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죽음의 공포가 낯선 것 배척하게 만든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4. 5.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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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위협, 특히 죽음에 대한 위협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롭고 낯선 것을 배척하고 보수화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죽음과 관련된 생각을 하게 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외국인, 낯선 문화,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새로운 시도 등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그런 반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국가, 문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애착이 커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애리조나대의 심리학자 제프 그린버그 등은 이렇게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크고 오래 지속될 상징적인 무엇을 통해 죽음이라는 근원적 공포를 다스린다고 보았다. 이를 근원적 공포 조절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막연한 공포는 마음속 어딘가에 늘 도사리고 있어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쉽게 자극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공포가 별다른 이유 없이 낯선 존재들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행동을 불러오기도 한다.

위협을 느끼고 몸을 사리는 모드에 들어가게 되면 작은 차이도 엄청나게 커 보이기 마련이다. 예컨대 나와 다른 나라에 산다는 정보 하나로 그 사람은 나와 공통점이 없을 것이며 서로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차이점에 편향된 해석을 하게 될 수 있다. 

버지니아대의 심리학자 맷 모우틀 등은 이렇게 막연한 공포감에 의해 타인을 배척하게 되는 현상을 줄이는 법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자들은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니면 자주 느끼게 되는 어디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깨달음처럼 겉모습은 다르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가치와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 사람들이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을 줄이고 평화를 추구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자들은 한 조건의 사람들에게 죽음과 관련된 생각들을 떠올리도록 했고 다른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럽긴 하지만 죽음과는 상관없는 이빨이 아팠던 경험 같은 것을 생각하도록 했다.

그런 뒤 사람들에게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미지나 어렸을 때의 즐거운 경험에 대해 서술(예를 들어 어렸을 때 가족들과 바닷가에 놀러 갔던 경험), 또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봤을 법한 부정적인 사건에 대한 서술 (예를 들어 친구들 앞에서 민망한 실수를 해서 놀림 받았던 경험)을 접하도록 했다. 

그 결과 죽음에 대해 떠올린 사람들은 다른 고통스러운 경험을 떠올렸던 사람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외국인과 이민자에 대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편이었지만 인간으로서 가지는 공통점을 상기하게 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와 같은 적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분쟁보다 평화를 옹호하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 때문에 막연히 나와 달라 보이는 무엇을 배척하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수년 전 뉴욕타임즈 등에서 테러에 의해 사망할 확률보다 집에서 배우자에 의해 살해당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지적했던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것은 외국인보다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만성적인 운동 부족, 피로, 술, 담배, 심혈관질환, 외로움 등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타인을 배척한다고 해서 나의 사망률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그보다는 술을 좀 줄이고 운동을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할 것 같다. 

차이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와 100% 동일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혼자인 섬에 갇혀 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처럼 인간으로서 가지는 공통점 또한 적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소중한 사람을 얻은 기쁨과 잃는 슬픔을 겪으며 산다. 

그러고 보면 죽음은 모든 인간의 근원적 공통점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모두 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어딘가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근원적인 공통점 앞에서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같이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입장에서 서로에게 조금씩이나마 친절할 수 있다면,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존재의 의미를 밝혀 주고 마음의 위안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Motyl, M., Hart, J., Pyszczynski, T., Weise, D., Maxfield, M., & Siedel, A. (2011). Subtle priming of shared human experiences eliminates threat-induced negativity toward Arabs, immigrants, and peace-making.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7(6), 1179-118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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