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제압할 수 있을까? 자신감과 불안감 사이 [ESC]

한겨레 2024. 5. 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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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운동 주짓수
안일함·무력감에서 비롯되는
비현실적 느낌 ‘무기 방어’ 훈련
나를 믿고 ‘선 없는 위험’ 대비해야
양민영 작가(오른쪽)가 칼을 든 상대에 맞서는 무기 방어 기술을 훈련하고 있다. 사진 속 상대의 손에 들린 것은 모형 칼이다. 박종혁 제공

어둠 속에서 빛을 뿜던 손전등, 누군가의 손에 들린 무기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손전등이 무슨 무기냐고 반문하지 말길 바란다. 주황색 불빛이 얼굴을 비추던 순간 나는 ‘숨죽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처음 알았다. 누군가를 그처럼 즉각 얼어붙게 한다면 손전등이 아니라 곰 인형도 무기가 될 수 있다.

손전등을 든 남자는 나와 룸메이트 언니가 잠든 새벽에 집 안으로 들어왔다. 현금과 은으로 된 장신구 따위를 다급하게 챙기다가 도자기로 만든 동전 저금통을 떨어뜨렸고 잠결에 몸을 일으킨 나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남자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남자의 다른 손에 칼이 들려 있을까. 이다음은 뭘까. 주먹질과 발길질, 아니면 자상? 순식간에 성폭행까지 상상했을 때 남자는 나를 지나쳐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일이 있고 불안이 엄습하는 날, 유난히 밖이 소란스러운 밤, 예감이 좋지 않은 새벽이면 침대 아래, 손을 뻗으면 곧장 닿는 곳에 칼을 놓아두곤 했다. 벌써 10년도 더 된 그 일이 지금도 가끔 악몽으로 재현된다.

무기를 든 연습 파트너

주짓수 도장에서 나눠준 칼은 중국산일 수도 있는, 마감이 조악한 플라스틱 모조품이다. 칼뿐 아니라 스티로폼 막대기, 심지어 권총의 모양을 본뜬 모형도 있었다. 무기를 든 악당(사실은 연습 파트너)에 맞서 싸우는 모의훈련이 시작되면 어색하고 황당해서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보통은 이게 주짓수와 무슨 상관인가 싶다. 어서 빨리 정상적인 주짓수 기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무기 방어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안전 불감증과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훈련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이 함께 밀려온다. 도둑이 방 안에 들어온 일이 있는데도 이렇게 안일한 걸 보면 우리가 갖가지 위험에 대비하며 살고 있다는 믿음은 크나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일함을 마냥 비난할 수만 없는 게 실제 우리는 무기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경찰도 칼을 휘두르는 사람과 최소 6m 거리를 유지한다. 그만큼 행동은 반응보다 빠르다. 칼을 들고 위협하는 사람은 경찰이 총을 꺼내기도 전에 근접한 거리까지 돌진한다. 경찰도 이런데 주짓수를 취미로 배우는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그동안 푹신한 매트, 냉난방 기계,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타이머, 항복을 의미하는 ‘탭’에 둘러싸여 스포츠화, 또는 오락화된 주짓수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그래도 관장님은 꾸준히 실전성을 강조한다. 실제 싸움에서 규칙 따위 있을 리 없고 아무리 훈련받은 사람이라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기 방어란 언제, 어디서 맞닥뜨릴지 알 수 없는 ‘선 없는 위험’에 맞서는 대비책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실전에 대비한 무기 방어가 어떤 훈련보다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무기를 들고 돌진하는 상대를 테이크다운(태클 등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으로 넘어뜨린 다음 바닥으로 끌고 가 그라운드 기술로 제압하는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영화 속의 인물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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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격 좋고 운동 잘하는데 격투기까지?

그리고 2년 전, 정말이지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단 상대를 해치기로 마음먹었다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십시오.” 이탈리아 태생인 알베르토 갈라치는 군인이면서 주짓수, 크라브마가 등 각종 격투기를 섭렵한 실력자다. 마돈나와 제니퍼 로페즈를 경호한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한국을 방문해 서바이벌 주짓수(TSJJ)의 핵심 기술을 소개하는 세미나를 열었을 때 순전히 호기심만으로 참석했다.

서바이벌 주짓수는 한마디로 말해 주짓수의 방어 중심적인 기술과 각종 격투기의 공격 기술을 접목한 변종이다. 일반적인 주짓수와 다른 점은 제도화된 사회에서 통용되기 어려운, 전장에서나 통할 법한 기술이 주를 이룬다는 거다. 무기를 빼앗는 건 물론이고 그 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라고 가르친다.

주짓수에서 무기 방어를 포함한 자기방어는 철저하게 방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능한 한 위험에서 멀리 도망치고 선제공격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는 기술부터 익힌다. 그런데 그처럼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상대를 해치라고 가르치는 주짓수도 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알베르토 갈라치는 단순히 강하다고만 표현하기엔 모자랄 정도로 드센 사람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주짓수를 수련하면 갈라치만큼은 아니어도, 체격이 크고 운동 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본다. 그들 대다수는 남성이고 공격과 방어에 모두 뛰어나서 ‘저런 사람에게도 격투기가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힘이라는 것도 일종의 자본이어서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좋은 것인가?

그날 이후로 알베르토 갈라치, 크고 힘센 남자들, 그리고 나를 일렬로 세워 스펙트럼을 만들었다. 나의 방어 능력을 수치화하면 몇점일까. 점수는 항상 오락가락한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해서 위협을 가하는 남자의 팔 하나쯤 부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친다. 그동안 팔을 꺾는 기술인 암바를 나보다 훨씬 큰 남자들을 상대로 수도 없이 연습했으니까.

그러다가도 강해졌다는 게 전부 착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전등 불빛과 마주했던 순간이 떠오르면 여전히 그 기억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다. 매체에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받았던 협박성 이메일과 개인 에스엔에스(SNS) 계정까지 찾아와 욕설을 남기던 악플러에 관한 즉각적인 반응도 다름 아닌 두려움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살해된 여성에 관한 뉴스는 어떤가. 그 서늘한 위험이 나와 무관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폭력에 관해 알면 알수록 나를 향하는 단단한 신뢰와 멀어지는 것 같다. 대신 그간의 훈련으로 강해졌다는 자부심과 나보다 훨씬 강한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열등감 사이에서 쉽게 분열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더 필요할 뿐 언젠가 나를 온전하게 신뢰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게 안일한 착각이라도,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조금은 고단할지라도, 당장 갈 수 있는 건 이 길뿐이다.

양민영 작가

사회적기업 운동친구의 대표이며 ‘운동하는 여자’를 썼다. 페미니즘과 여성의 운동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고, 못 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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