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8만원 갈치가 여기선 반값” 아침 6시반마다 ‘빨간 모자’ 뜬다…제주 성산포항에 무슨 일이? [밀착취재]

박유빈 2024. 5. 11.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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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위판장에서 경매하는 중도매인들
어선에서 내린 물건 전국으로 납품하는 도매상
“저렴한 가격에 단골이 된 일반 개인 소비자도”

지난 3일 오전 6시30분. 시끌벌적하던 제주 성산포항 위판장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차분히 가라앉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의 크기인 마이크 소리만 울리는 틈으로 경매가격을 적은 손팻말이 오가는 소리만 들렸다.

지난 3일 제주 성산포항 위판장에서 빨간 모자를 쓴 중도매인들이 둘러서서 경매에 참여하고 있다. 경매사가 가운데 서서 경매를 진행한다.
아침마다 빨간 모자를 쓰고 모이는 35명의 사람들. 제주도에서 중도매인 자격을 갖춘 이들이다. 바다로 나갔던 어선이 수산물을 잡아오면 도매상, 소매상으로 팔려 나간다. 이 과정에서 어선에서 갓 내린 생선을 도매상으로 넘기는 이들이 중도매인이다. 제주에서 잡힌 수산물은 거의 다 이들의 손을 거쳐 각지로 팔려 나간다고 보면 된다.

오전 6시가 되기 전부터 성산포항은 바삐 움직인다. 조업을 마친 어선이 하나둘 입항해 물건을 내리고 경매장 안으로 들이는 사람들은 분주해진다. 경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중도매인들도 출근해 미리 그날의 어획물을 확인하며 시끌벅적하게 인사를 나눈다. 이 시기에는 백조기와 갈치가 많이 잡힌다. 이들은 모두 빨간색 모자를 쓰고 있는데 중도매인 자격을 갖춰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는 표식이다. 각 모자에는 중도매인별로 정해진 고유의 번호가 적혔다. 경매 중에는 이들 관계자 외에 일반인은 가까이에서 보거나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소란스러운 아침인사도 잠시, 6시30분쯤 경매사가 호루라기를 불면 공식적인 경매가 시작된다. 한 상자는 보통 10㎏이 기준이다. 경매사가 “○마리 ○상자”라 말하면 중도매인들은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손팻말에 사들일 가격을 적어 낸다. 이 중에 최고가를 적어낸 중도매인에게 낙찰되는 방식이다. 낙찰되면 경매사는 다시 ‘○번 ○원’이라고 몇 번 중도매인에게 얼마에 낙찰됐다고 공지한다. 이렇게 구역별로 쌓여 있는 수산물을 돌아가며 경매에 부친다.

지난 3일 제주 성산포항 위판장에서 중도매인들이 경매 전 미리 수산물을 살펴보거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4∼5월은 수산물 수확량으로 봤을 때 비수기에 해당한다. 350상자가량 경매에 부친 이날 경매가 끝난 시간은 오전 7시쯤. 7∼8월 어획량이 많은 때에는 경매 대상인 물량도 그만큼 늘어 정오까지 안 끝나기도 한다. 이때는 경매로 가격을 매겨야 하는 상자만 4000개를 넘나든다. 중도매인들이 하루에 구입하는 수산물 양도 몇백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어획량과 각자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가격이 매겨진 수산물은 곧바로 각 중도매인 작업장으로 이동된다. 이곳에서 필요한 선별작업과 포장을 마치면 각각 백화점용, 마트용 등으로 분류돼 물류센터로 보내지거나 소매상에게 판매된다. 대부분의 중도매인은 경매로 구입한 수산물을 각자 거래처로 납품하지만 일부는 개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지난 3일 제주 성산포항 위판장에서 고명환(62)씨가 경매 시작 전 이날 경매 대상인 갈치를 미리 보고 있다.
해원수산을 운영하는 고명환(62) 대표는 1993년 중도매인 자격을 취득해 30년간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전국 홈플러스에 입점되는 제주산 수산물은 모두 고씨 손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이밖에 현대그린푸드와 수도권 일반마트 등에도 이렇게 아침마다 사들인 제품을 납품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매일 경매에 참여한다”는 고씨는 “연간 성산포항에서 경매로 구입되는 수산물 값이 1200억원 정도인데 그중 우리가 구매하는 값이 250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제주 성산포항에 입항한 선원들이 배에서 조업한 갈치를 내리고 있다.
중도매인들이 경매로 구매하는 가격은 백화점에서 소비자에게 팔리는 값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고 대표는 “갈치는 보통 한 상자에 12∼13마리 담아 40만원 정도에 산다”며 “그러면 한 마리에 4만원 꼴인데 백화점에서 팔릴 땐 정가가 8만원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어 “백화점 절반 값인 걸 알고 직접 중도매인에게 사러 오는 일반 소비자도 있다”며 “이 중엔 명절 때마다 찾는 단골도 다수고 어떤 땐 버스를 대절해서 단체로 사러 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렇게 확보한 개인 단골만 50명이 넘고 많게는 수천만원어치를 사가는 경우도 있다고 고씨는 전했다.
경매가 끝난 뒤 중도매인별로 낙찰된 제품이 옮겨져 있는 모습.
30년간 수산물 중개사업을 해오면서 고 대표는 아침마다 제주뿐 아니라 부산, 서울 노량진시장과 가락시장까지 시세가 어떤지 확인하는 일이 습관이 됐다. 고 대표는 “거래처가 부도 나서 중간에 정산을 받지 못하거나 태풍이 와서 며칠간 일 못 하는 때는 힘들다”면서도 “수산물 전문 도매업을 하면서 유통 단계를 별로 끼지 않고 합리적 가격으로 제공하려 한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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