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만 오늘도 버팁니다" 추억이 돼 가는 동네슈퍼

강경호 기자 2024. 5.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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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도 골목마다 편의점
전북대 구정문 인근 가보니…
"요새 통 장사가 안 돼요"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에 위치한 햇님수퍼에서 한윤수 사장이 손님을 맞이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2024.05.10. pmkeul@newsis.com


[전주=뉴시스]강경호 기자 = 과거 어린아이들은 값싼 군것질과 뽑기, 오락기 등을 하기 위해 동네 구멍가게와 슈퍼로 모여들었다. 이밖에도 동네 구멍가게와 슈퍼는 어르신들에게 안부를 묻고 서로의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역할도 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동네슈퍼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24시간 문을 열고 값싼 할인을 앞세운 대형 편의점들이 증가하면서다.

11일 전북 전주의 주요 상권 중 한 곳인 전주시 덕진구의 전북대학교 구정문 인근 삼거리. 길게 뻗은 중앙 거리 위엔 힘들여 찾지 않아도 서너곳의 편의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곳에 있는 한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이 장소에서 10년을 넘게 버텼던 동네슈퍼가 자리했던 곳이었다. 심지어 이 편의점에서 조금만 걸어가도 같은 프랜차이즈 편의점 한 곳이 영업 중이었다.

기자가 이 곳에 편의점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10여분 정도를 걸어본 결과 총 10곳의 편의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1분에 1개 꼴인 셈이다.

이러한 편의점의 공세 속에서도 전북대 학생들을 30여년간 지켜본 동네슈퍼인 '쎄일마트'가 있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고 한다.

이종철(48)씨는 "이곳에 편의점이 너무 많다.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인근 가게들에 수도 없이 입점 회유를 한다. 당장 맞은편 가게도 편의점이 된 지 얼마 안 됐다"며 "게다가 이젠 식자재마트 같은 중견 마트들도 생기게 되면서 가격 경쟁력 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한탄했다.

이어 "이곳 상권 자체가 많이 죽어서인지 요새는 장사가 통 되지 않는다. 4년 전만해도 지금 매출의 서너배는 나왔었는데 코로나 시국 이후 급격하게 장사가 침체된 느낌이 있다"며 "주 고객층은 인근 주민이지 대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은 간식 정도 외엔 구매를 안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 매장은 일반 동네슈퍼보단 규모가 있어 버틸 수는 있지만 상황이 녹록치는 않다"며 "예전엔 정말 하루 매출만 천만원이 넘고 정직원들도 9명 고용했지만 지금은 매출이나 직원 수 모두 절반으로 줄었다"고 푸념했다.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동네슈퍼 역시도 어려운 상황.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에 위치한 햇님수퍼에서 김정순 사장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가게를 정리하고 있다. 2024.05.10. pmkeul@newsis.com


구정문 인근의 아파트 단지 한 켠에 위치한 '햇님슈퍼'도 30여년간 한 곳에서 자리를 지켰다. 간판과 외벽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했지만 내부에는 생필품 등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36년간 이곳에서 슈퍼를 운영 중인 김정순(76) 사장은 "내가 시작할 때 이 근방에 슈퍼가 5곳이 더 있었는데 지금 나 혼자만 남았다"며 "예전엔 정말 찾는 사람이 많아 IMF 시절을 보내고도 장사가 잘됐는데 어느 순간 편의점들이 생기면서 장사가 안 된 지는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젊은 사람들은 오지 않고 예전부터 찾던 나이 든 단골들이 담배나 소주만 사고 간다"며 "단골들마저도 별로 없어서 하루에 그냥 1만~2만원 정도만 팔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도 "수도 없이 편의점이나 다른 곳에서 가게를 내놓으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다"며 "돈 욕심을 냈다면 진작 가게를 내놨다.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가게를 할 것"이라고 했다.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에 위치한 햇님수퍼에서 김정순(왼쪽) 사장과 한윤수 사장이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2024.05.10. pmkeul@newsis.com

이처럼 동네슈퍼를 찾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줄어들면서 편의점과 동네슈퍼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는 추세다.

전주시에 따르면 전주시 내 편의점(1월 24일 기준)은 총 560개소가 영업 중이다. 여기에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38개소를 추가하면 총 598개소의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영업 중이다.

그에 비해 동네슈퍼의 대표격인 나들가게는 197개소에 불과하다. 편의점과의 차이가 3배가 넘는 수치다.

정부가 전국의 동네슈퍼들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주관하는 '나들가게' 사업을 지난 2009년부터 시작해 10년 넘게 진행 중이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전주시의 나들가게는 250곳 넘는 점포가 새롭게 출점했지만 2014년부터 2019년까지는 52곳 만이 문을 열었다. 지난 2019년부터 도내에 새로 문을 연 나들가게는 전무했다.

이에 대해 사업 관계자는 나들가게 신규 출점은 중단하고 기존 나들가게 경쟁력 상승으로 사업 방향이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성장지원실 임철주 과장은 "지금까지의 나들가게 사업이 포스기 보급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현재는 동네 슈퍼들만이 가능한 지역 특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새로운 방향성을 구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물류시스템을 개발하고 지역별 유통망을 합친 후 전국 단위로 운영해 동네슈퍼의 경쟁력을 갖추고 슈퍼에 대한 유지보수·컨설팅, 다양한 나들가게 PB상품·브랜드 개발 등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luke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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