. 09: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뉴스쉽] 공무원 '철밥통'이 깨지고 있다(?)


"'공복(公僕)'이란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취재 중 만난 현직 공무원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헌법 7조는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의미를 담아 흔히 공무원을 국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공복'이라고 왕왕 표현해 왔다. "좋진 않아요. 노예, 종처럼 부려도 된다는 것 같아서."

최근 공무원 사회에선 봉사자보단 종, 노예라는 자조가 나온다. 공무원단체 기자회견에서 스스로를 '공(公)노비'라 부르는 걸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100대 1을 넘나들던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올해 21.8대 1(9급 국가직)까지 떨어졌다. 한 때 '신의 직장'은 '공노비'로 추락 중이다.

"몇 년 전부터 도는 말이 탈출이 지능 순이라고, 똑똑한 사람이 먼저 탈출해서 다른 일 찾는 거라고 저희끼리 말하거든요. 공무원으로 들어왔을 땐 뭔가 사명감도 있고 보람도 찾고 이런 게 있는데 일을 하면 전혀 그런 걸 못 느껴요. 보람이 없어요. 내가 이 일을 과연 이렇게 20, 30년 동안 할 수 있을까?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새 직장 찾자 이러면서 좀 많이 도망가는 것 같아요." (김영운 전국공무원노조 청년위원장(7급 지방직))

실제 입직한 지 5년이 되지 않은 저연차 공무원들의 퇴직은 꾸준히 늘어 전체 퇴직 공무원의 23.7%에 육박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월 발간한 <신규 임용 공무원의 퇴직 증가 문제> 보고서를 통해 "신규 임용 공무원들의 조기 퇴직이 전체 공무원 퇴직 증가를 견인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할 심각한 사안"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4일 방영된 <뉴스토리> '공무원 퇴사합니다-그들이 떠나는 이유'를 취재하면서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현실을 조명하고, 저연차 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본 바 있다. (▶관련 영상: 뉴스토리 469회 <공무원 퇴사합니다…그들이 떠나는 이유>)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15명의 전·현직 공무원들을 대면, 전화, 이메일 인터뷰했다. 대부분이 입직한 지 10년이 되지 않은 공무원들이었고 1명은 이직 준비 중, 2명은 이미 공직을 떠난 상태였다. 이들과 대화하며 '공무원 철밥통이 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철밥통은 '잘리지 않고 정년까지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외형적으로 이 전제는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균열은 철밥통 안쪽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 주 뉴스쉽에서는 이 균열의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 https://www.youtube.com/watch?v=fgz-MrUro2s ]
 

6년 차 8급, 2년 차 9급 공무원의 지난달 월급은?

여기 두 사람의 급여명세서가 있다. 한 사람은 올해 6년 차 8급 국가직 공무원, 또 한 사람은 2년 차 9급 지방직 공무원이다.
한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8급 공무원 A 씨는 지난달 월급으로 220만 2,190원을 받았다. 시간외수당 등 각종 수당과 식비 등이 포함된 금액. 세전 수령액 261만여 원을 기준으로 한 A 씨의 연봉은 3,000만 원 초반대다. A 씨는 6년 전 9급 국가직 공무원으로 입직해 올해 8급 5호봉이다. 6년 전 월급은 세후 기준 160만 원대. 지난 6년 동안 매년 10만 원씩 올랐다.
비수도권의 한 구청에서 일하고 있는 9급 공무원 B 씨는 지난달 188만 8,860원을 받았다. 시간외수당, 특수직무수당 등을 다 포함한 금액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9,860원, 월급 기준으로는 206만 740원이다. B 씨의 지난달 월급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

채용사이트 사람인이 2022년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졸 신입 연봉은 2,881만 원, 고졸은 2,634만 원이었다. 이 금액은 세전 기본급을 기준으로 조사 됐다. 6년 차 8급 A 씨의 기본급은 216만 원, 2년 차 9급 B 씨의 기본급은 192만 원. 두 사람 모두 2년 전 중소기업 대졸, 고졸 신입 연봉에 미치지 못한다.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민간과의 보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져 현재는 민간기업 임금 기준 80% 초반대 수준이다. 한국행정연구원 2023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의 보수 수준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 중 2.27점에 불과했고, 특히 8급과 9급 공무원은 2.13점으로 가장 낮았다.


"제가 9급 때 160만 원을 받았는데 서울로 발령나서 자취를 해야 했거든요. 그때 월세가 60만 원이었어요. 공과금 같은 거 내고 나면 한 80만 원 남았고 거기서 절반은 또 식비. 적금을 25만 원씩 넣었더니 15만 원 남더라고요. 그걸로 한 달 쥐 죽은 듯이 살았어요. 교통비 아까워서 걸어 다니고요... 지금 1년에 딱 10만 원씩 오른 거잖아요. 절대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을 수 없어요. 이 월급으로 어떻게 결혼해서 집 사고 애를 먹여 살리지라는 생각이 항상 많이 들어요." (8급 공무원 A 씨)

A 씨는 현재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대기업 공채 두 곳에 지원했지만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공기업 채용에도 지원했었다. A 씨와 함께 입직한 동기 160명 중 20명은 이미 그만뒀다. 제2의 직장이 정해져서 그만둔 경우도 있지만 "네일숍에서 일하거나 그냥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는" 동기들도 적지 않다. A 씨는 "아직 그렇게 그만 둘 용기는 없어서" 일과 이직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월급뿐만 아니라 수당 산정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시간외근로수당(초과근무)의 경우 일반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56조에 따라 통상임금의 1.5배(100분의 50)를 가산하여 지급한다. 통상임금은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수당 등이 포함된 임금을 말한다. 하지만 공무원의 수당엔 근로기준법이 아닌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시간외근무수당은 매 시간에 대해 '봉급기준액×1/209×150%'을 지급한다고 돼있는데, 이 봉급 기준액은 기준 호봉 봉급액의 55%라고 돼 있다. 쉽게 말해, 호봉액이 100만 원이라고 치면 55만 원으로 깎인 금액을 기준으로 수당을 계산해 준다는 뜻이다. 공무원노조는 "근로기준법 대비 55% 수준에 불과하다"며 공무원 수당 규정 대신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공무원의 급여 수준이 민간보다 나았던 적은 없다. 과거에도 박봉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버틸 이유가 있었다. 오늘 받는 월급은 적어도 미래에 받을 '공무원연금'이라는 든든한 보험이 있었다. 그런데 기자가 만난 공무원들은 연금 받기 위해 내는 돈이 아깝다고 했다. 왜일까?

 

부담만 되는 연금 "선배들 연금 왜 내줘야 하나요?"

앞서 살펴봤던 A 씨와 B 씨의 급여명세서의 공제 내역을 보면 '기여금'이라는 항목이 가장 액수가 크다. 기여금은 훗날 공무원연금을 받기 위해 매달 내야 하는 돈으로 기준소득월액의 9%에 해당한다. A 씨는 24만여 원, B 씨는 22만여 원을 지난달 기여금으로 냈다.

2016년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기여금 부담률은 상승하고 연금 지급액은 떨어졌다. 선배들보다 더 내는 데 덜 받게 되는 상황이 된 셈. 게다가 향후 공무원연금 등 직역 연금에 대한 국고 부담이 커지게 돼 추가 개혁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는 만큼 불안정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저연차 공무원들 입장에선 연금을 기반으로 안정적 노후 설계를 하기 어려워졌다.

"언젠가 저 사람이 퇴직하면 저 사람 연금 내가 내줘야 되는 거잖아요. 연금이라는 게 다 퇴직자들을 위해서 내는 건데, 저는 사실 나중에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거든요. 가뜩이나 박봉인 월급에서 몇십만 원씩 매달 떼어 가는 게 부담이 커요. 차라리 기여금 안 내고 월급 더 받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어요." (9급 지방직 공무원)

"저는 한 달에 35~36만 원씩 기여금으로 내거든요. 연봉 자체가 사실 굉장히 적은데 35만 원씩 공제되는 게 부담되죠. 사람들은 '공무원은 연금 많이 받잖아' 이러지만 사실 받는 돈은 많이 줄었고 내는 돈만 늘었어요." (6급 세무직 공무원)

국민연금에서 나타나는 세대 갈등이 공무원연금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김준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에 은퇴한 분들은 동일 직급에서 은퇴하더라도 2024년 기준으로 훨씬 많은 연금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 기득권이 보호가 된다. 그러다 보니 새로 입직을 하는 젊은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내는 것은 많은데 혜택은 국민연금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노후 안정성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처우 문제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람은 바뀌는데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

무조건 돈을 많이 받겠다, 최고의 대우를 해 달라는 건 아니지만 낮은 보수와 불안해진 노후 안정성은 젊은 공무원들의 노동 의욕을 꺾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저연차 공무원들은 처우는 이렇게 열악하게 변해가는데 달라지지 않는 게 하나 있다고 했다. 바로 공직 사회의 일하는 방식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행정 서비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공무원의 업무는 과거보다 다양해졌다고 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민원 현장의 경우도 악성 민원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 배경에는 민원 자체가 과거에 비해 복합화되고, 대민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며 민원을 받는 창구는 크게 늘어난 현실이 있다. 민원이 복합화되고 국민이 요구하는 행정서비스 수준이 높아졌다면 공직 사회가 일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발전해야 하는데 저연차 공무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제가 9급으로 입직하고 1년이 안 됐을 때 인허가 담당을 맡았는데, 인허가가 100% 재산권이랑 관련된 일이거든요. 법 자체가 세세하게 쓰여 있지가 않아요. 그런데 인수인계를 3시간인가 4시간 받고 바로 업무를 시작했어요.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인허가 건이 있으면 아무리 제가 꼼꼼하게 확인을 해도 '이게 맞는 건가. 내가 실수해서 재산 피해받으면 어떡하지'라는 부담이 있었어요. 제 선임은 7급이었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9급 신규였던 제가 그 자리를 맡게 된 거죠." (8년 차에 퇴직한 30대 전 공무원)

"연수원에서 민원인을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민원 전화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이런 거 가르쳐주지 않았거든요. 옆에서 하는 거 보고 따라 하면서 배웠어요. 전임이 자료를 만들어 놓고 갔으면 정말 감사한 거고, 대부분은 그냥 맨땅에 헤딩해요. 신규 직원들이 격무 부서에 가면, 다들 바쁘니까 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더 힘든 거예요." (7급 사회복지 공무원)

'일단 부딪히고 겪어봐라'는 식의 일하는 방식은 과거엔 효율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을지 몰라도 새롭게 조직에 들어오는 젊은 직원들에겐 부담이 되고 있다. 처음에 힘든 것을 경험해 봐야 빨리 배운다는 취지로 격무 부서, 민원 일선 현장에 경험이 부족한 저연차 공무원을 배치해 온 관행도 신규 임용 공무원들의 이탈을 부추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 환멸을 느껴 입직 6개월 만에 퇴직했다는 한 30대 전 공무원은 "무기 없이 전쟁 최전선에 배치되는 이등병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