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 범인 수능점수 꼭 알아야 합니까

윤수현 기자 2024. 5. 1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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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점수 강조하고 피의자 과거 인터뷰까지 소환… 피해자 신상 공개 우려
범행 동기 안 밝혀졌는데 '유급 때문'·'사이코패스 가능성' 보도 이어져
전문가들 "피해자 측에 아픔 될 수 있는 보도"… "섣부른 범행 동기 유추"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국제뉴스, 위키트리의 서울 강남역 인근 살인사건 관련 보도 제목. 사진=네이버 뉴스화면 갈무리.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한 언론의 문제적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경찰이 피해자 정보 유출 우려를 이유로 피의자 신상을 비공개했지만, 일부 언론은 피의자 실명과 학교를 버젓이 공개하고 있다. 또 일부 언론은 명확한 범행 동기가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피의자가 대학교 유급, 게임중독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피의자 신상정보 거리낌 없이 공개

A씨는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연인인 B씨를 살해했다. 지난 7일 KBS '뉴스9'이 A씨의 수능점수, 대학교 학과를 공개한 이후 A씨 신상정보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다수 언론은 기사 제목에서 A씨 수능 점수와 학과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살구뉴스는 A씨에 대한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모두 공개했다. 살구뉴스는 지난 8일 A씨 실명, 졸업한 초·중·고등학교, 인스타그램 주소, 얼굴 등을 모두 공개했다. 살구뉴스는 지난해 언론중재위원회에 가장 많은 시정 권고를 받은 매체다.

A씨는 과거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국제뉴스는 지난 8일 A씨 과거 인터뷰를 인용해 기사화했다. 과거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은 학생들을 소개하면서 A씨 이름을 거론하는 보도도 있다. 위키트리는 지난 8일 보도에서 “2024년 5월 모의고사 시간표와 출제 범위, 끝나는 시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A씨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공개한 공부 방법을 소개했다. 금강일보는 지난 8일 보도를 통해 최근 8년간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은 학생 9명을 소개했는데, 이 중 A씨가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A씨 신상이 알려지면서 B씨의 신상도 공개됐다. A씨와 B씨 주변인들까지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B씨의 가족이라고 밝힌 누리꾼은 B씨의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남겨 “억측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9일 A씨에 대한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A씨에 대한 신상이 공개될 경우 B씨 정보도 함께 유포될 것을 우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매일신문, 중앙일보, 문화일보의 서울 강남역 인근 살인사건 관련 보도 제목. 사진=네이버 뉴스화면 갈무리.

범행 동기 확정 안 됐는데… “게임중독 때문 아니냐는 의견 나와”

구체적인 범행 수법도 공개됐다. 뉴스1·국민일보 등은 지난 9일 A씨가 어떤 부위를 몇 차례 공격했는지 기사에서 소개했다.

확정되지 않은 범행 동기를 유추하는 보도도 있었다. 매일신문은 지난 8일 A씨의 범행 동기가 게임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매일신문은 보도에서 “(A씨가) 살인자로 전락한 이유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나 게임중독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며 A씨가 과거 게임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과거 인터뷰를 소개했다.

하지만 A씨가 게임중독이라는 근거는 없으며, 게임중독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범행과 연관 짓는 건 무리가 있다. 지난해 8월 검찰은 신림역 흉기 난동 살인사건 피의자가 게임중독 상태였으며, 게임중독이 범행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중앙일보는 지난해 8월16일 <게임중독으로 흉기난동?… “항생제 봐라” 전문가가 부정한 근거> 보도에서 게임중독과 범죄는 관련이 없다는 해외 논문을 소개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브레인스톰 연구소가 지난해 5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게임 이용과 현실에서의 폭력적 행동은 인과관계가 없다.

A씨의 범행 동기를 단순화하는 전문가 인터뷰를 인용보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A씨가 대학에서 유급당한 것이 범행 이유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A씨는 유급당한 것으로 확인된다. 굉장히 조용하지만 안에는 불만이 굉장히 쌓여 있을 시한폭탄 같은 사람일 개연성이 굉장히 높다”고 했다.

현재까지 A씨의 범행 동기는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언론은 이수정 교수 인터뷰를 인용보도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지난 9일 보도에서 “이 교수는 늘 남들의 부러움을 받던 대학생이 유급한 것이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내면에 잠재해 있던 비뚤어진 욕망, 욕구 불만이 유급으로 인해 밖으로 분출됐고 이것이 살인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또 이 교수는 A씨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동아일보·서울경제·뉴시스·헤럴드경제 등 언론이 지난 9일 이 발언을 기사화했다.

▲뉴스 관련 자료사진. 사진=Getty Images Bank

“수능 점수, 가해자·피해자 특정하는데 이용”… “본질 흐리는 보도 자제해야”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A씨가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게 어떤 도움이 되는 정보인가”라면서 “A씨 수능 점수는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를 특정하는데 이용됐다”고 지적했다. 권 처장은 범행 동기를 유추한 보도에 대해 “피해자 측에는 또 다른 아픔이 될 수 있는 보도인데,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이수정 교수는 현직 경찰도 아니고 수사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일반 시민처럼 기사를 보고 정보를 수집할건데, 범행 동기를 유추한 것은 섣부른 것”이라며 “특히 언론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입에 의존해 보도하고 있다. 말한 사람의 잘못도 있지만, 언론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준형 법무법인 지혁 변호사는 10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A씨 수능 점수에 대한 보도는) 불필요하다. 많은 여성단체가 연인 사이에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해 남성은 평범한 사람이다'라고 보도하는 것에 많은 비판을 하고 있는데, 본질을 흐리는 보도는 자제돼야 한다”고 했다.

또 안 변호사는 “단순히 문항만 가지고 사이코패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마치 '사이코패스인 것 같다'고 보도하게 되면 사회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측면도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에 따르면 언론은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범죄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야 하며 △취재 과정에서 인격권 침해와 개인 정보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사망자 유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사건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문제점을 진단하고 인권친화적인 방향으로 정책 변경과 제도 개선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언론 자율규제기구인 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실천요강에 따르면 언론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의 형사사건 피의자 및 피고인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며, 피해자 및 범죄와 무관한 가족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언론중재위는 시정권고 심의기준에서 “초상이나 실명을 게재하지 않더라도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적 사항을 상세하게 기술할 경우 당사자가 특정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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