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으로 뒤척이는 대한민국… 잘 재우는 게 ‘돈’ 된다

이미지 기자 2024. 5. 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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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수면장애 환자 급증
국내 수면 시장 3조원
지난 2일 서울 세빛섬 플로팅 아일랜드 컨벤션에서 열린 ‘베스트드림콘서트’. 객석엔 의자 대신 푹신한 침대가 놓였고, 침구와 베개, 수면 양말과 안대가 제공됐다. 심신을 완화시키는 향과 잠이 잘 오는 수면 음악까지, 콘서트장 내부는 모두 ‘숙면’을 추구했다. /바른수면연구소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세다가 결국 해가 뜬다. 세상에서 눈꺼풀이 가장 무겁다는 건 거짓말이다. 출근 시간에 맞춰 일으켜야 하는 몸뚱이만 무거워지고 말았다.

불면의 밤을 보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2018년 수면 장애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91만명 수준이었는데, 2022년엔 116만명을 넘어섰다. 수면 장애를 가진 사람이 그사이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그래픽>

잠 못 드는 밤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보험연구원이 작년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수면 부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85~2.92%에 이른다.

현대사회에서 ‘잘 자는 것’은 어느새 축복이자 재능이 됐다. 서울시가 이달 처음 개최하는 ‘잠 퍼자기 대회’에서는 잠만 잘 자도 애플워치나 에어팟 같은 경품을 받을 수 있다. 센서를 달아 비수면 상태로 잰 심박수보다 20% 낮은 상태로 2시간 동안 ‘꿀잠’을 자면 된다. 지난달 29일부터 참가 신청을 받았는데 4시간 30분 만에 100명 모집이 완료됐다. 지난 2월 시몬스 침대가 모집한 ‘겨울잠 자기’ 아르바이트에 선정된 참가자는 1시간가량 잠자고 300만원(세후)을 받았다. 매트리스를 홍보하겠다는 목적이었는데 “꿀알바다” 소문이 나면서 경쟁률 6만대1을 기록했다.

그래픽=송윤혜

◇잠 못 자는 한국 MZ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는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7시까지 박수 소리 대신 드르렁 코를 골아도 환영받는 공연이 열렸다. 국내 최초의 ‘잠자는 콘서트’인 베스트 드림 콘서트. 객석엔 의자 대신 침대가 놓였고, 특수 제작된 수면 안대·양말·귀마개 등이 제공됐다. 심신을 이완시켜 잠이 오도록 조합한 향(香)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이날 무대에 오른 가수들은 라이브로 ‘자장가’를 불렀다.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도 ‘숙면 음악’을 연주했다. 매트리스 회사 베스트슬립이 직접 만든 수면 음악으로 디제잉까지. 물론, 환호성과 춤사위는 없었다. 잠들기 위한 뒤척임과 꿈결에 속삭이는 잠꼬대가 유일한 관객 반응. 모닝콜은 현악 4중주로 연주됐다. 처음 열린 이 콘서트 티켓 가격은 7만원. 잠 잘 자고 싶은 사람들이 흔쾌히 지갑을 열면서 하루 만에 매진됐다.

매일 밤 잠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꿈은 ‘숙면’. 하지만 머릿속을 메운 걱정거리와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생활 습관이 방해꾼이 되어 숙면은 말 그대로 ‘꿈’이 돼 버린다. 수면 기업 레즈메드가 미국, 영국, 중국 등 17국 3만6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수면의 양과 질에 대한 만족도는 한국이 각각 38%, 36%로 글로벌 평균(50%, 49%)보다 10%p 이상 낮았다. 숙면 훼방꾼으로는 개인적 불안, 불면증, 호흡곤란이 꼽혔다.

젊은 층의 수면 시간은 더 짧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51분. 하지만 수면 설루션 앱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무니스가 조사한 MZ세대(1980~2010년생)의 평균 수면 시간은 5시간 49분이었다. 응답자의 82%가 자정 이후 잠들었다. 평균 오전 1시 54분에 취침해 8시 12분에 기상했다.

서진원 바른수면연구소장은 “수면 장애는 크게 잠자다 자꾸 깨는 ‘유지 장애’와 잠에 들지 못하는 ‘입면 장애’ 두 종류인데 젊은 층은 잠자리에서까지 스마트폰을 보거나 커피 등 고카페인 음료를 마시는 등 생활 습관으로 인한 입면 장애가 많다”고 했다.

아모레퍼시픽이 내놓은 수면 건강식품 ‘굿슬립가바365’의 벨리곰 컬래버 제품./아모레퍼시픽

◇잠 오는 침구·음료 시장도 쑥쑥

잠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은 ‘숙면의 묘약’을 찾아 헤맨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수면 시장은 약 3조원 규모. 2011년(약 4800억원)의 6배 이상으로 커졌다. 긴긴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싶지 않은 이들이 자장가를 대신할 보조제와 음료, 침구 등에 기꺼이 돈을 쓰기 때문이다.

잘 재우는 게 돈이 된다. 국내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도 뛰어드는 유망 산업. hy는 지난해 8월, 수면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원료를 넣은 음료 ‘수면케어 쉼’을 내놓았는데, 6개월 만에 1700만병을 팔았다. 국내 스타트업이 자체 개발한 수면 유도 물질을 넣은 음료 ‘슬리핑보틀’은 2022년부터 미국 아마존에서도 판매를 시작해 해외에서만 20만병을 팔았다. 화장품 회사들도 수면 시장을 미래 신사업으로 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수면 건강 기능 식품 ‘굿슬립가바365′를 젊은 층이 주로 찾는 올리브영·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시켜 지금까지 10만개를 팔았고, LG생활건강도 ‘에이트 나이츠 필’이라는 수면 장애 개선 제품 상용화를 위해 작년 말부터 임직원을 대상으로 시범 판매 중이다.

국내 스타트업 머스카의 수면 음료 '슬리핑보틀'(왼쪽)과 hy가 내놓은 '수면 케어 쉼'/머스카·hy

잠 못 자는 괴로움으로 악화한 부부 관계는 ‘거리 두기’로 해결한다. 미국에서는 30% 넘는 부부가 잠을 따로 자는 ‘수면 이혼’(Sleep divorce)을 택했다. 상대방이 코를 골거나 뒤척여 잠을 못 자느니 따로 잔다는 것. 미국에서는 젊은 층(27~42세)의 수면 이혼율이 43%로 중장년층(43~76세)보다 높았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중년의 수면 이혼이 늘고 있다. 신혼부부 때는 큰 침대에서 같이 자는 걸 선호하지만 중년 이후부터는 “잠이라도 편하게 자자”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맞춰 코웨이는 부부가 한 침대를 쓰면서도 매트리스의 단단한 정도를 각자 취향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비렉스 스마트 매트리스’를 주력 제품으로 밀고 있다. 다른 침대 업계 관계자는 “신혼 때 퀸이나 킹사이즈 침대를 샀던 부부들도 10~15년 이상 결혼 생활을 한 뒤에는 침실에 수퍼 싱글 사이즈 침대 2개를 넣어 ‘따로 또 같이’ 자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오늘 밤도 몸부림친다

가장 부러운 사람은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 그런데 온라인에는 “빨리 잠드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는 글과 “잠드는 시간이 짧고, 깊게 잘수록 건강하다”는 글이 함께 돌아다닌다. 뭐가 진실일까? 이유진 서울대학교 병원 수면의학센터장은 “어디서나 쉽게 잠이 들고 조는 사람은 오히려 잠이 부족하거나 수면 무호흡증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권장 수면 시간(성인 7~9시간)을 채우고도 졸린 증상이 계속되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불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카페인 섭취를 줄이지 않고, 자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계속 사용하면서도 잠드는 방법은 없을까? 이 센터장은 “스마트폰 블루라이트를 차단하고, 카페인 반감기가 4~7시간이라는 점을 고려해 오전에만 커피를 마시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자기 전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라는 것엔 의학적 이유가 있다”고 답했다. 예민한 잠을 다스리는 데 편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도 잠들지 못한 사람들은 ‘불면증 치료’ ‘수면 유도 음악’ ‘잠자는 법’ 같은 단어를 검색하며 몸부림친다. 4년 전 올라온 ‘잠드는 음악’ 영상은 9243만회나 조회됐다. 재생 시간만 무려 10시간에 달하는 이 영상엔 댓글이 5만개나 달렸다. “복통으로 잠들지 못하는 아들이 이 음악을 듣고 잠들길” “입원 첫날, 푹 자고 빨리 낫게 해주세요” 등 댓글 창은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들의 아우성과 기도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는 위로 겸 자장가를 남겼다. “해가 뜰 때까지 잠 못 드는 청춘들아, 많이 힘들지? 오늘은 자책과 걱정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꼭 안고 토닥여줘. 그리고 편하게 눈을 감아봐.” 이제 끝나버린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클로징 코멘트처럼. “잘 자요.”

잠 자려는 사람이 모인 '베스트드림콘서트' / 바른수면연구소 (베스트슬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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